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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매 Jul 12. 2020

사랑에도 이성이 필요하다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어 읽은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대학생 때 '사회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들었던 질문이다. 교수님은 강의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했고, 강의실에 있던 50여 명의 학생들은 모두 다른 대답을 했다. 당시 나는 "사랑은 헌신"이라고 답했고, 교수님은 강의실의 학생들에게 이 학생과 연애하라는 농담을 하셨다. 정작 나는 헌신하는 연애를 했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꽤나 자주 궁금해했고,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이다.  제목만 보고 사랑을 더 잘하게 해주는 어떠한 기술(skill)을 얻고자 기대한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사랑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삶 속의 철학적인 물음에 깊게 고민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중략)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사랑의 경우, 포기는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다. 곧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책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사랑한다는 행위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오히려 올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하지만 그만큼 쉽게 잊어버리는 전제이기도 하다.

내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부분은 사랑은 마냥 빠져드는 감정이 아닌, 누군가에게 주는 능동적인 행위라는 것, 그리고 그 행위를 위해서는 '이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애의 중요한 요인, 곧 '의지'라는 요인을 무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만일 사랑이 감정일 뿐이라면, 영원히 서로 사랑할 것을 약속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문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혹은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감정이 먼저 생기고 난 후에 상대방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랑의 감정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 때, 회복하기 위해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오랜 시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외도에 대한 옹호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의지'는 감정의 영역에서 동기부여가 되겠지만 결국 이성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는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알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하는 것이다.


사랑을 성취하는 중요한 조건은 '자아도취'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아도취적 방향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만을 현실로서 경험하는 방향이다. 반면 외부 세계의 현상은 그 자체로서는 현실성이 없고 오직 이러한 현상이 자아도취적 인간에게 유익한가 위험한가에 따라 경험된다. 자아도취의 반대 극은 객관성이다. 이것은 사람들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고, 이러한 객관적 대상을 자신의 욕망과 공포에 의해 형성된 상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본문에서는 자아도취적 경험에 대해 "어린이가 스스로 무엇을 느끼는가를 알아차리거나 관심을 갖는 대신에, 어린아이가 어버이에게 순종하고 기쁘게 하고 믿고 따른다는 등의 관점에서 자식의 반응을 경험하는 부모" 등을 예시로 설명한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자아도취적 방향을 '타인에 대한 객관성 없이 자신의 세계만을 고려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즉,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자신의 입장에서 그가 나에게 어떻게 와 닿는가만을 생각하는 것.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이성'이다. 이성의 배후에 있는 정서적 태도는 겸손한 태도이다. 객관적이라는 것, 곧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겸손한 태도를 갖게 되었을 때, 어린아이로서 꿈꾸고 있던 전지전능의 꿈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중략) 사랑의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면, 나는 모든 상황에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내가 객관성을 잃고 있는 상황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


이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관점이었고, 글을 써서 내 것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공감됐다.

올바르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아도취적이고 주관적인 견해를 가지는 것이 아닌,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성과 객관성을 가지는 것은 타인을 왜곡 없이 바라보고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흔히 사랑은 감정의 영역이라 사랑에서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분명 사랑에도 이성이 필요하다.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다 읽은 후에는 성숙한 사랑을 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미지 출처 : 사랑의 기술(문예출판사)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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