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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매 Jan 17. 2021

이별의 답을 찾고 싶을 때 - 헤어져야 만난다.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 백영옥> 북 리뷰


  나는 문제나 원치 않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답을 찾고자 했었다.

왜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는지 최선의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답이 없다.


관계에는 답이 없다지만, 끊임없이 이런 생각이 들던 때가 있었다.

미친 듯이 노력하는 것이 사랑의 증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감내하고 힘들게 노력해야만 간신히 유지되는 것이 사랑일까' 싶었다.

이 생각이 계속될 때 이별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답이 없다며 이별을 했으면서 사랑과 사람에 대한 글과 책을 찾고 탐독하며 답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이었다.

결국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론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평소 소설은 즐겨 읽는 편이 아닌데 그날따라 제목에 이끌려 책을 펼쳤다.


세상에 수많은 다른 언어가 존재하고, 번역이 필요한 수많은 사랑과 이별의 언어가 있듯,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사랑과 이별을 하는 사람들의 감정은 비슷할지 몰라도, 각자의 상황과 이유는 가지각색이고 풀어나가는 방식도 모두 다르기에 정해진 답은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찾고자 했던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할까' 혹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고, 어떤 사랑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 등의 질문은 사실상 무의미하고 답을 찾기도 어렵다. 이론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정답은 없다.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겪어봐야 알게 되지 않나.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버릴 수 없는 게 아닐까.


어떤 인연은 참 질기다고 생각할 만큼 놓기가 쉽지 않다. 나에게도 그런 인연이 있었다. 머리로는 놓아야 하는 것을 아는데, 어느 순간 다시 돌아가 있었다. 그래서 나도 위 문장처럼 생각했었다. 애초에 내가 버릴 수 없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면서.

그렇게 여러 번을 반복하다가 이제 정말 끝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소설 속 한 인물의 대사처럼 '잃어버렸다는 말은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제하는 말이지만, 잃어버린 걸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그땐 견딜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때의 감정은 두려움 만으로 표현하기는 부족한 감정이다. 위 구절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보고 싶었다.


슬픔이여 안녕


'안녕'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는 걸 네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건 내가 알아낸 생의 가장 큰 비밀이었거든. 그래서 슬픔을 떠나보내지 않고, 슬픔에게 손짓할 수 있다면 네가 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얘길 하고 싶었어.


나는 슬픔을 모른 척하던 때가 있었다. 감정을 숨기고, 감정이 터질만한 상황을 피했었다.

그런 감정은 내게 그림자로 남아 어떤 형태로든 나를 괴롭혔고, 엄한 순간에 튀어나와 나를 당황시킨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슬플 때 맘껏 슬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슬픔은 떠나보내야 하는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었지, '그래, 너 어디 한 번 와봐라'라는 느낌으로 맞을 용기는 없었다.



'슬픔이 있어야 기쁨도 있다'는 슬픔의 필요성을 보여줬던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슬픔은 묻거나 피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언제나 마음 어느 한 구석에 있다가 필요할 때 등장할 것이다.

지금 슬픔을 떠나보내도 다른 슬픔이 안 올리는 없다. 그러니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지금 슬픔을 온전히 느끼자. 그리고 남아있는 슬픔이나 새로운 슬픔이 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어쩌면 현재의 이별과 앞으로의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은 슬픔을 무서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강물이 어는 혹한 속에 꽃을 피우고, 별도 뜨지 않은 밤중에 태양을 뜨게 하는 것. 지금 지훈이 말할 수 있는 건, 단지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엔 딱히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뿐이었다.
내가 밤일 때 그는 낮이었다. 그가 낮일 때 나는 캄캄한 밤이었다. 그것이 우리 죄의 전부였지.
- 사랑의 시차 / 최영미


책을 덮고 소설 속 인물들과 이별을 함께 겪고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이별이 맞는 것인지, 어떻게 했어야 했을지 답을 찾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올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닥뜨리기로 했다.

어쩌면 나는 답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헤어져야 만난다.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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