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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매 May 05. 2020

균형에서 얼마나 벗어날지에 대한 균형 잡기

'뉴필로소퍼 vol. 8 균형 잡힌 삶을 산다는 것'을 읽고(1)

나는 균형 잡힌 삶을 사는 사람이고 싶었다.


운동도 적당히 하고, 공부도 적당히 하고, 일도 남들 하는 만큼은 하고, 적당히 사람들과도 어울리는.

이렇게 나는 모든 분야에서 적당히 균형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내었다. 다방면에서 적당한 균형을 갖추는 것은 알게 모르게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았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균형'에 집착한다. 예를 들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과 같은 단어가 그렇다. 그렇다면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 것이 이상적일까? 정해진 이상적인 균형의 수치를 정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뉴필로소퍼 vol. 8 균형 잡힌 삶을 산다는 것'을 읽기 시작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읽기 시작한 시작 했지만 사실은 새로운 시각을 보게 되었다.


어떤 사람의 얼굴도 양쪽 선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고, 어떠한 잎도 양쪽이 완벽히 똑같지 않으며 어떤 가지도 대칭 형태가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이 불규칙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변화를 암시한다. 따라서 불완전함을 추방하는 것은 표현을 말살하고 노력을 억제하며 활력을 마비시키는 일이다.


나는 균형을 맞추려는 내 모습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했다. 사회에서 적당히 균형 잡힌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동시에 나는 그저 특별할 것 없는, 적당한 무색무취의 사람인 것처럼 느꼈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진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균형을 잡고자 노력했다. 너무 감정적이다 싶으면 이성을 되찾으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스스로가 너무 느슨해졌다 싶으면, 삶에 변화를 주는 식으로 억지로 긴장감을 조성했다.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삶이란 결국 적을 가장 친한 친구로 삼는 일이다. 자신만의 개성과 열정을 통제하고(사실상 부정하고) 외부 세계의 시스템과 부딪혀 어떤 충격도 경험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차단해버리면 그 사람은 세상과의 접촉이 끊겨 빈사 상태에 이르고 만다.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 살기 시작한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을 통해 살아왔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위한 균형이라고 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에, 타인에 나를 맞추려는 노력을 부단히 했다. 내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어떻게든 중간 지점으로 끌어오려 했었다. 스스로 이러한 중립적인 모습이 이상적이라고 느꼈지만, 진정한 나의 모습을 고민하는 시간은 없었다.

그렇다면 균형 잡는 것을 포기하고 자유롭게 치우치는 대로 살아야 하는가? 본문에서는 균형에서 벗어난 생활은 위험하고 짜릿하나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파괴한다고 그리고 극단적인 행동에는 위험과 대가가 따르며, 한 사람이 제멋대로 사는 자유를 누리려면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말한다.


결국 문제는 균형에서 얼마나 벗어날지에 대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전략적으로 균형을 벗어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



나의 중심이 스스로의 내면을 향하되, 타인에 대한 배려심은 잊지 않을 것.

나는 균형을 잡는다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지 출처

1. '뉴필로소퍼 vol. 8 균형 잡힌 삶을 산다는 것' 표지

2. http://www.smashingmagazine.com/2015/06/29/design-principles-compositional-balance-symmetry-asymmetry/?ref=webdesigne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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