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밀러> 북 리뷰
※ 해당 리뷰에는 책 내용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면 리뷰를 북마크 후 다시 읽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 책은 희망에 대한 책이다.
얼핏 보면 무겁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이 책은, 끝까지 읽어보면 결국 작가가 주는 희망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 더불어 좁고 좁았던 나의 세계관의 벽을 부수고 넓혀주기까지 했다.
사실, 책의 제목처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야기 속에 선물처럼 숨겨둔 작가의 메시지와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넌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작가의 아버지는 어린 작가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도 세상에서 내가 '우주의 먼지'와 같은 존재임을 알고 있고 그것이 아버지의 말씀처럼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었다. 나 하나 내 멋대로 산다고 세상 큰 일 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냥 '나 좋은 대로 살'지 만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머리로는 저 말에서 용기를 얻고 싶었는지 몰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조심스러웠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작가인 룰루미러가 동경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인 나는 그를 응원하다가 의심하다가 원망하기에 이른다. 우생학을 지지하고 연구했던 데이비드, 그리고 결국 그가 범주화한 피해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피해자들로부터 인생의 빛이 될 희망적 메시지를 얻는다.
그들은 애나와 메리 같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고, 자신들이 받은 빛을 더욱 환하게 반사할 수 있는 이 실질적인 방식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메리는 애나가 없었다면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 이런 것. 이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중략) 바로 그때 그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깨달음. 애나가 중요하다는, 메리가 중요하다는 말. 혹은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중요하다는 말.
이 부분을 기점으로 나는 다른 책을 읽고 있었다. 인간이 자연을 분류한 것은, 작가의 말대로 '인간을 꼭대기에 두는 단 하나의 계층구조를 그려내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가장 큰 뇌를 갖고 있지도 않고 기억력이 가장 좋은 것도 아니다. 가장 빠르지도, 가장 힘이 세지도, 번식력이 가장 좋지도 않다. (중략)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그토록 노력했던 점이다. 사다리는 없다'
사다리도 없고, 물고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언니는 평생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늘 반복적으로 오해해왔다고 말했다. 의사들에게서는 오진을 받고, 급우들과 이웃들, 부모, 나에게서는 오해를 받았다고 말이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나 또한 나와 다른 이들을 무의식 중에 범주화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다리를 세워,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 무수히 애쓰고 있다. 학교라는 세상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얻기 위해, 대학에서는 좋은 스펙으로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직장에서는 인정받는 우수 고과자가 되기 위해. 그리고 그에 배제된 사람들을 속으로 평가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우수한 것과 열등한 것. 내가 오해받는 것은 그토록 경멸하면서, 나는 남들을 얼마나 쉽게 오해하고 판단했던가. 이 책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희망'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나는, 우리는 그럼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에 고통이 있다면 행복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 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 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내가 우주의 먼지 같이 작은 존재임은 여전히 변함없다. 그럼에도 작가는 '우리는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고 위로해 준다. 나의 어머니에게 나는 '살아가는 가장 큰 원동력'일 수 있다. 나에게 어머니가 '내 인생의 나침반'이듯.
결국 '나는 중요하지 않으니, 나 좋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중요하기에 나 좋을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고도 여전히 무의식 중에 누군가를 분류하고 사다리의 꼭대기로 올라가려고 노력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틀렸을 수 있다'는 의심을 가지고, 타자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나를 포함한 모든 생물의 경이로움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