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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아재 Jan 23. 2022

100일 그리기 - 도구

저의 첫 번째 100일 그리기는 19년 5월 1일 시작되었습니다.

그전에는 그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가끔 그리곤 했습니다.

돌아오는 건 핀잔뿐이었지만, 당시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막내 딸아이가 이것저것 그려달라는 요구에 바로 응답하는 딸바보 그림에만 충실했습니다.         

  지금은 그림 그리는 일이 힘이 들기도 하다는 걸 알기에 디자인팀의 흉을 보진 않지만, 한동안 제 그림의 시작은 무지하게 협조 안 해주던 퇴사한 디자인팀 덕분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느 날 회사에서 디자인팀의 일정이 빠듯하여 당장 사용할 가판대 메뉴 제작을 요청할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제가 직접 그려보았습니다.         

[검은색 폼보드 위에 파스텔로 그린 제 첫 작품입니다]

      


  구글에서 적당한 일러스트 이미지를 골라 서너 가지 색의 파스텔로 그렸습니다. 이상한 부분은 지우개로 지우고, 어렸을 때 해본 것처럼 휴지로 문질러 색을 입혔습니다.

  ‘어, 이거 괜찮은데? 내가 소질이 있네...’하며 동료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금세 지워져 버려 아쉬웠습니다.                 

  

구글이미지-클립아트를 보고 그렸습니다. 소시지 그리기가 쉬워지고, 맥주 그리기가 익숙해질 때쯤.... 통닭그리기를 하고 스스로 감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오일파스텔로 그렸습니다. 프리즈마 색연필을 구입해 지저분한 선도 정리했습니다.

점점 그럴싸한 그림이 되더니 이젠 회사에서 그림을 그릴 일이 있으면 디자인팀이 아니라 저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지나고, 100일 글쓰기가 끝나갈 즈음, 3월부터 슬슬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보다 무언가를 꾸준히  것이 필요했습니다.     

  ‘5월이면 바쁜데.... 아니다 그냥 저지르자!’


  이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100일 그리기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4월 말부터 1주일간 워밍업을 한 후에 100일 그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문구점에 들러 3000원짜리 A4 사이즈의 스케치북을 구입했습니다. 딸아이의 크레파스와 마트에서 구입한 색깔만 많고 저렴한 중국산 색연필, 회사에서 쓰려고 산 12색 문교 오일파스텔이 전부였습니다.     


100일 그리기 1일 차, 5월 1일, 주제 - 필기구

100번째 그림을 그렸던 날은 희미하지만 첫 번째 그림 ‘볼펜’을 그리던 날 아침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30분 동안 주방 식탁에 앉아 연필로 그리고 지우개로 지운 후 볼펜으로 덧그렸습니다.    

하루 내내 뿌듯했습니다.

좌측은 1일차 그림, 우측은 마카로 채색한 100일차 그림입니다.

  처음에는 가장 쉽고 괜찮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펜 드로잉을 많이 추천해주셨지만, 저는 여러 재료를 사용하며 제 변덕을 호기심으로 채워가며 그렸습니다.

좌측상단부터 거꾸로 100일동안 그렸던 그림입니다.

  채색 도구는 2만 원 미만의 80색 중국산 마카펜을 구입했습니다.

  지금은 잉크가 말라 대부분 쓸 수 없지만, 100일 그리기를 하는 동안 펜으로 그린 후에 밋밋하게 느껴지면 마카로 채색했습니다. 나중에는 어쭙잖은 실력이지만 마카로 채색을 하고, 그림에 고무자석을 덧대고 오려 붙여 선물을 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구는 되도록 좋은 걸 사서 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자주 쓰지 않을 도구라면 특성만 알아도 되니 저렴한 걸 사서 쓰다가 필요하면 더 좋은 걸 구입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물론 마카로만 그림을 그릴 계획이라면 처음부터 좋은 마카들을 구입하시는 것이 좋지만, 좋은 마카는 12색만 되어도 3만 원 정도 하니, 아직 하고 싶은 그림의 장르나 도구를 정하지 않았다면(아마도 몰라서 못 정하실겁니다.) 좋은 마카에 비해 가격이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저렴한 중국산 마카를 구입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 다음은 멋진 나무상자에 들어있는 72색 문교 오일파스텔을 구입했습니다. (4만 원 이내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파스텔도 가격차이가 크지만, 유튜브 등을 검색해 보면 우리나라 문교 오일파스텔의 품질이 좋다는 리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비싼 파스텔을 사용해 보지 않아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문교 오일파스텔 72색이면 어떤 색상도 표현할 수 있었기에 부족함 없이 잘 사용했습니다.

  처음 그림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오일파스텔이 좋은 이유는 다양한 느낌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뭉툭한 도구로 세세한 선을 그릴 수 없기에 정확한 형태보다는 다양한 색감으로 꽤 그럴싸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단, 저처럼 그림을 그릴 때마다 사방팔방 늘어놓는 분들은 그림이 지저분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오일 파스텔 찌꺼기를 조심스럽게 제거해 가면서 그려야 합니다. 책상 위에 종이나 작업판을 하나 깔고 그린 후, 작업이 끝나면 조심히 집 밖으로 들고 나가 털어내야 아내에게 혼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다이소에서 돌돌 말리는 형태의 5천 원짜리 고무 작업판을 사서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오일파스텔을 쓰고 있습니다. 항상 주변 바닥을 꼼꼼히 닦아내지만, 여전히 혼이 납니다.    

      

  ‘오, 100일 그리기 하면서 스케치북 하나랑, 마카, 파스텔만 샀다면 10만 원도 안 들었겠네...’

  이 정도면 아주 가성비 좋고, 코로나 시대에 딱 좋은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맞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더 돈을 썼습니다.  


  100일 그리기를 하는 동안 질리지 않도록 여러 도구로 작업을 해보았습니다.

  오일파스텔 위에 검은색을 칠한 후 긁어내어 그려 보기도 하고, 아이에게 사 준 사인펜을 다시 빼앗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검은색이나 크라프트색 스케치북을 사서 파스텔이나 색연필, 흰색 펜으로 공작이나 반딧불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문방구에 들릴 때마다 이런저런 펜들을 색깔별로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제 책상 아래에는 5리터짜리 김치통에 종류별로 펜이 가득합니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된다더니....‘


  네. 맞습니다.

  제 그림의 반은 ‘템빨’, ‘장비병’ 덕분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꾸준함’을 이어주게 하는 ‘인정’과 ‘감탄’입니다.     

  100일 그리기가 80일 정도 지났을 때 프리즈마 색연필 150색을 선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장모님께서 생일 선물로 사주셨습니다. 10만 원이 넘는 비싼 색연필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색깔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저의 취미생활을 인정해주고 응원하는 것에 행복했습니다.     


  그림이건, 낚시 건, 골프건 꾸준히 지속하려면 행복함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행복하려면, ‘남의 감탄’ 필요합니다.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님께서 ‘인정투쟁’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남의 인정’을 받아야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시킬 수 있는데, 강한  공동체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감탄’을 더 갈구한다고 합니다. 그 감탄을 내가 하는 감탄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그림과 같은 ‘문화적 경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야 자존감도 높아지고 일과 일상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거죠.          

  이렇게 그림을 통해 문화적 경험을 하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으면 당연히 그 행동에 집중하게 됩니다. ‘몰입’하면서 성장하고 즐기게 됩니다.     


계속하다 보면 그것만으로 이르게 되는 어떤 경지가 있다.
당장의 ‘잘함’으로 환산되지 않아도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다.
[일하는 마음 / 제현주 / 어크로스]     


  100일 그리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런 ‘감탄’과 ‘인정’을 나눌 수 있는 라인 채팅방을 추천합니다. 이 곳에서 함께 격려하면서 그림을 그려도 끝까지 완주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100일 그리기 할 때는 스무 명 정도의 분이 계셨는데, 저를 포함해 딱 두 만 100일 그리기를 완주했습니다.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하면 완주하는 분들의 비율이 높아질 것 같아 만원의 보증 금액을 내고 시작하는 카카오톡의 '프로젝트 100'을 찾아보았습니다. 이제는 카카오톡에서는 운영하지 않고 있더군요. 작년 말 두잇이라는 어플로 변경되어서 아쉽다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100일 그리기’, ‘100일그림’, 또는 ‘100D100D’ (100DAY 100DRAWING)을 오픈 채팅방, 인터넷 검색 페이지, 혹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찾아보세요.     


  정 못 찾으시겠다면, 처음에 소개해 드린 매일 그림을 그리는 ‘하루 그림’ 오픈 채팅방으로  오세요.

https://open.kakao.com/o/g7vFgv9b

오셔서 용기 내어 함께 100일 그리기를 하자고 이야기해주세요. 분명 누군가 함께 하자고 당신의 손을 잡을 겁니다. 그 곳에서 다른 분들보다 좀 더 꾸준하게 그리시면서 100일 그림을 그리시거나, 따로 오픈 채팅방을 만들어서 함께 시작하고 응원할 분들과 함께 그림을 그려도 좋을 겁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100일 그리기를 완주하면 당연히 그림 실력도 늘겠지만,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그림 근육’이 생길 겁니다.     


  다음에는 제가 ‘꾸준히’ 그리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자제력 점수가 높은 사람들은 통제력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제력’이라는 단어는 사실 잘못된 명칭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이 유혹에 맞서 스스로를 대단히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그들은 그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리한 상황에 자신을 놓아두는 법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HABIT. 웬디우드,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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