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한참 재미가 붙을 때면 이것저것 다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가끔 그릴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생깁니다. 그래서 딱 마음에 드는 풍경이나 순간을 마주하면 사진으로 부지런히 남겨놓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림 소재를 사진으로 '만들 때' 알아두면 좋은 점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자주 사진을 찍어보시고, 원본 사진을 살짝 수정해서 사용하세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다면 평상시에도 일상의 풍경을 찍어보시고 틈날 때마다 다시 둘러보세요. 찍을 때는 사진 촬영 설정에서 그리드*를 넣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래 사진 ① 그리드 - grid, [사진] 수직/수평 안내선
그림을 많이 그리시는 분들은 사진도 잘 찍으십니다. 기본적으로 '구도'와 '조명'을 잘 이해하고 계시는 거죠. 따로 배우지 않아도 ’이런 풍경을 그리면 예쁘게 그릴 수 있겠다’는 자신만의 감을 갖게 되는 겁니다.
가끔 초보분들께서 함께 그려보면 좋겠다며 공유해 주시는 사진을 보면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예쁜 건물을 그리고 싶은데 귀퉁이가 잘려있거나, ‘화질’이 낮아 흐릿한 사진이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직접 그려 본 경험이 많이 없으니 이런 애매한 사진을 찍게 되시는 것 같습니다. 분명 촬영할 때는 나름의 감정과 즐거움이 있었을 텐데 사진에는 그런 느낌이 전해지지 않고 모자란 부분만 눈에 띄게 되는 거죠.
독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면 꼭 발목 자르는 친구들 한 명쯤 있으시죠? 딱 그 느낌입니다.
차라리 살짝 넓게 찍었더라면 적당히 자르기를 해서 원하는 구도를 잡을 수 있는데 발목 잘린 사진들은 막상 그리려고 보면 살짝 짜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이건 제 성격이 못 된 탓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사진을 어떻게 자르냐구요? 스마트폰에서 적당한 사진 보정 어플을 설치하시면 기본 기능으로 자르기가 있습니다. 아무 어플이나 다운로드 수가 많은 어플을 하나 설치하시고 보정해 보세요. 자르기 외에, 각도 조절 기능도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수평이 안 맞는 사진을 보정하거나, 로우 앵글로 찍으면 위로 갈수록 굴곡되어 비스듬히 눕게 되는 건물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기능입니다. 저는 2년 전에 이미 서비스가 종료되어 버린 AVIARY 어플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만큼 기본 기능만 있어도 원하는 구도로 사진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갤럭시의 기본 사진편집 기능의 '자르기'를 사용해서 졸업한 아이를 중앙에 놓고, 아이를 바라보고 담는 아내에게 초점을 맞춰 그렸습니다.
똑같이 갤럭시 기본 사진편집 기능으로 곧게 뻗은 맹종죽 사진을 극단적으로 세워본 예시 사진입니다.
저는 그림을 그릴 때부터 사진을 못 찍는다는 말을 듣진 않았는데요. 따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SNS에 올릴 사진을 자르고 편집하며 그 감을 자연스럽게 익힌 것 같습니다. 아... 저도 첫 아이 어렸을 때는 발목을 많이 잘랐었습니다.
두 번째, 그림 소재로 찍거나 모아둔 사진을 주기적으로 잘 정리해 두세요.
산책을 하다가, 웹서핑을 하다가,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멋진 장면이나 의미 있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바로 사진을 찍거나 저장해 둡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두 번은 스마트폰의 사진을 정리합니다. 폴더 이름으로 날짜와 장소를 함께 기록하고 외장하드에 옮겨놓습니다. 저는 “220218-OO카페-광주“정도로 정리합니다. 이 과정 중에 여전히 다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진은 따로 복사한 후 다시 꺼내보기 쉽도록 ‘그림 소재’라는 폴더를 만들어 스마트폰에 저장해 두었다가 사용합니다. 이 과정 중에 사진을 다시 보게 되면 잘못 찍었다고 생각한 사진도 잘 수정해보면 괜찮아 보일 때도 많습니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촬영 설정에서 GPS 위치 저장*도 설정하시면 나중에 어디에서 찍었는지 기억이 안 나도 해당 기능으로 어디에서 찍었는지 지도에서 확인해 볼 수도 있습니다.
*아래 사진 ② GPS 위치 저장 - [사진] 위치태그
세 번째, 되도록 남의 사진보다는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많겠지만, 그림 오픈 채팅방이나 SNS에서 보면 이 기본적인 부분을 간과해서 생기는 실례나 의도치 않은 무례를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거창하게 저작권 소송을 당하는 일은 흔치 않지만, 다른 분의 사진을 허락 없이 퍼와서 2차 저작물(그림)을 만들어 자신의 인스타그램이나 SNS에 올려두었다가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경우죠.
많은 분들이 처음에는 다른 분의 사진이나 그림을 소재로 삼아 퍼오는 것이 오히려 ‘그분에게 홍보도 되고 좋은 것 아닌가?‘하고 생각을 하십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수많은 일상 사진 중 한 장을 누군가가 그림으로 그려서 다시 '들춰내는' 걸 어려워하실 상황일 수도 있구요.
사람들은 자신을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만, 그래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그 애매한 기준을 저마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애매한 기준은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기도 하구요.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받는 행위를 거친다면 사진의 원작자는 거절보다는 환영해 줄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사진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죠. 그런데, 그 '양해'를 거치지 않고 그림 그리는 분의 편의대로 ’다 그린 다음에 출처를 밝히고, (인스타그램에) 태그를 걸어서 올려야지'라고 생각하고 그렸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깁니다. 괜한 눈치도 보게 되고, 정성 들여 그린 그림을 SNS에 올려보지도 못하게 되거든요.
“사전에 제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퍼가고, 가공해서 SNS에 올리셨군요. 삭제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게시물에 이런 댓글이 달리게 되면 얼굴이 화끈거리게 됩니다.
꼭 사전에 원작자에게 양해를 구하세요. 이것저것 전부 번거롭게 생각하신다면 발품을 팔아 직접 가서 '적당한' 시간-날씨와 그림자가 딱 좋은 때에 사진을 찍어 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그릴 수도 있고, 멋진 사진을 다른 분들에게 공유해 주며 후한 인심을 쓰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사진을 잘 찍지 못해서 쉽지 않다구요?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 '적당한' 때를 계획하고, 오랜 시간 공부하고 사진을 찍은 원작자의 노고를 이해하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양해'없이 퍼와서 그리시면 안 됩니다. 구도는 어떻게든 보정이 가능하지만, 장소와 '조명'은 사진 원작자의 노력으로 획득되는 것이니까요.
몇 주전에 휴무일을 잡고, 날씨를 확인한 후 새벽 2시부터 컴컴한 산을 몇 시간 올라 겨우겨우, 아쉬운 대로 일출을 찍으시는 분들의 사진에만 그런 노고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죠?
무엇보다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소재로 삼는 것이 좋은 이유는 그 풍경을 찍을 때 나의 감정이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림에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무엇을 그릴지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그릴지 모르겠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어떤 의미를 담을 소재를 선택할지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그림에 어떤 의미를 담을지 먼저 고민하면, 어떻게 표현할지 큰 방향이 잡히고, 구도나 도구 등을 결정하기 쉬워집니다. 설령 도구가 잘못되었거나 못난 그림이 나와도 조금 더 소중히 오래 간직하게 됩니다. 다시 보게 되는 그림이 됩니다. 그리고 다음 그림에는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더 견고해집니다.
오늘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기 전에, 그 순간의 어떤 느낌을 표현하고 싶은지 먼저 고민해 보세요.
저절로 본 것 말고 거기서 멈춘 것 말고 더 들어간 것. 뜻을 담아 마음을 담아, 눈까풀을 열어서 본 것. 귀를 기울여 들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