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마지막 주 수요일, 수업이 끝난 후 운동장에는 3반과 5반 아이들이 모여 열띤 응원을 하고 있었다. 거기엔 돌쇠를 비롯하여 2반 대표 여섯 명도 끼어 있었다.
형세는 5반이 압도적이었다. 5반에는 김만석이 왕이었고 그 뒤로 네 명이 줄줄이 사탕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3반에서는 왕으로 황득구가 나와 있었는데 3반 아이들은 아무도 황득구 뒤에 붙어 있지 않았다. 돌쇠가 제시한 왕 피구는 기본적으로 각 코트 위에 다섯 명이 서고 상대편 코트 뒤에 공격하는 한 명을 세워서 총 여섯 명이 한 팀으로 경기한다. 3반은 황득구와 남자애 둘, 그리고 여자애 둘을 코트 위에 배치하고 반대편에 여자애를 두어서 빠지는 공을 줍게만 하고 모든 공격은 황득구에게만 집중시킨다는 전략을 들고 왔다. 반면에 5반에서는 김만석 뒤에 여자애 셋이 서고 그리고 그 뒤에 남자애가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운동신경 좋아 보이는 남자애를 하나 세워서 양편에서 공격하는 배치였다.
“저 3반 애들은 각자 알아서 피하는 전략으로 나온 것 같아. 쟤들, 특히 남자애들은 다 운동 좀 한다는 애들이야. 여자애들도 날렵한 애들로만 나왔고. 근데 5반은 김만석 말고는 다 조그만 애들로만 넣어서 김만석 뒤에 숨어서 안 맞겠다는 전략인 것 같아.”
분석력이 좋은 연사랑이 각 팀의 특징과 전략을 돌쇠에게 속닥이듯 말했다. 돌쇠도 보면서 ‘어쭈 제법인데.’라고 생각했다. 두 반 다 나름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것이고 초등학생들이 이렇게까지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거라곤 돌쇠도 생각하지 못한 터였다. 다만, 3반 쪽에서 택한 각자도생 전략은 분명한 장점에 비해 단점이 너무나 뚜렷했다. 지금 5반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이유는 5반에서 왕 피구의 전략적인 포인트를 정확히 짚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포인트는 왕은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악!”
그때 3반에 마지막으로 남은 여자아이가 다리를 맞고 탈락했다. 김만석은 여자애 2명을 먼저 집중적으로 노렸다. 남은 인원은 왕인 황득구와 나머지 남자애 둘뿐이었다. 그러나 황득구와 남은 두 명의 남자애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만만한 표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여자애에게 맞고 나서 흐른 공을 황득구가 잡았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황득구의 쇼타임이었다. 황득구는 오로지 김만석만 노렸다. 처음에는 김만석의 다리를 집요하게 노리고 던졌다. 이유는 점프해서 피하면 뒤에 서 있는 백성들이 죽을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피하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김만석은 피하지 않았다. 다리에 맞고 튕겨 나온 공이 다시 황득구로 향했다. 여유롭게 공을 잡은 황득구는 긴 팔로 강하게 휘둘러 엄청난 굉음과 함께 공을 던졌고 그 공이 다시 김만석의 다리로 향하자, 김만석도 이번에는 전에 맞았던 아픔의 기억 때문인지 자기도 모르게 폴짝 뛰어 피하고 말았다.
“악!”
“악!”
김만석이 뛰어서 피한 곳에는 나란히 서 있던 여자애 둘의 다리가 있었고 둘은 한꺼번에 아웃이 되었다.
“야! 김만석! 왜 피해! 넌 맞아도 안 죽잖아!”
여자애들의 볼멘소리에 김만석은 멋쩍은 듯 “아니, 저건 맞으면 나도 죽을 것 같았어….”라며 핑계를 대고 있었다. 왕인 김만석이 피한 이때 이후, 기세는 황득구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 버렸고 결국 황득구가 던질 때마다 움찔움찔하며 피한 김만석 탓에 나머지 아이들은 고통스럽게 전부 죽고 말았다.
“이야, 저런 방법도 있네. 좋은데?”
안창형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돌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황득구가 어린이야구 투수 에이스였대.”
연사랑이 이긴 3반 애들하고 몇 마디 이야기하고 오더니 돌쇠에게 말해주었다.
“어쩐지 공이 정말 세더라.“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형우가 겁먹은 듯 물었고 옆에 서 있는 연사랑도, 여자애들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돌쇠를 바라보았다. 돌쇠는 안창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창형이가 있으니까 이길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안창형은 돌쇠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움찔했다. 돌쇠와 아이들이 안창형을 보고 있었다. 안창형은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정말 창형이가 있으면 이길 수 있어?”
연사랑이 묻는 소리가 안창형 귀에 들렸다. 안창형은 침을 꼴깍 삼키며 뒷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하지. 안창형이 우리 모두를 지켜주고 이기게 해줄 거야. 내가 보장할게.”
안창형은 돌쇠의 말에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묘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창형아, 잘 부탁해.“
연사랑이, 형우가, 그리고 민서, 은희가 안창형을 보고 말했다.
“뭐래.“
안창형은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쑥스러워서 그러는 거야. 잘 부탁한다, 안창형.”
돌쇠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머리 하나가 작은 돌쇠가 내민 손을 안창형은 물끄러미 보다 머뭇머뭇 손을 내밀어 마주 잡았다.
“와!”
뒤에서 형우와 여자애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안창형은 손을 급히 빼고는 “나 먼저 간다.” 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날, 형우는 돌쇠와 집으로 돌아가면서 물었다.
“그런데 돌쇠야, 창형이한테 왕 피구하자고 한 이유가 뭐야?”
“그건….“
널 지키기 위해서야 라고 말할 수 없는 돌쇠. 그러나 그 이유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안창형도 아직은 애야. 지금도 크고 있고 성장하고 있는 아이란 말이야. 안창형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 우린 모두 실수하고 후회하고 살잖아.”
“돌쇠 넌 참 어른 같다. 키도 나보다 훨씬 작은데 말이야. 용기도 있고, 참 부러워.”
“형우, 너도 대단해. 네가 만든 카네이션이나 장난감 같은 걸 봐도 참 대단한 재능을 가진 것 같아.”
“그래? 헤헤헤.”
칭찬을 들은 형우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돌쇠는 형우가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며 예전에 보았던 어두운 얼굴이 사라진 것에 안도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다시 예전처럼 늘 밝게 웃을 수 있는 형우가 될 수 있기를, 돌쇠는 그렇게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