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첫 경기에서 3반이 5반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물리쳤고 그다음 주 수요일에 돌쇠네 반과 4반이 붙는 4강 두 번째 경기가 열렸다. 4반의 왕은 안창형네 패거리 중 하나인 임헌수였다. 안창형은 자신만만해하며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돌쇠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헌수는 걱정하지 마. 던지는 거 내가 다 받을 수 있어.”
연사랑을 비롯한 여자아이들은 안창형의 말에 “우와.” 소리를 내며 안창형의 어깨가 한껏 올라가게 했다. 돌쇠는 자신감 넘치는 안창형이 불안했다. 4반 선수를 보니 임헌수와 덩치가 큰 남자애 하나가 더 있었다. 나머지 남자애 하나와 여자애들 셋은 덩치가 작은 아이들로 선수를 꾸린 상태였다. 어제 김만석네 반과 같은 전술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임헌수보다도 덩치 큰 남자애가 더 세 보인다는 것이었다.
“쟤는 누구야?”
돌쇠가 물었다. 안창형이 임헌수 옆에 서 있는 남자애를 보고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고성한. 쟤도 별거 아니야. 뭐, 투포환 대표로 다음 주에 소년 전국체전 나간다고는 들었는데 투포환이 뭐 별거냐. 투포환하고 피구하고는 전혀 다르잖아. 안 그래?”
“그, 그래.”
돌쇠는 팔뚝이 대포같이 굵은 고성한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안창형 뒤로 연사랑, 김민서, 이은희가 줄줄이 섰고 마지막으로 돌쇠가 섰다. 반대편 공격 쪽을 형우가 담당하기로 했다. 안창형은 호언장담대로 임헌수가 자신만만하게 던진 공들을 쉽게 잡아내는 모습을 보이며 반 아이들의 환호를 받았다. 안창형은 어제 황득구가 공을 쏘아대던 장면을 떠올렸다. 헌수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안창형은 발을 높이 들고 앞으로 크게 내디디며 무게 중심을 앞쪽으로 옮기면서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 공은 임헌수 무릎 쪽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임헌수는 공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정강이에 맞고 튀어나온 공은 다시 안창형에게로 갔고 안창형은 다시 공을 있는 힘껏 던졌다. 임헌수는 다시 정강이 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쪼그려 앉으며 잡았다.
“헤헤, 잡았다.”
임헌수는 아파하면서도 웃고 있었다. 임헌수는 일어나 공을 힘껏 던졌다. 안창형은 잔뜩 긴장하여 공을 받을 준비를 했지만, 임헌수의 손에서 벗어난 공은 큰 호를 그리며 고성한에서 넘어갔다. 공을 넘겨받은 고성한은 “핫!” 큰 기합 소리를 내지르더니 대포같이 굵은 팔뚝으로 대포알같이 묵직한 공을 던졌고 임헌수 쪽에서 공이 날아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안창형 뒤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던 연사랑, 김민서, 이은희는 무방비 상태로 공이 날아오는 것을 겁에 질려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안창형도 임헌수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을 깨닫고 서둘러 뒤돌아섰지만, 고성한의 공을 막아주기에는 진형 자체가 무너져 있었다. 너무 공격에만 신경 쓴 탓이었다.
“끼야!”
여자애 셋이 비명을 질렀다. 연사랑, 김민서, 이은희는 한데 뭉쳐있었고 고성한의 묵직한 공이 그들 정중앙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때 돌쇠가 연어처럼 몸을 날렸다. 온몸으로 여자애들 셋을 막아서며 뛰어들었고 공은 돌쇠의 옆구리에 맞고 위로 튀어 올랐다.
“잡아! 잡아!”
인상을 찡그리며 아파하는 와중에도 공을 잡으라고 소리치는 돌쇠, 그리고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공을 잡은 안창형, 끔찍한 고통을 상상하며 눈을 꼭 감고 비명을 지르던 연사랑, 김민서, 이은희, 반 아이들 뒤에 관심 없는 척 앉아서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고 있던 한덕수, 그리고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아무도 죽지 않은 상황에 환호하는 반 아이들, 회심의 공격이 돌쇠의 환상적인 희생 플레이에 막히는 것을 입을 떡 벌리며 보고 있던 고성한과 임헌수, 순식간에 경기장의 분위기는 돌쇠네 반으로 기울었다.
사기가 오른 돌쇠네 반은 결국 4반을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기는 과정은 험난했다. 돌쇠는 여자애들을 지키는 것과 동시에 공격권도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여러 차례 내던졌다. 배, 등, 허벅지, 얼굴, 자기 온몸으로 공을 맞으며 절묘하게 각도를 조절해 공중에 뜨게 하는 돌쇠를 보며 안창형은 부끄러움, 창피함이라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왕 피구에서 백성을 지키는 것은 왕이 해야 할 의무였다. 그러나 그 의무를 돌쇠가 하고 있었다. 게다가 공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대담하고 용감하고 놀랍도록 절묘하게 자기 몸을 내어주며 공을 띄우고 있었다. 필사적인 돌쇠를 보며 안창형은 가슴 어디에선가 뜨거운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돌쇠는 결국 다섯 번이나 공을 띄우고 여섯 번째도 공을 받아 내려 몸을 던졌지만, 각도 조절에 실패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 당당하고 희생적인 모습에 2반 아이들뿐 아니라 상대편인 4반 아이들조차도 손뼉을 치며 경의를 표했다. 안창형은 절뚝이며 나가는 돌쇠를 보며 이를 악물며 각오를 다졌다. 돌쇠가 물러난 후 형세는 팽팽해졌다. 그러나 안창형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여자애들 셋을 중앙에 모아두고 사방으로 막아주기 위해 다급히 뛰어다녔다. 임헌수와 고성한이 있는 힘껏 던지는 공을 잡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누가 던지더라도 몸을 날릴 수 있게 자세를 낮추고 여자애들 주위를 막아주고 있었다. 운동능력에 있어서는 안창형이 돌쇠에 비해 월등했다. 안창형에게 부족했던 것은 몸을 내어줄 각오였다. 그 각오가 생기니 임헌수의 공에도, 심지어 고성한의 공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몸을 날려 여자애들을 지켰다. 공격에서는 형우가 큰 역할을 했다. 운동이라면 젬병이 형우는 어떻게 해서든 돌쇠 대신 고군분투하고 있는 안창형을 도와주려고 좌우로 열심히 뛰어다니며 상대방을 교란했고 안창형이 내준 공을 받아 공격하는 척하며 다시 안창형에게 내주는 식으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했다. 형우 덕분에 혼란해진 상대편을 안창형은 하나씩 맞춰 나가며 결국 2반은 돌쇠 하나만 죽고 이길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한덕수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엇인가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교무실로 돌아갔고 반 아이들은 반대표들을 둘러싼 채 기뻐했다. 돌쇠는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안창형에게 다가갔다.
“멋있더라. 안창형.”
“뭐, 뭘.”
안창형이 겸연쩍어하며 시선을 피했다.
“네가 끝까지 여자애들 셋이 아무도 안 맞게 지켜줬잖아. 멋있었어.”
돌쇠 옆으로 연사랑, 김민서, 이은희가 붙어 섰다.
“고마워.”
여자애들이 단체로 고맙다고 하자 안창형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야, 뭘 이런걸, 나 말고 형, 형우도 잘했어. 쟤 쓰러져 있는 거 봐라. 하도 빨빨거리면서 뛰어다녀서….”
형우는 땅바닥에 발라당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땀범벅이 된 얼굴은 녹초가 되어있었지만 밝게 웃고 있었다.
“이겼다…!”
힘없이 외친 형우의 말에 돌쇠와 아이들이 같이 웃었다.
“그래, 이겼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며 안창형은 발갛게 부은 팔뚝과 정강이를 보며 남모를 뿌듯함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가슴 속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공을 맞은 부위는 아팠다. 그러나 아픈 것 보다 누군가를 지켜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이겨냈다는 기쁨이 더 컸다. 집에 도착하니 거실에 있던 아버지가 “무슨 좋은 일 있니?”라고 물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임대 사업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같은 방식이 아닌 아버지만의 방식으로 해 나가고 있었다. 월세를 낮추고 독촉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람을 얻는 것이 돈을 얻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아버지의 사고방식을 싫어했다. 그래서 손자인 안창형을 자신의 후계자로 교육하고 가르치고 싶어 했다. 안창형은 이제야 아버지의 말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오늘, 반 피구 대항전에서 이겼어요.”
“그래? 잘했네.”
안창형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려다 멈칫하고 아버지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왕 피구였는데, 제가 왕이었고, 제가 다른 애들을 지켰어요. 아무도 안 맞게….”
안창형은 아버지 건너편 소파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했다. 돌쇠와 형우, 그리고 여자애들, 왕 피구와 자신의 활약상까지 전부 미주알고주알 말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강하게 커서 다른 사람 위에 서기를 바랐던 할아버지였기에 섣불리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아버지에게 전부 풀어놓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안창형을 대견하게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