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뜨거운 6월 둘째 주 수요일, 수업을 마치고 2반과 3반 아이들이 전부 운동장에 모였다. 오늘은 반 피구 대항전 결승전이 펼쳐지는 날이다. 아침부터 안창형의 얼굴에는 굳은 각오가 보인다. 지난주 4반과의 경기 때 보여줬던 모습에 온 반 아이들이 안창형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안창형을 대하는 말과 태도에 두려움, 무서움보다 경의와 친근감이 담기게 되었다. 돌쇠에게 보내던 말과 눈빛과 태도를 안창형에게도 보이게 된 것이었다. 안창형은 자신을 대하는 반 아이들의 반응이 낯설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돌쇠가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아 가고 있었다. 이제는 반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지도 자기 기분에 따라 장난을 치지도 않았다. 좋은 방향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는 안창형을 돌쇠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작정 혼내주려고만 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안창형은 돌쇠와 형우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근데 우리 3반 황득구 상대하려면 뭔가 작전을 세우는 게 좋지 않을까?”
안창형은 연습장에 열심히 그림을 그려 자신이 밤새 짜온 전략을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다.
“앗, 침….”
형우가 얼굴에 튄 침을 닦아내며 웃자, 안창형이 “미안.”이라고 말하며 손으로 쓱 닦아주고는 웃었다. 돌쇠는 그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열심히 전략을 짜고 있는데 연사랑과 김민서, 이은희가 달려와 “비겁해, 우리만 빼놓고 작전 짜는 거야?”라며 귀여운 투정을 했다. 결승전을 준비하는 일주일 내내 돌쇠네 반 아이들은 함께 작전을 짜고 연습하고 웃고 떠들며 그 시간을 온전히 함께 보냈다.
결승전 당일 아침부터 결연한 각오를 하고 온 안창형의 얼굴을 보자 돌쇠는 이제는 때가 가까워져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창형에게 기대를 걸고 믿고 맡겨보자고 생각했다. 경기장에 모여 동전 던지기를 하고 공격권을 정했다. 돌쇠는 안창형에게 대표로 나가 동전 던지기를 하라고 했고 안창형은 반장인 돌쇠가 해야 한다며 사양했지만, 돌쇠와 아이들은 안창형을 경기장 중앙으로 밀어서 내보냈다. 어깨에 모든 기대와 부담감을 잔뜩 지고 경기장 중앙으로 나간 안창형은 동전 던지기에서 앞쪽을 선택했고 동전은 뒷면이 나와 첫 공격권은 3반으로 넘어갔다.
“미안해.”
안창형이 면목 없다는 듯 말했지만, 돌쇠는 안창형의 등을 찰싹 때리고는 말했다.
“오히려 좋아. 우리 전략이 먹히는 지 볼 수 있잖아.“
결승전, 돌쇠가 세운 전략은 돌쇠가 반대편 공격수를 맡고 안창형 뒤로 연사랑, 김민서, 이은희가 서고 마지막으로 형우가 서는 것이었다. 안창형과 아이들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형우가 반대편 공격수를 맡는 것이 좋지 않으냐며 반대했지만, 돌쇠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관철했다.
“내가 어제 발을 접질려서 움직이는 게 힘들어. 넘어지면서 손도 잘못 대서 던지는 것도 힘들고. 그래도 우리한테는 창형이가 있으니까 괜찮아. 다 막아줄 거야. 이길 수 있어. 난 믿고 있다.“
안창형은 커지는 부담감에 결연한 표정이 더 비장해졌다.
“나도 믿어. 그리고 나도…. 힘내볼게.”
형우도 결연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자아이들도 기대에 찬 눈으로 안창형에게 “우리도 믿어.”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숨을 깊이 몰아쉬는 안창형을 보며 돌쇠는 속으로 말했다.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잘 부탁한다.’
돌쇠는 반대편 공격수로 자리 잡았지만,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발도 괜찮고 손도 아프지 않았다. 이제는 안창형과 형우, 연사랑, 김민서, 이은희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벌써 6월 중순이다. 다음 주면 돌쇠는 파견 기간이 끝난다. 이미 안창형은 자신 속에 있는 귀한 씨앗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에 오늘 경기에서 지든 이기든 그것은 거름으로써 소중하게 쓰일 터였다. 여기서 자신이 개입하는 것은 저 아이들에게 오히려 역효과일 뿐이다. 경기가 시작되고 황득구의 공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뒤에 붙은 백성들을 지키는 안창형을 보며 돌쇠는 손을 불끈 쥐었다.
‘잘한다!‘
3반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엄청난 속도로 던지는 공을 안창형은 입술을 깨물며 막아내고 있었지만, 발과 팔에 맞은 공은 엄청난 반발력으로 다시 황득구에게 돌아가 버릴 뿐이었다. 경기 흐름을 가져오기 위해선 공격권을 가져올 필요가 있었다. 안창형은 이렇게 해서는 언젠가는 본능적으로 공을 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공격권을 가져와야 했다. 3반과의 경기에서 돌쇠가 온몸을 던져가며 공격권을 가져왔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안창형은 왕이었고 자신이 섣불리 몸을 날리다가는 뒤에 있는 아이들에게 공이 튀어서 맞을 수도 있었다. 그때 다시 한번 황득구가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땅에 내리꽂으며 공을 던졌다. 공은 안창형의 왼쪽 옆구리 쪽으로 향했고 피하면 여자애들이 맞을 수밖에 없는 방향이었다. 어쩔 수 없이 팔과 다리를 들어 공을 막으려는데 뒤에서 형우가 몸을 날리며 뛰어들었다. 팔로 머리를 감싸고 등을 동그랗게 말아서 공이 날아오는 쪽으로 몸을 던진 형우, 날아오던 공은 형우의 동그랗게 구부러진 등에 맞고 대각선 위로 튀어 올랐다. 돌쇠는 입을 떡 벌리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돌쇠뿐만이 아니었다. 반 아이들 전체가 입이 벌어져 다물지 못했다. 안창형은 형우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랐지만 튀어 오른 공이 상대편에게 넘어가기 전에 뛰어가 잡았다. 바닥에 넘어져 아파하고 있는 형우를 향해 안창형이 손을 내밀었다. 형우가 그 손을 잡으며 일어섰다.
“나도, 조금은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 말에 안창형이 울컥했다. 눈물을 집어삼키려 공을 손으로 팡! 팡! 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럼, 이제 우리도 한번 가보자!”
“와!!!”
반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3반도 4강 첫 경기를 치르고 여자애들 둘은 황득구 뒤로 숨는 전략으로 변경한 터였다. 안창형은 상대 진형을 보고 공을 손에 꽉 쥐고 도움닫기를 했다. 중앙선 앞에서 뛰어오른 안창형은 있는 힘껏 팔을 휘둘러 공을 던졌다. 그 모습을 긴장하며 보고 있던 황득구는 이를 꽉 물며 자기 몸에 부딪힐 공을 기다렸다. 그 뒤에 숨어있는 여자애들 둘은 두 눈을 꼭 감았다. 넓게 펼쳐져 있던 남자애 둘도 긴장한 채 어디로 올지 모르는 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창형의 손을 떠난 공은 쏜살같이 황득구를 향할 것처럼 보였지만 느릿느릿 아름다운 호를 그리며 황득구 뒤에 있는 여자애들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통, 통
두 눈을 꼭 감고 있던 여자애 둘의 머리에 차례로 튀긴 공은 뒤로 흘러 돌쇠에게 갔다. 공을 들고 안창형을 보며 웃는 돌쇠. 안창형은 돌쇠를 보며 웃었다. 전에 돌쇠에게 당했던 것을 활용해 공격에 사용한 것이었다. 활짝 웃는 안창형과 환호하는 반 아이들, 그들을 보며 돌쇠는 웃었다. 돌쇠는 안창형에게 공을 던져주었다. 공을 받은 안창형은 다시 한번 공격 준비를 했다. 황득구는 포물선을 그리며 넘어오는 공에 긴장해서 반응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 안창형이 다시 한번 도움닫기를 해서 날아오르자, 황득구는 결심한 듯 안창형 쪽으로 달려들어 똑같은 높이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안창형이 던지려는 공을 블로킹하듯이 두 손을 높이 뻗어 막아버렸다. 중앙선을 넘기 전 날아올라 공을 던지는 것은 상대방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강점이 있었지만, 그 뒤에 남은 백성들이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황득구는 그 약점을 노리려 했다. 안창형의 공을 막아낸 황득구는 자기 진영으로 튄 공을 재빨리 잡아 그 자리에서 공을 던졌다. 연사랑의 얼굴로 향한 공은 인정사정없었고 연사랑의 비명과 함께 공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꼼짝없이 얼굴에 공을 맞을 것으로만 생각했던 연사랑이 눈을 떠 상황을 확인했다. 연사랑 앞에는 형우가 쓰러져있었다. 연사랑에게 맞기 전 형우가 몸을 날려 막아준 것이었다. 형우는 공에 맞은 얼굴을 감싸고 쓴웃음을 짓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두 번에 걸친 형우의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 밖으로 걸어 나오는 형우를 향해 반 아이들의 환호와 칭찬이 쏟아졌다. 돌쇠는 그 모습을 눈물이 글썽글썽하여 보고 있었다. 작고 연약했던 형우가, 혼자서 아파하기만 했던 형우가 훌쩍 커버린 것만 같은 기분에 대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