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는 4대3으로 돌쇠네 반이 앞서고 있었다. 다만 경기 양상만 보면 황득구를 비롯한 날렵한 남자애들 3명이 있는 3반 쪽이 유리한 형국이었다. 형우를 맞고 흐른 공은 황득구에게 갔다. 황득구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도움닫기를 시작하는 황득구. 안창형이 날아오른 것처럼 황득구도 날아올랐다. 애초에 황득구는 지키는 왕이 아니었던 탓에 안창형과 비교해 자유로웠다. 남은 남자애들 둘은 중앙선에서 멀리 떨어져서 혹시 모를 기습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날아오른 황득구는 높은 위치에서 공을 대각선 방향으로 내리꽂듯이 던졌다. 안창형 머리 위를 지나 여자애들을 맞히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 생각을 알아챈 안창형이 외쳤다.
“다 앉아!”
연사랑과 김민서, 이은희는 안창형의 외침에 급히 몸을 숙이고 앉아 안창형 뒤로 숨었고 안창형은 손을 높이 뻗어 공을 막았다.
팡!
안창형의 손에 맞고 높이 튀어 오른 공이 반대편에 서 있는 3반 여자애에게 향했다. 그때, 웅크리고 있던 연사랑이 튀어 오른 공을 향해 달려가 공을 품에 안았다. 안창형은 연사랑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김민서와 이은희는 기뻐하며 달려가 연사랑을 얼싸안았다. 공을 건네받은 안창형은 다음 공격을 생각했다. 그때 건너편에 있던 돌쇠가 조금씩 자리를 옮기는 것이 보였다. 경기장 위 황득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다 안창형의 손에 있는 공에 집중하고 있던 터라 안창형 외에는 돌쇠가 경기장 모서리 쪽으로 옮긴 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황득구가 본인 진영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양옆으로 남아있는 남자애들 둘이 서 있었다. 안창형은 돌쇠와 눈이 마주쳤다. 돌쇠가 눈짓했다. 전에 안창형이 짜온 작전을 하자는 뜻이었다. 안창형은 중앙선 바로 앞에 가서 있는 힘껏 팔을 휘둘러 공을 던졌다. 그러나 공은 황득구 쪽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돌쇠에게 날아갔다. 돌쇠가 공을 받자, 황득구 편 진형이 흐트러졌다. 공을 맞아도 되는 황득구까지 혼란스러워하며 돌쇠에게서 멀어지려 했고 남은 두 명이 황득구를 앞으로 밀어내며 “넌 맞아도 안 죽잖아, 왜 뒤로 와!”라고, 소리쳤다. 돌쇠는 공을 받자마자 흐트러진 황득구 진형의 왼편으로 공을 던졌고 그쪽으로 몸을 날린 안창형은 공을 받자마자 공중에서 몸을 돌려 힘껏 공을 던졌다.
팡!
공은 황득구 왼편으로 파고들던 남자애 허리에 맞았다. 들끓는 함성. 그러나 공이 황득구 편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자 안창형은 기뻐할 틈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자신의 위치로 돌아왔다. 이제 황득구 쪽에는 백성 한 명만이 남았다. 황득구는 어쩔 수 없이 남은 남자애 하나를 자신의 뒤에 숨으라고 지시하고 공격을 위해 중앙으로 자리 잡았다. 점프 공격은 요행일 뿐이고 자칫 역공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작전을 바꿨다.
’안창형을 무너뜨린다!‘
처음 5반을 상대할 때 썼던 작전이었지만 이번엔 노리는 곳을 바꾼다. 황득구는 공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고 다리를 높이 들었다. 무게 중심을 내리꽂는 왼발로 옮기면서 강한 어깨로 있는 힘껏 안창형의 얼굴을 노리고 공을 던졌다. 대포알같이 날아오는 공을 쳐다보는 안창형, 주마등과 같이 스쳐 지나가는 지난 시간, 그중 돌쇠와의 피구 대결 장면이 떠오른다. 자신이 힘껏 던진 공을 얼굴로 받아 낸 돌쇠, 그것도 얼굴의 각도를 미묘하게 조정해서 위로 떠오르게 만들어 공격권까지 가져왔던 그때, 안창형은 이를 꽉 물고 턱을 쭉 뺐다.
“덤벼!”
펑!
안창형은 엄청난 충격이 얼굴에 가해져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높이 튀어 오른 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한참을 공중으로 솟아오르다 천천히 땅으로 떨어지는 공을 안창형은 두 손을 벌려 품에 안았다. 연사랑과 아이들이 환호하며 안창형에게 다가가고 있는데 공을 품에 안은 안창형은 중앙선 부근에서 넋이 빠져 자신을 보고 있는 황득구를 보고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서 중앙선으로 달려가 날아오르려 했다. 깜짝 놀란 황득구는 날아오르려는 안창형을 막기 위해 전과 같이 높이 뛰었지만, 그것은 안창형의 페이크였다. 안창형은 높이 뛸 것처럼 무릎을 구부린 후, 자신의 동작에 속은 황득구가 높이 떠오른 상태에서 뒤로 홀로 남은 3반의 유일한 백성을 향해 공을 던졌다. 쏜살같이 날아간 공이 홀로 남은 3반의 남자아이의 정강이에 맞았다.
퍽!
3반의 유일한 백성이 다리에 공을 맞자, 운동장 위로 돌쇠네 반 아이들이 환호성을 외치며 몰려들어 안창형과 형우, 그리고 연사랑과 김민서, 이은희를 둘러싸고 기뻐하고 있었다. 돌쇠는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가슴 속에 밀려드는 뭉클함, 대견함, 이제는 사라져야만 하는 아쉬움, 수많은 감정 속에서 주체 못 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을 훔치고 반 아이들 속으로 들어온 돌쇠는 안창형과 형우에게 다가가 함께 웃으며 기쁨을 나눴다.
교장실 창문에서 경기를 관전하고 있던 교장선생님은 기뻐하는 아이들, 아쉬워하는 아이들 모두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시상하러 내려온 교장선생님을 본 한덕수는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자리를 정돈했다.
“여러분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는 것이 제게는 큰 기쁨입니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었지만, 진정한 승자는 여러분 모두입니다. 서로를 위해 뛰고 지키고 땀 흘리는 그 모든 순간이 여러분에게는 큰 선물일 거예요.”
학교장상은 네 반 모두에게 돌아갔다. 결승전을 구경하고 있던 4반과 5반은 협동 상을 받았고 결승에서 진 3반에는 모범상이 주어졌다. 우승한 돌쇠네 반에 주어진 상은 희생 상이었다. 반장 돌쇠가 상장을 받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우승한 팀에게 주어지는 상품은 특별히 학부모회장님께서 전달해 주시겠습니다.”
학부모회장인 연사랑의 엄마는 언제나 새침하고 공부만 하고 책만 보던 사랑이가 뙤약볕에 얼굴이 그을려 가며 공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모습, 그리고 공을 잡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눈에서 눈물을 폭포수같이 흘리고 있었다.
“어, 어, 죄송해요. 흑, 제가, 연사랑 엄마예요. 여러분이 오늘 함께 뛰는 모습을 보고 너무 감동하였어요. 어이구, 이게 무슨 주책이래, 잠시만요. 눈물 좀 닦고. 그래요, 우리 교장선생님 말씀대로 진정한 승자는 여기 있는 모두에요. 그러니 여러분 모두에게 부상을 주어야겠죠? 여기 있는 모두 같이 먹으러 가요!“
“와!!!”
운동장은 아이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시뻘게진 눈으로 연사랑 곁으로 온 학부모회장은 연사랑을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던 돌쇠를 향해 “네가 석종이구나. 우리 사랑이가 늘 말하던.”이라며 말하자 연사랑이 얼굴이 빨개져서 “엄마!”라고 외치고는 학부모회장의 입을 막았다.
그날 식사는 선생님들을 포함한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시끌벅적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그 가게는 덕분에 두 시간이 넘는 동안 다른 손님들을 받을 수 없었지만, 식욕이 왕성한 아이들이 끊임없이 메뉴를 주문한 덕에 그날 매출이 세배나 올라 다음에 또 오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돌쇠와 대표 선수들은 한자리에 모여 경기 얘기로 꽃을 피웠고 서로의 멋있었던 장면을 이야기해 주며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날의 백미는 안창형이 형우를 칭찬한 일이었다.
“형우가 몸을 날려서 처음 공격권 뺏어오지 못했으면 오늘 힘들었을 수도 있어.”
“아, 아니야. 창형이 네가 있으니까 이긴 거지.”
“그리고 네가 여자애들도 지켜줬잖아. 진짜 멋있었어.”
안창형이 치킨너깃을 입에 넣으며 입이 마르도록 형우를 칭찬했다.
“나는 네가 마지막에 황득구를 속여서 하늘로 날려버리던 장면이 정말 멋있더라. 우리도 다 속았어.”
“맞아, 맞아. 진짜 최고였어.”
여자애들도 거들었다. 안창형이 부끄러워하며 입에 프렌치프라이를 넣었다. 돌쇠는 말없이 형우와 안창형이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제 돌쇠가 형우와 안창형 사이에 낄 필요가 없었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돌쇠에게 안창형이 물었다.
“너는 오늘 뭐가 제일 좋았어?”
돌쇠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천천히 그리고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제일 좋았어.”
그 말에 형우와 안창형은 빵 터졌고 연사랑은 얼굴을 붉혔으며 김민서와 이은희는 웬일이니? 라며 서로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