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교실 풍경 속, 돌쇠만 홀로 감상에 젖어 있었다. 3개월간 있었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과 같이 떠올라 지나가고 오늘로써 이 교실과도 아이들과도, 형우와도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슬픔이 머리끝까지 차 있었다. 그때 눈부신 하얀 빛이 주위를 둘러싸며 교실은 사라지고 돌쇠만이 덩그러니 하얀 공간에 앉아있었다.
“수호천사 돌쇠.”
맑고 투명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네.”
돌쇠는 황급히 내려앉아 무릎을 꿇었다.
“이제 돌아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마음에 후회되는 일은 없나요? 형우는 잘 지켜주었나요?”
“......네.”
“마음에 슬픔이 가득하군요. 지난 3개월이 후회되나요?”
돌쇠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형우 곁에 보내주셔서. 지금은 그저 형우 곁을 떠나는 것에 마음이….”
“형우와 함께 한 모습은 잘 지켜보았습니다. 피구도 재밌게 잘 봤어요. 그렇지만 이제 그만 형우를 믿어줄 때가 온 것 같아요. 형우가 기쁜 모습으로 돌쇠를 기억할 수 있게 그렇게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돌쇠는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형우 마음을 생각 못 하고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잘하고 귀환하도록 하세요. 기다릴게요.”
그렇게 맑고 투명한 음성이 사라지자 다시 교실이 비쳤다.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모습 속에 밝게 웃는 형우와 창형이도 있었다. 돌쇠는 슬픔을 떨쳐버리듯 숨을 강하게 내뱉고 형우와 창형이 곁으로 다가갔다. 같이 웃고 떠들며 그렇게 그날 하루를 즐겁게 기쁘게 보냈다.
종례 시간에 한덕수가 돌쇠를 나오라고 하고 이제 돌쇠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는 말을 할 때, 반 아이들은 전부 충격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특히 그중 세 명이 큰 충격을 받았는데 하나는 안창형이었고 두 번째는 연애편지를 아직도 완성 못 한 연사랑이였고 마지막은 가장 친한 친구 형우였다. 돌쇠는 기쁘고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앞으로 나와 인사했다.
“3개월 정도였지만 나는 너희들을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집안 사정으로 먼 나라로 가게 되는데, 가서도 너희들 잊지 않을게. 너희도 나 잊지 말고 공부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 열심히 놀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함께 기뻐하는 거다! 알았지?”
인사를 마친 돌쇠는 교실 밖에 있던 한조, 관우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돌쇠가 떠나자, 연사랑은 왕 울음을 터트렸고 안창형은 허탈한 한숨을 쉬었고 형우는 눈시울이 빨개졌지만,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교실엔 정적과 함께 연사랑의 울음소리만 떠나갈 듯 울리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형우와 안창형은 비슷한 상실감을 안고 같이 걷고 있었다.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안창형이 화가 난 듯, “야, 석종이 그 자식 뭐야. 뭔데? 갑자기 이러기 있어?”라고 말하고 길에 굴러다니던 돌을 발로 찼다. 형우가 “무슨 사정이 있겠지….” 라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안창형이 “넌 화도 안 나냐? 너 석종이랑 친하잖아. 친한 친구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라고, 말하며 속에 불을 지르자, 형우도 눈에 눈물이 핑 돌며 “나도 화나!”라며 안창형이 찬 돌을 다시 한번 찼다. 돌이 빠르게 굴러가 길 끝에 가 멈췄는데 거기에 돌쇠가 서 있었다.
“석종아!”
안창형과 형우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부르니 돌쇠가 만면에 가득 미소를 띠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야, 너희 이제 베프 된 거야?”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돌쇠를 보니 다시 화가 나는 안창형이었다.
“야, 너 어떻게 나한테, 아니 우리한테 그럴 수 있어! 어? 전학을 가면 간다고 미리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돌쇠는 화를 내는 안창형이 귀여웠다.
“이야, 창형아, 네가 나를 그렇게 좋아하는 줄 처음 알았는데? 그런 줄 알았으면 좀 더 잘해줄 걸 그랬다. 하하.”
“뭐, 좋아하긴 누가 좋아하냐, 그냥 말은 해줄 수 있지 않냐, 그거지.”
형우는 돌쇠가 찾아온 것이 마냥 기뻤다.
“너 인사하러 온 거야? 우리한테?”
돌쇠는 손에 든 케이크를 보여주며 말했다.
“오늘 형우 너 생일이잖아. 생일 축하는 하고 가야지.”
형우는 감격해서 말을 잃었고 안창형은 “너 생일이었어? 왜 말을 안 했어.”라며 핀잔을 주고 있었다.
결국 안창형도 돌쇠의 손에 이끌려 함께 형우 방에서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축하를 해주었다. 작은 상에 조그마한 초코케이크를 올려놓고 형우와 안창형, 그리고 돌쇠가 나란히 둘러앉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우, 생일 축하합니다!”
돌쇠는 형우 혼자 생일을 맞았던 여덟 살 생일날을 떠올렸다. 그날, 돌쇠는 형우 옆에서 생일 노래를 불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지금 이렇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것이 감사하고 꿈만 같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돌쇠뿐만 아니라 안창형도 있었다. 안창형은 형우가 집에서 혼자 밥 먹는다는 것도, 오늘이 형우 생일일 것도, 그 생일을 혼자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도, 그리고 이렇게 함께 축하해 줄 수 있는 것이 기쁜 일이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셋이 함께 작은 초코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형우는 라면을 끓여주었고 안창형은 자기가 먹은 라면 중에 제일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라면을 다 먹고 돌쇠는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우와 안창형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돌쇠는 그 모습을 보며 가방에서 미리 적어 놓은 쪽지를 꺼내어 둘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헤어지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자. 그때는 웃으면서 만나는 거야!“
그렇게 돌쇠는 형우 집을 나왔고 형우와 안창형은 돌쇠가 준 쪽지를 펴 보았다.
- 멋있는 안창형, 더 멋있게 우리 반 애들 잘 부탁해!
- 내 가장 친한 친구 형우야, 넌 웃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려. 앞으로도 계속 웃으면서 지내고, 그렇게 웃으면서 나중에 나랑 보는 거야!
둘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애써 숨기려 서로 등을 지고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