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쇠가 형우 곁으로 내려온 지도 이제 곧 3개월이고 다음 주 수요일 6월 19일에, 형우의 생일인 그날 돌쇠는 형우와 헤어져야 한다. 돌쇠는 헤어질 준비를 해야 했다. 형우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렸다. 피구대회 이후로 형우는 반 아이들과도 조금씩 벽을 허물고 지내고 있었다. 언제나 소심하고 말이 없던 형우가 피구 대항전에서 몸을 던져 공을 막아내는 모습은 형우 자신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에게도 형우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니, 돌쇠도 형우에 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돌쇠에게 형우는 아직도 어리고 약한 아기였다. 돌쇠는 형우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옆에 있었다. 처음 웃을 때도, 처음 말을 했을 때도, 처음 걸음마를 했을 때도 돌쇠가 그 옆을 조마조마해 가며 지켰다. 언제나 밝기만 했던 어린 형우의 얼굴에 조금씩 그늘이 져 가는 것도 곁에서 지켜봤다. 어둡기만 한 현실이 괴롭힐 때 곁에서 지켜보며 같이 아파했다. 그러다 화가 나서 대신 혼내주고, 결국 땅으로 귀양살이를 오게 되었다. 귀양인지 파견인지 모를 땅에서의 임무, 그것은 사람이 되어 형우를 지키는 것이었고 돌쇠는 형우 옆에서 친구가 되어 형우를 지킬 수 있는 것에 기뻤다. 그래서 형우를 괴롭히려 하는 안창형을 혼내주려 했고 대신 막아주려 했고 대신 해결해 주려 했다. 그러나 안창형 뒤에 숨어서 있기만 하면 되는 그 자리에서 형우가 용감하게 뛰쳐나와 대포알같이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던지던 모습을 보며 돌쇠는 머리를 쇠공에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애지중지 둥지에서 보호하던 새끼 새가 둥지에서 떨어져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어미 새가 식겁해서 새끼 새를 향해 날아간다. 그러나 새끼 새는 서툴지만 스스로 아등바등 날갯짓해서 삐뚤빼뚤 날아오른다. 그런 새끼 새를 바라보는 어미 새의 마음일까. 돌쇠는 그제야 자기의 잘못과 이곳으로 보내진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돌쇠는 남은 일주일 동안 형우를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피구대회가 끝난 다음 날, 임헌수와 김만석이 조회 전에 안창형을 보러 반에 들어왔다. 그러나 들어오다 형우가 눈에 띄자 형우에게 달려와 임헌수는 헤드록을 하고 김만석은 형우 머리를 북북 강하게 쓰다듬으며 “강형우, 이 자식 많이 컸네?”, ”어제 좀 하더라? “라며 반쯤 놀리듯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던 돌쇠는 그런 행동조차도 형우를 괴롭게 하는 것 같아 화가 났지만,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형우는 애써 웃으며 “아니야. 이러지 마.”라고, 말하며 목에 둘린 팔을 풀려고 했다. 그러자 임헌수는 “어쭈, 이게 반항하네?”라며 팔을 더욱 꽉 조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보다 못한 돌쇠가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창가 쪽에 앉아있던 안창형이 일어서며 말했다.
“야, 그만해.”
안창형은 말에는 위엄이 있었다. 돌쇠는 안창형을 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임헌수와 김만석은 안창형이 저지하자 당황했지만 형우에게서는 손을 뗐다. 안창형은 형우 옆으로 오더니 형우에게 “야, 강형우, 어제는 그렇게 용감하게 뛰어들더니 지금은 뭐냐. 네가 싫으면 싫다고 확실하게 말해. 실실 웃으면서 말하지 말고. 알았지? “라고 말하고 뻘쭘해 있는 임헌수와 김만석 어깨에 팔을 두르고 웃으며 복도로 나갔다. 형우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돌쇠는 그런 형우를 보며 가만히 있었다. 알을 깨고, 날갯짓하고 그렇게 날아오를 때를 기다려야 한다.
형우는 조금씩 알을 깨고 있었다. 서툴지만 날갯짓하려고 했다. 아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같이 떠들고 같이 웃는 그런 평범한 초등학생이 되어 가고 있었다. 돌쇠는 그런 형우를 지켜보며 먹먹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낄 뿐이었다. 변화는 안창형에게도 있었다. 형우와는 다른 의미에서 아이들과의 벽을 허물고 있었다.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고 업신여기는 태도가 사라졌다. 친근감의 표시로 때리고 헤드록을 걸고 하던 것들도 사라졌다. 경망스럽던 행동이 사라지고 조금씩 품격이 생기고 있었다. 돌쇠는 그런 안창형을 보며 “멋있어졌네, 안창형.”이라며 칭찬했다.
연사랑은 연애편지를 쓰고 있었다. 반 피구 대항전을 치르면서 돌쇠에 대한 마음이 더 커져서 표현하지 않고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밤에 몰래 방에서 연애편지를 쓰다가 찢고 쓰다가 찢으며 밤을 새웠다. 피곤해 보이는 연사랑에게 돌쇠가 “너 어디 아파?”라는 말을 듣자 다시 발개진 볼과 함께 자기 멋대로의 상상에 빠져버리는 13살 소녀였다. 한덕수는 반 피구 대항전에서 우승하자 다음 날 종례 시간에 반 아이들에게 이례적으로 아이스크림을 샀다. 반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은 것 때문인지 아이들이 열정을 다해 뛰는 모습을 보며 감명을 받은 탓인지 돌쇠는 알 수 없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떠나기 하루 전날 한조와 관우는 학교로 찾아와 전학 절차를 밟았다. 먼 나라로 발령을 받아 바로 떠나야 한다는 핑계로 전학 신청을 했지만, 한덕수는 의외로 돌쇠를 보내며 아쉬운 마음을 보였다.
“석종이가 참 반장으로서 일도 잘하고 아이들도 많이 좋아했는데 아쉽군요.”
한덕수의 말이 인사치레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내일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말하고 인사하는 것으로 할게요.”
한덕수의 말에 돌쇠는 가슴 한쪽이 저리는 듯 아팠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며 돌쇠가 말했다.
“나, 내일 학교 가기 싫다. 정말….“
눈시울이 붉어진 돌쇠를 보며 관우가 웃었다.
“아이고 우리 아기, 학교 가시 시쩌요?”
돌쇠가 주먹으로 툭 관우 배를 쳤다. 관우는 웃으며 배를 감쌌지만, 그 광경을 보고 지나가던 할머니는 기겁하며 “세상에, 세상에, 말세여, 말세여, 저 쪼그마한 애가 자기 아빠를 때리네. 어이구, 말세여.”라고 혀를 찼고 한조는 모른 척 둘을 떼어 놓고 발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