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피구 반 대항전 날짜가 정해졌다. 때는 5월 마지막 주, 수요일부터 매주 수요일에 총 3주간 진행하기로 했다. 돌쇠는 반 아이들 앞에 서서 말했다.
“총 네 개 반이 참가하기로 했고 대진표 추첨 결과 우리는 6월 첫째 주 수요일에 4반 하고 붙게 됐어. 첫 경기는 다다음 주 수요일에 3반 하고 5반이 하기로 했고. 거기서 이긴 팀이 6월 둘째 주 수요일에 최종 결승전을 하는 거야. 그리고 최종 우승 반에는 교장선생님이 주시는 상장과 학부모회에서 후원한 상품이 주어질 거야.“
의외의 소식에 반 아이들이 환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돌쇠가 처음에 교무실을 돌아다니며 왕 피구 반 대항전을 하려고 한다고 선생님들 허락을 구하러 다닐 때만 해도 선생님들의 호응도 없었고 어린 것들이 별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타박하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다. 가까스로 한덕수와 친한 세 선생님의 동의를 받고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교장선생님은 자발적으로 나서는 아이들이 기특하기도 했고 2학기에 있을 장학사 평가에서 좋은 사례로 내세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학교 측의 인정을 받는 대회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한덕수가 애초에 돌쇠의 요구를 허락한 이유도 별반 다를 것 없었는데 참여하기로 한 반대표에 안창형과 연사랑이 포함된다는 것을 듣고 학부모 면담 때 내세울 수 있는 화젯거리로 삼고자 했을 뿐이었다.
학부모회에서 상품을 후원하기로 한 이유는 역시나 연사랑의 입김이 컸다. 연사랑은 반장 선거에서 참패한 후 새초롬 돌쇠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흘겨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부드러운 돌쇠의 성품을 보고 가슴에 시한폭탄이 심어진 듯 돌쇠만 보면 콩닥콩닥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안게 되었고 집에만 가면 엄마에게 오늘은 돌쇠가 이랬네 저랬네!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런 딸을 보며 사랑이가 돌쇠란 녀석에게 흠뻑 빠졌다고 생각한 학부모회장은 딸에게 “그럼 너도 왕 피구에 참여해 봐.”라며 적극 권유했고 그렇게 딸이 참여하는 왕 피구 반 대항전에 학부모회장으로서 우승하는 반 전체에 맛있는 햄버거 세트를 상품으로 걸게 된 것이었다.
대항전까지 남은 2주간 선발된 여섯 명을 상대로 점심시간마다 나머지 반 아이들이 돌아가며 연습 상대를 해주기로 했다. “아니야, 안창형! 이건 왕 피구야. 너는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아. 너는 주위 아이들이 맞지 않도록 지키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왜 자꾸 네가 피하려고 해. 그러니까 다른 애들이 맞잖아. 네가 막아줘야 해. 대신 맞아줘야 한다고.“
돌쇠는 자꾸만 피하려고만 하는 안창형이 답답해 소리쳤다.
“알아! 안다고! 근데 그게 내 본능이 그렇게 시키는데 어떡해! 내 운동신경이 좋은 걸 어떡하냐고!”
안창형도 대신 맞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역시나 맞는 건 싫다. 내심 ‘내가 왜 아파야 해? 우리 애들 다 맞아 나가기 전에 내가 다 맞추면 끝 아니야?’ 대신 맞아 주고 막아주라는 돌쇠가 이해가 안 됐다. 돌쇠는 하는 수 없이 연습 조로 자신이 들어가고 대표들을 상대하기로 했다.
“잘 봐!”
안창형을 상대하며 돌쇠는 있는 힘을 다해 공을 던졌고 형우가 배를 맞고 죽었다. 안창형은 아이들을 막아줄 생각이 없었고 맞고 흐른 공을 들고 공격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을 잡은 안창형은 무서운 기세로 공을 던져댔고 돌쇠는 그 공을 온몸을 던져가며 맞고 막아주느라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었다. 결국 접전 끝에 돌쇠네 팀은 전원이 죽어 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돌쇠는 이길 생각보다 안창형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겨서 통쾌한 웃음을 날리고 있던 안창형에게 돌쇠는 다가가 묵직하게 물었다.
“너희 팀 애들을 돌아봐.“
안창형은 돌쇠 말대로 뒤를 돌아봤고 다들 공에
맞은 부위를 감싸고 아파하고 있었다. 이겨서 기뻐하는 사람은 안창형 하나였다.
“그리고 우리 팀 애들을 봐봐.“
돌쇠가 온몸을 날리며 막아주었던 애들은 아파하는 기색도 없이 져서 아쉬운 마음에 웃고 있을 뿐이었다. 돌쇠가 온몸으로 막아주었기 때문에 맞아도 스쳐서 맞거나 돌쇠에게 먼저 맞고 세기가 줄어든 상태에서 맞았기 때문에 큰 타격이 없었다. 돌쇠의 체육복만 엉망진창이었다.
“왕은 전쟁에 나가서 백성을 지키지. 자기 몸이 상하더라도 말이야. 자기 몸 상하지 않고 백성만 죽이는 건 악덕 군주일 뿐이야.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피구에 이겨봤자 다 무용지물이야.“
돌쇠의 말에 안창형은 화가 났다. 그러나 죽상인 같은 팀 애들, 졌지만 웃고 있는 애들을 보며 복잡미묘한 심경에 마음이 조금은 괴로웠다. 그 괴로움은 자기만 살려고 열심히 피해 다닌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과 그런 자신의 멋없는 모습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다. 문득, 자신이 있는 힘껏 던진 공을 얼굴 정면으로 받아 내던 돌쇠의 모습이 떠올랐다.
‘못해, 못해, 난 절대로 그렇겐 못 해. 내가 왜?’
그러나 두려움 없이 행동하던 돌쇠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것은 안창형 본인도 깊이 느끼고 있었다. 쪼그만 꼬마 주제에 말이다.
그날 돌쇠는 집으로 돌아가 한조에게 말했다.
“진짜 이게 먹힐까? 우리가 사관학교 때 훈련했던 걸 안창형에게 집어넣으려 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 애초에 사명감이 없는 애한테 말이야.“
“사명감이 꼭 먼저 있으란 법은 없지. 사명감은 나중에 생길 수도 있어. 나처럼.”
“진짜?”
“그래, 내가 수호천사 사관학교 지원 한 건 그냥 다른 일보다는 좋아 보여서였어. 기록 보관실 지키는 것보단 재밌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지. 그래서 우리가 왕 피구 훈련할 때도 미치도록 온 몸을 던져서 막아대는 너를 이해 못 했던 거고. 나중에 우리 사관학교 졸업하기 전에 나갔던 실습에서…. 그때 처음으로 나도 사명감이란 것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네 덕분에 말이야.“
처음 듣는 말에 의아한 듯 돌쇠는 물었다.
“그래? 그때 내가 사고 쳤다고 너 엄청 뭐라고 했잖아. 뭐 때문에 그랬는데? 엉?”
한조는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돌쇠는 궁금해하면서도 안창형도 한조처럼 다른 아이들을 지키는 사명감을 깨닫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