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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저씨 Oct 23. 2024

돌쇠! 형우! 크로스

기다란 오르막을 십여 분 걸어오면 있는 벽양빌라는 벽양산 등산로 초입 부근에 자리한 지 오래된 빌라였고 그 1층에는 형우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세 들어 살고 있었다. 다 낡아 허물어질 것 같은 벽양빌라에는 재개발 추진 확정이라는 현수막이 언제부터 걸려있는지 모를 정도로 오랫동안 빌라 벽에 붙어 있었고 지금은 현수막도 낡고 메고 있는 줄도 낡아 늘어난 헌 옷처럼 흉물스럽게 빌라를 장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형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입에서 콧노래가 나왔다. 언젠가부터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워졌다. 언제나 학교 가는 길이 괴롭고 힘들던 때와는 다르다. 형우는 석종이가 자신을 돌쇠라고 부르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석종이라고 하는데 그냥 돌쇠라고 불러줘. 내 별명이야.”

자기 별명을 돌쇠라고 하다니, 신기한 녀석이다. 형우는 처음 돌쇠와 얘기했던 때를 생각하며 웃었다.

형우는 돌쇠가 안창형을 무찌르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감탄에 감탄을 마지않았다. 안창형에게 맞짱을 선포하고, 안창형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똑바로 맞받아 보면서 책상을 내리치고, 소리치고, 그 운동 잘하는 안창형을 피구로 제압해 버렸다.

“대단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형우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쇠는 순식간에 스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스타 돌쇠가 형우한테 베프를 하자고 한 것이다. 형우 입에서 콧노래가 나오는 이유였다.

“형우야, 이제부터 너랑 나랑 베프하자.”

“베프?”

“그래, 베프.”

“베프…?”

돌쇠가 약간 당황한 듯 멈칫거리며 웃었다.

‘어라, 요즘엔 베프란 말을 안 쓰나?‘

“어, 그, 말이지 베스트 프렌드 말이야.”

“베스트프렌드…?!”

형우도 베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다만 베프가 없었을 뿐이다. 어린이집부터 초등학교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형우에게 제대로 된 친구는 없었다. 당연히 베프도 없었다. 조금씩 커가면서 엄마, 아빠가 없는 현실이 형우를 무겁게 짓눌렀다. 주변에서 누가 대놓고 뭐라고 한 적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형우가 먼저 아이들에게서 거리를 뒀다.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라는 사실을 들킬까봐 말없이 혼자 있는 쪽을 택했다. 당연히 돌쇠는 그런 형우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형우에게 베프가 되자는 말을 꺼낸 것이었다.

“너, 크로스 알아?”

형우의 얼굴이 빛났다.

“크로스?”

돌쇠는 형우가 혼자서 크로스를 하는 모습을 수년간 지켜봐 왔다. 주말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형우의 유일한 취미이자 형우 얼굴에서 그림자가 사라지는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런닝맨을 좋아했는데 거기 나오는 멤버들이 “크로스!”를 외치며 팔을 X자로 모을 때, 형우도 같이 팔을 쭉 뻗으며 크로스를 외쳤었다. 돌쇠는 그 모습을 보며 옆에서 같이 팔을 뻗으며 크로스를 했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형우를 그저 애처롭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크로스. 이지 크로스 있잖아.”

“어, 알, 알아.”

“자, 그러면 우리 이제 만나면 같이 하는 거야. 알았지? 자 돌!”

“...어?”

“어라니, 넌 형! 해야지.”

“아, 그, 그래….”

“자, 돌!”

“...형, 형!“

“크로스!”

형우는 처음 돌쇠와 크로스를 하던 때가 생각하니 다시 웃음이 났다. 학교 가는 길에 다시 손을 뻗어 크로스를 연습했다. 학교에 도착해 반으로 들어가니 돌쇠가 와 있었다. 돌쇠 주위에는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형우는 아이들과 돌쇠 주위를 빙 돌아 자리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돌쇠는 그런 형우를 발견하고 활짝 웃더니 달려왔다.

“돌!”

돌쇠가 손을 쭉 뻗었다. 형우는 학교 오는 길 내내 이 시간만 기다렸다. 연습하길 잘했다. 손을 쭉 뻗으며 외쳤다.

“형!”

돌쇠와 형우가 함께 웃으며 외쳤다.

“크로스!!”

주위에 서 있던 아이들이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다.

“야, 그거 언제 적 건데 그걸 지금도 하고 있냐.”

멀리서 안창형이 혼잣말처럼 비꼬며 말했지만 형우와 돌쇠에겐 들리지 않았다. 형우는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고 돌쇠는 그런 형우를 보며 지난 몇 년간 보아왔던 형우의 그늘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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