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부터 학교에 용맹한 작은 고추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졌다. 돌쇠가 가는 곳마다 아이들이 몰렸고 학교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안창형은 배알이 꼴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 학교 어디에서도 무시당한 적이 없던 자신을, 아니 무시당하는 것이 무엇인가, 자기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남자애들이 수두룩한데 감히 자신을 보고도 기가 죽는다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고 오히려 기세등등하게 노려보는 돌쇠에게 단단히 화나버린 안창형이었다.
안창형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조그마한 녀석을 상대로 반 아이들 앞에서 움찔하는 모습을 보인 것만 생각하면 밤마다 이불 킥이 나오는데 실제로 한주먹에 날려버릴 수도 없는 처지니 말이다. 맞짱 선언을 한 것은 그 쪼그만 녀석인데 그것을 받아들이자니 선생님이 가만 안 있을 것이고, 아니 실제로 맞짱을 뜬다 쳐도 안창형 입장에서는 이겨도, 져도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었다. 이기면 이긴 대로 쪼그만 녀석을 상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양아치가 될 것이고 지면, 아! 지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다. 지면 말 그대로 개망신이라 이 학교에서 얼굴 붙이고 살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절대로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책상을 내리치는 그 기세로 보면 저 쪼그만 몸에 뭔가가 있는 것만 같이 조금 두렵기는 하단 말이다. 이런 눈물만 나오는 상황에서 석종이란 녀석은 온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안창형 입장에선 배알이 꼴리다 못해 배배 꼬아져 뱃속에서 꽈배기가 되는 듯했다.
게다가 안창형이 더 아니꼬웠던 것은 돌쇠가 형우를 옆에 끼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왕따에 찐따, 자기 노리개에 불과했던 형우를 마치 대단한 사람이나 되는 듯 싸고도는 돌쇠의 모습이 아니꼬웠다. 돌쇠가 옆에 붙어 있으니, 형우를 데리고 장난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사자가 쥐를 무서워하는 이유가 이런 걸까. 한번 물렸다고 이렇게까지 쫄아 있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나.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자, 안창형 속에서도 다시 패기가 올라왔다. 더는 저 쪼그만 녀석을 방치했다간 자신의 입지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졸업할 때까지 남은 시간이 지옥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기세다. 기세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형우 자식도 자신을 같잖게 보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안창형은 때를 노리고 있었다.
때를 맞이했다. 체육 시간이었다. 남자, 여자 나눠서 피구하는 시간, 안창형은 이때다 싶었다. 피구에선 공으로 맞추는 게 정의다. 아무리 세게 던져도 누구도 문제 삼지 않을 테고 자신이 가장 자신이 있어 하는 운동에서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돌쇠에게 보여주면 저 발칙한 눈빛은 사라지겠지 생각했다. 안창형은 김승산과 짜고 돌쇠와 다른 팀이 되게 조작했다. 가위바위보로 이긴 쪽과 진 쪽으로 나뉘는 팀에서 돌쇠와 형우가 이긴 팀이 되자 일부러 김승산에게 져서 진 팀으로 간 것이었다.
안창형은 운동에서는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었다. 축구도, 야구도, 농구도 학년에서 대표로 뽑히는 실력이었다. 피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안창형은 연식 공으로 던져도 공이 쭉 뻗어서 갈 정도로 강한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피구는 야구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더 큰 공으로 사람을 맞추기만 하면 되니 안창형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던진 첫 번째 공, 안창형은 먼저 형우를 노렸다. 자신의 장난감에서 돌쇠의 따까리로 변한 게 맘에 안 들었다. 강하게 던진 공이 형우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형우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다행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통에 정통으로 맞진 않았다. 안창형은 사악한 웃음소리를 내며 떠들기 시작했다.
“자, 하나 죽었고! 계속 가볼까! 하하하. 야, 이쪽으로 줘!”
형우에게 맞은 공은 강도가 세서 다시 안창형네 편으로 넘어갔다. 공을 잡은 아이를 보고 안창형이 소리 지르며 공을 달라고 했고 안창형이 다시 공을 받았다.
돌쇠는 쓰러진 형우를 보고 발끝에서부터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돌쇠는 안창형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 모습을 가소롭다는 듯 보던 안창형은 있는 힘껏 공을 던져 돌쇠 옆에 있던 애들을 하나하나 맞춰가기 시작했다. 돌쇠는 마지막 별미로 남겨둘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소리 지르며 공에 맞아 나갔다.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돌쇠만 남게 된 상황, 드디어 안창형과 돌쇠가 일대일로 맞붙는 형국이 되었다.
안창형이 공을 가지고 돌쇠를 노려봤다.
‘네가 감히 나한테 맞짱을 뜬다고 선포를 해? 너 같은 꼬맹이를 내가 상대해봤자 나한테 득 되는 게 없어. 이 공이나 먹고 꺼져라.‘
돌쇠는 시뻘게진 얼굴로 안창형을 노려봤다. 안창형이 발을 높이 들었다. 지금까지 던졌던 어떤 공보다도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지기 위한 투구 동작이었다. 돌쇠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지금 이 작은 몸으로 저 공에 맞으면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자신이 떠난 후에도 저런 녀석이 형우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 여기서 저 녀석 코를 반으로 꺾어 버려야 한다.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이면 더 기고만장해져 난리를 칠 것이 뻔했다. 안창형의 손에서 떠난 공은 강하게 바람을 일으키며 돌쇠의 얼굴로 향했다. 돌쇠는 눈을 감지 않고 그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퍽!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그 모습을 보던 안창형은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하며 아이들 사이를 뛰어다녔는데 갑작스러운 아이들의 환호에 정신이 들어 돌쇠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돌쇠는 단단히 각오하고 안창형의 공을 얼굴로 받았다. 이 방법밖에 없다. 얼굴로 맞을 때 턱을 앞으로 쭉 내밀어 얼굴을 비스듬히 경사지게 했다.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공은 정확하게 수직으로 튀어 올랐고 높이 튀어 오른 공과 코에서 뿜어지는 피가 공중에서 아름다운 선을 이루며 돌쇠에게 떨어졌고 끝까지 눈을 감지 않았던 돌쇠는 공을 두 손으로 정확히 받아 낸 것이었다. 돌쇠는 체육복 상의로 코를 지혈하며 한 손에 공을 들었다. 안창형은 입이 떡 벌어져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고 주변에 서 있던 아이들은 전부 돌쇠를 환호하기 시작했다.
“석종! 석종! 석종! 석종!”
“종이 울린다! 종이 울린다, 우리 석종이 울린다!”
순간, 안창형은 처음으로 돌쇠에게 움찔했던 때 느꼈던 한기를 다시금 느꼈다. 돌쇠는 고갯짓으로 안창형에게 사각형 안으로 들어오라고 신호했고 안창형은 반쯤은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돌쇠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다. 돌쇠는 코에서 피가 더 이상 나오지 않자, 뒤로 물러나 도움닫기 자세를 취했다.
“와, 뛰어와서 던질 건가 봐!”
아이들이 흥분했다. 돌쇠는 오른발, 왼발, 도움닫기를 시작해서 가운데 중앙선 앞에서 높이 점프했다. 분노를 발하는 눈빛과 달려 나온 기세가 안창형에게는 두려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높이 점프한 돌쇠는 공을 쥔 손을 힘껏 휘둘러 공을 안창형에게 발사하는 자세를 취했다. 안창형은 순간 움찔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오른 무릎을 굽힌 채 높이 들어 사타구니를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털썩.
돌쇠가 땅에 착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 뭐야 빗나갔나?’
안창형은 공이 당도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몸에 아무 느낌이 없어 얼굴을 감싸고 있던 두 손을 풀어 상황을 지켜봤다. 돌쇠가 자기 앞에 있었다.
‘그래 빗나간 거야. 이 바보 같은 녀석, 하하….‘
그때 하늘에서 공이 천천히 내려와 안창형의 머리에 정확히 맞았다.
퐁!
그 모습이 어찌나 웃겼는지 지켜보던 아이들은 폭소했고 아이들 뒤에서 모른 척 지켜보던 한덕수마저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돌쇠는 공을 강하게 던져봤자 지금의 작은 몸으로는 안창형에게 타격을 주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중에서 던질 것처럼 페이크를 준 다음, 안창형이 눈을 가렸을 때 공을 높이 띄워 안창형 머리를 노렸다. 아이들이 손가락질하며 웃는 모습에 안창형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종이 울렸고 돌쇠 주위에는 반 아이들이 전부 몰려 피를 닦아 주고 환호하고 함께 웃으며 교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안창형은 운동장에 홀로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