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한조가 펄쩍 뛰었다.
“네가 반장이 된 거야?! 전학 가자마자?"
관우는 입을 떡 벌리고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뭐, 그렇게 됐네."
돌쇠가 별일 아닌 듯 말하자 한조가 펄쩍 뛰었다.
"야 이 얼치기 돌쇠야! 수호천사가 애들이랑 맞짱을 뜨겠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 그러다 제1 법정에 끌려가고 싶어?"
"아니야, 뭐 이런 일로 제1 법정까지 끌려가기야 하겠어?"
관우가 한조를 말리며 말했다.
"어차피 돌쇠는 지금 13살 아이잖아. 애들 싸움이야 늘 있는 일이니까 하늘에서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 그렇지?"
돌쇠도 내심 걱정이 됐다. 늘 이 성깔이 문제였다. 교탁 앞에 섰을 때는 안창형을 혼내주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돌쇠가 앞에 나와 공약을 말하려는 대도 안창형은 형우를 노려보며 위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확 질러버린 것이다. 돌쇠도 흥분해서 질러버리긴 했지만, 반장이 될 줄은 몰랐다. 안창형한테 경고만 날릴 셈이었는데 떡 하니 반장이 되어버렸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이 일이 하늘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다. 한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맞짱 뜨겠다고 하는 돌아이를 뽑는 반 애들도 참 이해가 안 간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널 뽑은 거냐."
돌쇠의 공약이 불러일으킨 반향은 엄청났다. 그도 그럴 것이 반에서뿐만 아니라 전교에서도 잘 나가는 안창형을 상대로 막 전학을 온 쪼그만 전학생이 맞짱 선언을 해버린 것이었다. 남자아이들은 환호했다.
"와~!"
싸움 구경이라면 돈을 주고서라도 하고 싶어하는 게 남자란 동물이다. 여자아이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돌쇠를 다시 보게 되었다. 조그만 체구임에도 가장 센 안창형에게 도전하는 모습이 여자아이들의 동정심, 모성애를 불러일으켰다. 여자아이들은 환호가 아닌 조그만 강아지가 커다란 셰퍼드에게 짖어댈 때 내뱉는 동정 어린 탄성을 내뱉었다.
"어웅, 어떡해!"
남자, 여자 양측의 마음을 얻은 돌쇠는 결국 압도적인 표 차로 반장이 되었다. 투표 결과로 애처롭게 된 사람은 안창형이었다. 안창형은 자신이 쓴 한 표를 얻었고 칠판에 쓰인 숫자 1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연사랑은 5표를 얻어 회장이 되었다. 놀라웠던 것은 형우가 2표를 얻어 부반장이 된 사실이었다. 형우는 돌쇠에게 투표했기 때문에 당연히 0표를 예상했다가 누군가 자신에게 2표나 주었다는 사실에 해맑게 웃으며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돌쇠도 웃을 수 있었다.
돌쇠가 반장이 되어서 가장 곤란한 사람은 한덕수였다. 선거 자체를 무효로 하고 싶었지만 반 분위기상 불가능했다.
“자 뭐 어쨌든 우리 반 반장은 석종이다. 그렇게 알고, 근데 석종, 맞짱 뜨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공약은 지킬 생각도 하지 마! 회장은 연사랑, 부반장…. 강형우, 부회장 안창형. 자 인사는 생략!“
한덕수는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고 교실을 나갔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반 아이들이 전부 돌쇠 자리로 몰려들었다.
"야, 너 안창형이랑 언제 맞짱 뜰 거야?"
"괜찮겠어? 안창형 싸움 잘한다던데?"
"석종이가 너무 불쌍해."
"재밌겠는데?"
흥미진진해하는 남자아이들의 들뜬 목소리와 돌쇠를 걱정하는 여자아이들의 말들이 뒤섞여 돌쇠 주위는 시끄러웠다. 거기에 끼지 못하고 있던 안창형은 책상을 쾅! 치며 일어났다.
"야! 다 조용히 해!"
쥐 죽은 듯 조용해지는 교실, 적막이 흐르고 긴장감에 팽팽해진 교실 분위기. 안창형이 돌쇠 책상으로 도끼눈을 하고 다가왔다. 반쯤 돌아버린 그 눈을 보자 돌쇠를 주위를 감싸고 있던 아이들이 기겁하고 슬금슬금 돌쇠 자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돌쇠는 다가오는 안창형을 물러서지 않고 쏘아보았다. 돌쇠에게 안창형은 어차피 애였다. 자신을 쏘아보는 돌쇠의 눈빛을 보고 잠시 망설였지만, 안창형은 이제 더는 물러설 길이 없었다. 다가온 기세 그대로 돌쇠 책상을 두 손으로 쾅! 내리치며 외쳤다.
"야!"
돌쇠는 예상이라도 한 듯 기죽은 기색 없이 안창형이 한 그대로 책상을 두 손으로 내리치며 일어섰다.
"왜!"
움찔하는 안창형. 주위에 있던 모든 아이는 움찔하는 안창형과 불같은 눈빛을 발하는 돌쇠를 번갈아 보았다. 이미 승패는 갈렸다.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을 때 적막을 깨는 종소리가 울렸다. 곧 선생님이 들어올 것이다.
"두, 두고 보자!"
안창형이 말하자 돌쇠는 질세라
"두고 보지 말고 지금 봐! 언제든지 상대해 주마!"
그 모습을 아이들은 경이와 경탄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조그마한 전학생이 안창형을 기세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안창형은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의 분위기와 독기 오른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돌쇠에게서 뒷걸음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문이 열리고 한덕수가 들어왔다.
"자 반장."
"네?"
"뭐해."
"네? 뭘요?"
"인사해야지!"
"아, 네, 안녕하세요."
"와하하하하!"
반 아이들의 웃음이 터졌다.
"어이구, 너 뭐 하는 거야! 반장이면 일어서서 차렷, 선생님께 인사, 반 애들한테 시켜야지!"
돌쇠는 반장이 뭘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아이들은 선생님이 열 받아 하는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고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선생님을 골탕 먹이고 있는 돌쇠가 일부러 저러는 거로 생각해 더 통쾌해했다. 아이들은 자기들을 대신하여 선생님께 대항하고 있는 돌쇠를 보며 조금 전까지 안창형에게 맞섰던 카리스마 있던 돌쇠의 모습을 떠올렸고 돌쇠를 반장으로 뽑기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돌쇠는 옆에 앉아있는 형우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잘해보자, 부반장."
형우는 기쁨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돌쇠의 손을 조심스레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