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 안에 앉은 한조와 관우, 그리고 돌쇠는 무척 긴장한 상태였다. 관우는 보통 학교에는 엄마만 간다며 발뺌하고 가지 않으려 했지만 한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둘은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 모습으로 상담실 소파에 앉아있었고 그 옆에 돌쇠가 긴장한 채 앉아있었다.
"이제 곧 담임 선생님이 오실 겁니다. 두 분께 인사만 하고 우리 석종이를 반으로 데려갈 거예요."
인자하게 생긴 백발의 교감 선생님이 돌쇠의 이름을 읽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우리 석종이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외교관이시라고요? 어느 나라에서 근무하셨는지요?"
관우는 당황해서 한조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조는 냉철한 모습으로 당황하지 않고 답했다.
"이스라엘입니다."
"어이구, 먼 곳에 계셨네요. 그러니까 우리 석종이는 거기 외국인 학교에 다녔던 거군요."
"네, 그렇죠."
"어이구, 그러면 우리 석종이는 영어를 굉장히 잘하겠네요."
돌쇠는 뜨끔했다. 한조를 슬쩍 봤다. 한조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한덕수가 들어왔다. 지금은 머리에 가발을 쓰고 있었다. 들어오던 한덕수는 소파에 앉아있는 한조와 관우를 보고는 입에 함박 미소를 머금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제부터 우리 석종이 담임을 맡게 된 한덕수라고 합니다."
허리를 굽혀 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한조와 관우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조는 도도한 학부모의 역할에 딱 맞았다. 돌쇠에게서 한덕수가 어떤 인간인지 이미 들어서 인지 표정이 차가웠고 관우는 옆에서 예의 있게 웃고 있는 아빠 역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우리 석종이는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하하하."
한덕수는 돌쇠 손을 잡더니 자기 몸쪽으로 끌어당겨 친밀함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었다. 돌쇠는 형우에게 몹쓸 짓을 하던 한덕수의 이런 가증스러운 모습에 다시 한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돌쇠의 분노를 눈치챘는지 앞에 서 있던 관우가 자세를 낮추어 돌쇠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돌쇠의 볼을 꽉 잡고 말했다.
"우리 석종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애들하고 싸우지 말고, 그리고 사고! 치지 말고! 알았지?"
여느 아빠가 해줄 수 있는 말이었지만 돌쇠는 그 말을 듣고 한덕수를 향한 분노를 집어넣었다. 다만, 한덕수 손을 뿌리치고 그 곁에서 한 걸음 떨어져 섰을 뿐이다. 한덕수는 당황했고 한조와 관우는 돌쇠를 보며 눈빛으로 다짐하고 상담실을 떠났다. 한덕수는 둘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굽혀 인사하기를 계속했다. 둘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돌변하여 "따라와." 차가운 대머리독수리로 돌아왔다. 돌쇠는 한덕수 뒤를 따라가며 혼잣말했다.
"언젠가 내가 저 가발을 불태워 버릴 테다."
반에 도착한 한덕수와 돌쇠는 교탁 앞에 섰다. 전학생이 오면 아이들은 긴장한다. 다수가 한 명을 판단하는 시간, 다수 편에 선 아이들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품평회를 하듯 전학생을 구석구석 살펴본다. 돌쇠는 한덕수 옆에 서서 자신을 뜯어보는 아이들 속에서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우를 찾았다. 돌쇠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때 한덕수가 돌쇠의 등을 밀치며 말했다.
"어서 자기 소개해."
한덕수를 적개심 어린 눈으로 한번 올려다봐 준 돌쇠는 교탁에 서서 말했다.
"아, 나는 돌…. 아차, 석종이라고 한다. 잘 부탁해."
"자, 저기 빈 자리 가서 앉아."
한덕수가 형우 옆에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돌쇠는 형우를 보며 반가운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교탁을 내려와 형우 옆자리로 가려는데 반 아이들이 바라보는 눈빛과 수군대는 분위기에서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을 느꼈다. 집행부에서 돌쇠를 땅에 내려보낼 때 고려한 부분은 돌쇠가 다른 아이들보다 튀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13세 평균 키와 몸무게를 바탕으로 평범한 13세 아이처럼 보이게 돌쇠에게 몸을 입혔다. 그러나 집행부 말단 천사가 평균 키와 몸무게의 통계 자료를 50년 전의 것을 참고한 것이 문제였다. 돌쇠는 자리에 가 앉을 동안 아이들의 시선이 꽂히는 것을 느꼈다. 다만, 아이들이 전부 앉아있었기 때문에 아직 자신의 키가 아이들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안녕, 나는 석종이야."
돌쇠는 형우에게 인사를 했다. 형우를 태어나면서부터 지켜봐 왔던 돌쇠에게 형우는 세상 누구보다도 친밀한 존재였다. 물론, 형우는 그걸 알 리 없었지만. 평소처럼 의기소침하고 그늘진 얼굴로 앉아있던 형우는 갑작스럽게 인사하는 돌쇠에게 "어, 어, 안녕."이라며 인사를 받아 줄 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자, 그러면 오늘은 지난주에 말한 대로 HR 시간에 반장 선거를 할 테니 그렇게 알도록. 이상."
한덕수가 나가자, 반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돌쇠에게로 향했다.
"야, 너 몇 살이야?"
"너, 키가 몇이야?"
"너 되게 작다."
돌쇠는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이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 하는 것을 보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들 가운데 선 돌쇠는 자신이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 이상 작은 것을 깨달았다. 의자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왜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는지 이해가 갔다. 돌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건 아니잖아요! 이러면 어떻게 지켜요!" 울부짖었다. 마치 하울링 하는 늑대와 같은 울부짖음이라고 돌쇠는 생각했지만, 형우는 그 모습을 보며 늑대를 따라 하는 치와와와 같다고 생각했다. 반 아이들은 하울링 하는 돌쇠를 보며 깔깔대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