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쇠는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 꺼진 작은 방,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일어나 어둠에 익숙해진 뒤 문 옆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켰다. 여느 초등학생의 방과 비슷하게 꾸며져 있는 방, 얼떨떨한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하늘 법정에서의 일을 기억했다. 두 손을 펴서 보고 어깨 너머로 날갯죽지를 만져본다. 아무것도 없다. 판결대로 돌쇠는 땅으로 내려온 것을 실감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돌쇠의 절친 한조와 관우였다.
"한조! 관우!"
돌쇠는 반가운 마음에 양팔을 벌려 둘을 껴안았다. 그런데 초등학생의 몸은 팔이 길지도 않고 둘을 껴안기에는 버거웠다. 언제나 냉정하고 냉철한 한조는 돌쇠의 손을 잡더니 밀어내며 말했다.
"돌쇠야, 넌 이제 사람이야. 그것도 조그만 아이.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난처한 입장이 되었는지 모르지?"
돌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난처해졌다고?" 물었다.
언제나 넉넉하고 인심이 좋은 관우는 키가 작아진 돌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뭐, 그렇게 난처해진 건 아니야. 그렇지, 한조? 그냥 우리 임무가 막 마친 시점이라 우리 둘을 돌쇠 너의 보호자 역할로 여기로 보낸 것뿐이야. 우린 너처럼 사람으로 살 필요는 없고 마음대로 하늘나라도 오갈 수 있고 가끔 네 보호자 역할로 사람이 될 뿐이니까 문제없어."
"문제없기는!"
한조가 역정을 내며 말했다.
"수호천사 사관학교 때부터 늘 너는 이런 식이었어! 내가 입이 닳도록 말했잖아, 제발 그 성질 좀 죽이라고. 정해진 임무를 완수하는 게 우리 사명인데 넌 그 성질 때문에 우리 마지막 졸업 실습 때도 사고를 쳐서 우리까지 졸업 못 하게 할 뻔했잖아!."
언제나 냉철한 한조가 이 정도로 화내는 것을 돌쇠는 본 적이 없었다.
"미안해, 한조. 내가 너희 둘까지 난처하게 할 줄은 몰랐어."
돌쇠가 풀이 죽어 말하니 관우가 분위기를 살리고자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 이것도 뭐 추억이지. 우리도 언제 이렇게 부모 역할 해보겠어. 하하 그렇지, 한조?"
한조가 그 말을 듣자 빽 소리를 친다.
"왜 내가 엄마 역할이냐고!"
그 모습에 돌쇠도 관우도 할 말을 잃고 한조가 냉정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들 셋이 친해지게 된 계기는 수호천사 사관학교 입학식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대열을 지어 기다리던 중 앞, 뒤로 서게 된 셋은 시간이 남아 통성명을 하였다.
"난 관우라고 해."
셋 중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인심이 좋아 늘 웃고 다니는 관우가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난 대천사님이 이름을 뭐로 하고 싶냐고 물어보셨을 때, 맡은 아이를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장군으로 지어달라고 했거든. 그러니까 대천사님이 '자네는 중국 쪽을 담당하게 될 테니 그쪽 장수 이름을 지어주지.'라고 하면서 관우라고 지어주신 거야. 엄청 훌륭한 장군이라나 봐."
"음, 나는 한조라고 해. 나는 겸손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명을 완수하고 싶다고 그런 이름을 달라고 했는데 한조라고 지어주셨어. 일본 담당이라 일본에서 유명한 닌자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셨대. 숨어서 지키는 건 닌자가 딱 맞는다면서 말이야. 뭐 상관없어. 어차피 이름은 이름일 뿐이니까.“
마지막 돌쇠가 이름을 소개할 차례였다.
"아, 그러니까 나는 돌쇠라고 해."
"와, 이름 멋있다."
관우가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종처럼 낮아져 아이를 섬기는 마음으로 일하고 싶다고 했는데…. 대천사님이 '그럼 한국 쪽에 배정될 테니 그쪽 종의 이름 중 가장 유명한 이름으로 지어주지.'라고 하셔서 돌쇠가 된 거야."
장군과 닌자와 종, 이날 이후로 이들 셋은 늘 같이 다니며 삼총사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한조는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한조의 기색을 살피며 관우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일단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니까. 우리가 받은 임무는 3개월 동안 돌쇠 너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별 할 일이 없는 거지, 네가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말이야."
"잘도 사고 안 치겠다. 돌쇠 성격에."
가시가 돋친 한조의 말에도 돌쇠는 미안한 마음에 사과할 뿐이었다.
"조용히 있을게. 그러니까 화 풀어. 한조."
한조도 평소답지 않게 사과만 하는 돌쇠의 반응에 머쓱했는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3개월 안에 형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돌쇠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지금 능력도 다 잃어버린 거잖아?"
돌쇠는 떨어져 나간 날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날개뿐만이 아니야, 힘도 빠르기도 다 어린아이의 능력치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아."
"우리가 도울 수는 없는 건가?"
관우가 한조를 보며 말했지만, 한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우리도 쫓겨나게 될 거야. 우리는 돌쇠가 3개월간 사람으로 지낼 수 있게 보호자 역할만 수행해야 해."
"그렇지? 그럼, 돌쇠가 있는 동안 형우란 아이한테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길 기도할 수밖에 없겠구나. 자 기도하자."
관우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려 했다. 한조는 한숨을 쉬며 관우를 일으켰다.
"일단, 돌쇠 학교부터 가야 해. 기도는 돌쇠 학교에 바래다주고 와서 하자고."
"아, 오늘부터 학교에 가야 하는 거였어?"
돌쇠는 당황한 듯 거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봤다. 아침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형우는 늘 8시에 집을 나섰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8시에는 집을 나서야 학교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돌쇠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럼, 책가방은? 아침밥은? 준비물은?"
허둥대는 돌쇠를 진정시키는 것도 한조의 역할이었다.
"진정해. 일단 학교에 가서도 돌쇠라는 이름을 쓸 순 없으니까, 자 여기 이거 보고 잘 외워."
한조는 구름 종이 한 장을 돌쇠에게 건네줬다. 그 종이에는 돌쇠의 얼굴, 정확히는 장난기 가득한 어린 남자아이의 얼굴이 찍힌 사진이 왼쪽 위에 붙여져 있는 신상명세서였다.
"집행관 천사가 말하기를 이미 전학 수속은 다 마친 상태라 오늘 우리는 가서 선생님하고 인사만 하고 오면 되고, 그 후에 돌쇠는 형우 반으로 가게 될 거라고 했어. 자리는 형우 옆으로 앉게 될 거라고도 했고, 일단 거기까지가 집행부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니까 형우하고 친해지고 지키고 하는 건 돌쇠 너한테 달렸다는 이야기지."
돌쇠는 종이를 건네받고 위에서부터 찬찬히 읽었다.
"이름. 김석종? 석종이야? 왜 돌쇠가 아니고!"
돌쇠가 울상이 되어 한조에게 하소연했다. 그 모습에 한조도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이 석이고 쇠는 김이라 성을 김으로 하고 이름을 석으로 한 건데 음, 집행부에서도 네가 원래 겸손히 섬기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있었는지 마지막에 종을 붙여서 김석종이라고 지었대. 집행부도 워낙 갑작스럽게 진행해야 하다 보니 이름을 신경 써줄 여유는 없었나 보더라고. 큭."
한조가 고개를 돌려 웃었다. 관우도 같이 고개를 돌려 웃고 있었다. 돌쇠는 그 둘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