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되어 돌쇠는 형우와 함께 급식실로 향했다. 오늘 반찬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비엔나소시지와 계란말이가 나왔다.
‘형우가 좋아하겠군.‘
아니나 다를까 형우도 입가에, 기대감에 부푼 미소를 띠고 식판을 들고 있었다. 집에서 할머니가 해주시는 밥은 늘 나물과 김치, 그리고 콩나물국이었다. 그러나 일찍 철이 든 형우는 한 번도 반찬 투정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린이집에서나 학교에서 급식에 비엔나소시지가 나오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와, 나 비엔나소시지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너는?”
“그래? 나도 엄청나게 좋아해!”
신이 나서 웃는 형우가 귀여운 돌쇠.
“그렇게 좋아하는 걸 오늘 먹을 수 있겠군. 하하하.”
드디어 차례가 와서 식판을 배식대에 내려놓았다. 돌쇠는 형우를 앞세우고 자신은 뒤에서 배식받았다. 배식해 주시는 아주머니는 두 분이었고 한 분은 밥과 국을, 다른 한 분은 반찬을 퍼서 주셨다. 밥과 국을 담당하는 나이가 좀 있는 듯한 아주머니는 넉넉한 풍채에 인심 좋은 얼굴과 웃음으로 아이들을 맞아 주고 있었고 반찬을 담당하는 아주머니는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고 호리호리한 몸에 상냥한 웃음으로 아이들에게 반찬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밥과 국을 받은 우리는 반찬을 받으려 식판을 내밀었고 반찬을 배식해 주던 아주머니는 형우를 보더니 반갑게 활짝 웃더니 다른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손으로 급식 판을 잡고선 밥 밑으로 비엔나소시지를 몇 개 더 넣어주었다. 돌쇠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고맙다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형우를 보았다. 형우 차례가 지나가자, 돌쇠는 자신의 급식 판을 내밀었고 아주머니는 돌쇠를 보고 흐뭇하게 웃으며 반찬을 주었다.
돌쇠는 급식 판을 가지고 들어가 형우 앞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형우야, 근데 너 저 아줌마랑 친한가 봐?”
“어? 아, 아닌데 왜?“
형우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너 밥 밑에 비엔나소시지 더 넣어주시는 거 봤거든. 근데 그냥 더 주면 되지 왜 밥 밑으로 넣어주시는 거지?“
그 말에 형우는 머뭇머뭇 비엔나를 밥 아래에서 꺼내며 돌쇠에게 말했다.
“아, 이, 이거 너 먹을래?”
돌쇠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나한테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아, 이게 그러니까 난 원래 밥 혼자 먹는데, 혼자 먹을 때 애들이 내 반찬을 와서 뺏어 먹고는 했거든.”
돌쇠도 기억났다.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늘 안창형 패거리가 와서 형우 반찬을 뺏어 먹었다. 그때도 돌쇠는 화가 나서 식판을 그 녀석들 얼굴에 부어버리고 싶었던 것을 참았었다.
“그런데?”
“그때 저 아주머니가 보셨나 봐. 그때부터 몰래 이렇게 넣어주셔. 그래서 식판 위에 있는 걸 뺏겨도 밥 아래에 있는 건 먹을 수 있게 말이야.”
돌쇠는 이제야 이해했다. 언젠가부터 형우가 반찬을 뺏겨도 그렇게 서러워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돌쇠는 형우가 마음이 단단해진 줄로만 알고 기특해했다. 그 비밀이 저 아줌마와 밥 아래에 깔린 반찬에 있었다니, 돌쇠는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먹었다. 맞은편에서 행복하게 밥을 먹고 있는 형우를 보니 돌쇠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형우가 이상한 듯 물었다.
“넌 밥 안 먹어?”
돌쇠는 정신을 차리고 “아니야, 먹어야지. 그냥 잠깐 딴생각 좀 했어.” 말하고는 수저를 들었다.
형우 얼굴에서 그늘이 보이지 않는 것이 돌쇠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었다. 자신은 지금 벌을 받기 위해 여기에 왔지만 이런 벌이라면 100년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지켜주며, 옆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돌쇠에게는 뿌듯한 보람이기도 했고 행복이기도 했다.
“형우야, 이제 곧 어버이날인데 넌 뭐 할 거야?“
형우의 얼굴에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운다. 돌쇠도 그럴 것을 알았다. 알고 한 질문이었다. 형우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돌쇠가 봐온 지난 13년간 형우가 먼저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본 적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 갇혀 그림자 속으로, 어둠으로 들어가는 형우를 붙잡아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형우 스스로 깨달아야 했다.
형우 네가 처한 환경은 형우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난, 나는…. 카네이션….”
형우가 숨고 있었다. 간단하고 형식적인 대답, 그 뒤에 올 추궁하는 질문이 없기를 바라며, 그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진실을 뒤로하고 숨고 있는 형우, 그래서 돌쇠는 먼저 말해야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 진짜 우리 엄마, 아빠가 아니라서.”
이 폭탄 같은 발언에 형우는 깜짝 놀라 물었다.
“무, 무슨 말이야? 그리고 그런 말을 이렇게 다른 애들 앞에서 말하면 안 돼!”
형우가 소리를 죽여 말했다.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잔뜩 기가 죽어서 속삭이는 형우에게 돌쇠는 더 당당하게 말했다.
“난 입양됐어. 입양된 지 얼마 안 돼서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카네이션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야.”
돌쇠가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번 미션을 위해 한조와 관우가 아빠, 엄마 역할을 할 뿐이라 엄연히 말하면 한조와 관우는 돌쇠의 친부모가 아니었다. 따라서 입양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돌쇠는 당당하게 말했지만, 형우는 걱정이 앞섰다. 이런 사실을 안창형이 알게 되면 이것을 돌쇠의 약점으로 삼아 돌쇠를 괴롭히려 들게 틀림없다. 안창형은 그런 애니까. 형우는 다시 목소리를 죽여서 말했다.
“안창형 같은 애들이 알면 안 돼. 그러면 약점 잡았다고 생각해서 너를 계속 괴롭힐 거야.”
“왜? 너도 약점을 잡힌 거야?”
형우가 고개를 숙였다.
“난…. 아빠, 엄마가 없어….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아. 지금도 힘들게 하는 데 이런 사실까지 알게 되면 더 괴롭힐 거야….”
돌쇠는 스스로 자신을 벽 안에 가두고 두려워 떨고 있는 형우를 보며 안쓰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형우에게서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가정형편을 말할 수 있는 친구를 얻게 된 것, 그것이 돌쇠의 목적이었다. 돌쇠는 웃으며 형우 어깨를 툭 쳤다.
“잘했어. 이제 밥 먹자.”
“어?“
돌쇠는 밥을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형우야, 부모님 안 계신 게 어떻게 너의 약점이 되냐. 내가 입양된 게 어떻게 내 약점이 되냐. 자 따라 해 봐.”
“뭘?”
“어쩌라고!”
형우는 당황했다.
“따라 하라니까, 어쩌라고!”
“어, 어쩌, 라고.”
“다시 한번, 어쩌라고!”
“어쩌라고!”
“어쩌라고!”
“어쩌라고!”
돌쇠와 형우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재밌지?“
“어, 재밌다.”
형우는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무거운 줄 알았고 엄청 심각한 것인 줄 알았던 그 짐을 돌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별거 아니라고 말해주는 돌쇠와 함께 웃으며 형우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