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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저씨 Oct 23. 2024

돌쇠, 폭발하다.

돌쇠가 땅에 내려온 지도 한 달 보름이 지났다. 날이 갈수록 반에서 안창형의 입지는 좁아져 갔다. 반 아이들은 돌쇠에게 환호했고 안창형을 비웃었다. 안창형은 그렇게 느꼈다. 그 쪼그마한 녀석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자신에게 대들 때, 분명 안창형은 움찔했다. 그 모습을 반 아이들이 다 목격했다. 피구로 혼내주려고 했을 때도 마지막에 잔뜩 움츠러든 모습을 보인 그 순간을 모든 아이가 다 목격했다. 창피했다. 안창형은 아이들을 지나쳐 갈 때마다 자신을 비웃는 듯한 소리가 들려 예민하게 반응했다.     

“왜 웃어! 너 뭐야?”     

그러나 대부분 착각이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는 겸연쩍게 자리를 피해버리기 일쑤인 안창형. 안창형은 반에 있는 것이 가시방석이 되었다. 언제나 쉬는 시간이면 안창형 패거리 중 다른 반인 임헌수, 김만석이 안창형과 김승산에게 찾아와 시끄럽게 떠들고 가곤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안창형과 김승산이 임헌수 반으로 갔다. 안창형은 속이 쓰렸다.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돌쇠에겐 고민이 있었다. 자신이 떠난 후에 안창형을 제어할 수 없게 되면 그때는 형우가 더 괴로워질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돌쇠가 보기에 안창형도 형우와 똑같은 13살 애일 뿐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방식이 돌쇠에게 통하지 않으니 당황해서 가만히 있는 것뿐일 터였다. 돌쇠가 기억하기로 안창형이 형우를 괴롭힌 것은 4학년 때인 11살 때부터였다. 한 반이 된 형우를 안창형이 괴롭히기 시작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툭툭 건드려 보다 아무 반응이 없자 점점 강도가 세졌다. 강도가 세져도 대항하지도 않고 그냥 실실 웃으며 당하기만 했다. 당하기만 하는 형우를보다 못해 돌쇠는 개입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5학년 때는 다른 반이 되어 안심하나 싶었는데 6학년 때 다시 같은 반이 된 것도 모자라 한덕수까지 만나버린 것이다. 돌쇠에게는 남은 한 달 반 동안 두 가지 과제가 있었다. 첫째는 형우가 자신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안창형이 형우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돌쇠는 혼자 고립되어 가는 안창형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어떻게 하면 안창형이 형우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것인지 고심하고 있었다. 그때 안창형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다 돌쇠와 눈이 마주쳤다. 안창형은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고 있는 돌쇠를 보고 섬뜩함을 느꼈다. 안창형은 바로 고개를 돌려 정면을 쳐다봤다. 외모와 체격은 상관없다. 저 녀석은 정말 돌아이일지도 모른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돌쇠야, 뭘 그렇게 노려보고 있어?”

“어?”

돌쇠는 자기도 모르게 눈에 힘을 빡 주고 안창형을 노려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야, 아니야. 그냥 딴생각 좀 하느라고, 히히.”

다시 초등학생 표정으로 돌아와 웃는 돌쇠.

“돌쇠 네가 저번에 물어봤잖아. 어버이날에 뭐 할 건지. 그래서…. 이것 좀 볼래.”

형우는 가방에서 색종이로 예쁘게 접은 카네이션을 꺼냈다.

“와, 엄청나게 잘 만들었다. 이거 네가 만든 거야?”

“...어.”

형우는 돌쇠의 칭찬이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나는 종이접기랑 만드는 걸 좋아해. 뭘 만들기만 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있어. 어제도 할아버지 돌아오시기 전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들었어. 내일 두 분한테 달아드리려고.”

돌쇠는 대견한 마음에 형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이구 착한 녀석.”

“어이구 조그만 게 어디서.”

형우도 웃으며 돌쇠의 머리를 박박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안창형은 흘깃 곁눈질로 보고 있었다. 형우의 손에 든 형형색색의 종이 카네이션도 눈에 들어왔다. 안창형은 형우가 돌쇠와 웃는 모습을 보며 형우를 향해 이를 갈았다. 찍소리도 못하던 찌질이가 돌쇠 옆에서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창형의 자격지심은 갈수록 분노의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오늘 너희 집에 놀러 가도 돼?”

“어?”

당황한 형우는 우물쭈물 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 집에는 놀만한 게 없는데….”

“그냥 둘이 놀면 되지 뭘 걱정해.”

“그, 그래….”

형우는 태어나서 한 번도 친구를 집에 데려와 본 적이 없었다. 친구 집에 가본 적도 없었다. 언제나 집에 가면 혼자였던 형우는 돌쇠가 집에 가도 되냐는 말에 벌거벗은 몸이 온 세상에 드러날 것 같은 두려움과 처음으로 친구가 집에 오게 된다는 설렘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돌쇠는 그런 형우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친구잖아.”

종이 울리고 수업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전부 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창형은 이를 갈았다. 돌쇠는 건드리고 싶지 않다. 그런데 저 형우란 녀석은 더 이상 까불지 못하게 손을 봐야겠어. 그렇게 안창형은 결심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하나둘 급식실로 향했다. 김승산도 안창형에게 와서 가자고 말했지만, 안창형은 말했다.

“아니야, 난 나중에 갈 테니까 너 먼저 가.”

안창형은 그대로 교실에 머물러 모든 아이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돌쇠와 형우가 어깨동무를 하고 빠져나가는 모습을 노려보고 있던 안창형은 반에 아무도 남게 되지 않자, 형우 자리로 향했다. 형우 가방 속에서 종이 카네이션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갈기갈기 찢었다. 갈기갈기 찢긴 카네이션을 그대로 형우 가방 속에 넣고는 속이 시원해진 얼굴로 급식실로 향했다. 이제 까불지 못하겠지?          

돌쇠와 형우가 점심을 다 먹고 교실로 들어왔다.

“오늘도 네 밥 밑에 동그랑땡 더 넣어주시더라?”

“어, 헤헤. 그래서 내 거 반절 너에게 준 거잖아.”

“그 아주머니한테도 카네이션 같은 거 하나 만들어 드리는 건 어때?”

“와, 그럴까. 오늘 집에 가서 같이 만들자.”

“오케이.”

그러나 자리로 돌아온 형우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돌쇠는 형우의 얼굴에 드린 그림자를 보고 형우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형우야.”

”카네이션이….“

형우가 들고 있던 가방이 형우 손에서 책상 위로 힘없이 떨어졌고 그 안에서 갈기갈기 찢긴 카네이션이 바닥으로 후드득 흩뿌려졌다.

“누구야, 누가 형우 가방에 손댔어!?“

돌쇠가 반 전체를 향해 소리쳤다. 김승산이 교실 문으로 들어오던 안창형을 바라봤다. 돌쇠는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달려가 안창형 앞을 가로막았다.

“너야? 네가 형우 가방에 있던 카네이션 다 찢어놓은 거야?”

안창형은 뻔뻔한 얼굴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증거 있어? 그리고 네가 무슨 강형우 보호자야? 네가 왜 난리야?“

안창형은 돌쇠를 지나쳐서 자리로 가서 앉았다. 돌쇠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져서 쿵쿵대며 안창형 자리로 갔다.

“너, 안 되겠다. 옥상으로 따라 나와!”

돌쇠는 참지 못하고 안창형에게 외쳤다. 반에 있던 모든 아이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돌쇠는 성큼성큼 내디뎌 교실 문을 나섰고 그 뒤를 안창형은 긴장감을 감추려 되레 큰소리를 내며 따라갔다.

“야, 네가 따라오라고 하면 내가 못 갈 것 같아?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녀석이 내가 봐주고 있었던 걸 몰라? 오늘 진짜 된통 한번 당해봐라.”

반 아이들은 싸움 구경에 신이나 뒤를 따라갔지만, 돌쇠가 뒤돌아서 “아무도 따라오지 마! 같이 벌 받고 싶어?”라고, 소리치자, 아무도 따라가지 못했다. 그 모습을 형우는 찢긴 카네이션을 손에 움켜쥐고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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