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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저씨 Oct 23. 2024

돌쇠, 소환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돌쇠는 옥상 문을 벌컥 열었다. 5월 초, 한낮의 햇살은 뜨거웠다. 뜨거운 태양으로 달궈진 옥상에 올라선 돌쇠는 뒤에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휘 몸을 돌려 안창형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닫힌 철문은 온데간데없고 주위는 하얀 구름 땅 위로 사방을 둘러싼 회색 구름 기둥으로 가득했고 허리케인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구름 기둥들 사이로 나오는 컨페스가 보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컨페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쇠에게 다가왔다. 입가엔 자신의 예상이 맞은 기쁨이 엿보이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돌쇠, 자네는 여전히 아무 반성도 하지 못하고 있구먼. 나는 그럴 거라고 예상했지. 아무리 의로우신 재판장님이 자네를 믿어준다고 한들, 자네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돌쇠는 자기 손과 몸을 살펴보았다. 인간 석종이 아닌 수호천사 돌쇠로 돌아와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네?”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듯 돌쇠는 컨페스에게 물었다.

“자네를 땅으로 파견한 것은 실수였어. 그래서 다시 이곳으로 소환한 것이지. 더 이상 땅을 혼란스럽게 하지 못하도록 말이야.”

“아, 아니, 제가 뭘 했다고요. 저는 그저….”

“그 아이와 싸우려고 한 게 아닌가? 아니지, 싸움이 아니지 자네가 원한 것은 복수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고작 13살 먹은 애를 데리고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 거야. 그래서 내게 주어진 권한으로 자네를 소환한 것이지. 자네를 땅으로 파견할 때 붙은 유일한 조건이 자네를 언제든 다시 소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지. 그리고 내 예상은 정확하게 맞았고 말이야.”

득의양양한 미소가 컨페스 입에 번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안창형을 옥상으로 부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안창형과 싸우려고 했다거나, 폭력으로 복수를 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저는 그저 옥상에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거예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둘이 이야기해야, 그래야 그 녀석 속도 알 수 있어서, 그래서 옥상으로 부른 거라고요!”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내가 믿을 것 같나? 자네가 사고를 치기 전에 미리 막는 것은 내 의무이자 하늘나라의 규율을 바로잡고 땅을 혼란하게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란 말일세. 그러니 자네는 이대로 다시 법정에 나가게 될 것이고 거기서 다시 판결받게 될 것이야.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풀려나지도 못할 테니 쓸데없는 희망은 품지 말길 바라네. 후후.“

“아니라니까요! 그 녀석이 형우를 계속 괴롭히게 두면 안 되니까, 그 녀석과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뿐이에요.”

컨페스는 돌쇠의 호소를 못 들은 척, 고개를 끄덕여 돌쇠를 데리고 가라는 표시를 했다. 구름 기둥 뒤에 서 있던 천사 둘이 돌쇠의 양팔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때, 홀연히 구름 사이로 찬란한 빛이 비취고 구름 기둥이 사라져 사방이 온통 흰 빛으로 가득하였다. 컨페스와 천사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맑고 투명한 음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돌쇠를 놔주세요.”

“네, 네? 아, 아니, 이 돌, 돌쇠는”

컨페스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돌쇠의 말을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돌쇠는 그 아이와 싸우려 하지 않았어요.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돌쇠를 다시 소환한 것은 본인의 의무를 다하려 한 컨페스 검사장의 충성심과 의로운 마음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컨페스는 맑고 투명한 음성이 자신을 칭찬하자 어깨를 으쓱하며 헛기침을 한번 했다.

“으흠, 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돌쇠는 그 아이를 혼내주려고 하는 불의한 마음이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님, 이대로 두었다간 돌쇠는 형우란 아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에 처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돌쇠의 얼굴에 가득한 분노는 저도 충분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분노는 옥상을 올라가면서 차츰 누그러졌습니다. 그리고 돌쇠 속 사람의 생각은 그 아이를 혼내주는 것보다 그 아이 속에 있는 이유를 알기 위해 대화를 하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보증합니다. 제가 보증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게 있을까요? 그러니 돌쇠를 다시 돌려보내세요.”

컨페스는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의로우신 재판장이 보증한다고 했다. 더 이상 논의는 불필요했다. 고개를 끄덕여 돌쇠를 풀어주게 했다. 풀려난 돌쇠는 구름 땅에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돌쇠 위로 맑고 투명한 음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응원할게요. 형우를 잘 지켜줘요.“

“네…. 감사합니다.”

“때로는 지켜보는 게 더 아프답니다.”

그 말과 함께 주위를 감싸던 빛이 사라졌고 학교 옥상의 풍경이 돌아왔다. 문 앞에는 안창형이 서 있었고 긴장된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며 돌쇠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멍하니 보고만 있고. 덤, 덤벼!”

안창형은 복싱 자세를 취했다. 돌쇠는 이미 분노 같은 감정이 사라지고 의로우신 재판장의 말이 귓가를 반복해서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때로는 지켜보는 게 더 아프답니다.     

형우가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힘들어서 돌쇠는 개입했다. 케이크를 샀고 축구공으로 애들을 혼내줬고 날개바람으로 한덕수를 날려줬다. 지금도, 열심히 만든 카네이션을 부여잡고 아파하는 형우를 보며 안창형을 옥상으로 불러냈다. 처음부터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옥상으로 따라오라고 한 순간에는 사람이 된 현재 상황을 망각하고 정말로 혼내주려고 불렀다. 그러나 쿵쿵 소리를 내며 옥상으로 올라가면서 분노를 가라앉히고 현재 당면한 과제를 생각했다. 안창형이 형우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것. 지금 혼내주는 것은 역효과다. 너는 진짜 왜 형우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묻고 싶었다.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나를 때려서 네 화가 풀리고 네가 형우나 다른 애들을 괴롭히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를 때려라.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돌쇠는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너는 왜 다른 애들을 괴롭히고 다니는 거야?”

“엉?“

달려들 것을 기다리던 안창형은 당황했다.

“뭐, 뭐라는 거야?”

“그니까 왜 다른 애들을 괴롭히는 거냐고?”

“누가 누굴 괴롭힌다는 거야?”

안창형은 순진무구하게 자신은 결백하다는 표정으로 돌쇠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돌쇠는 황당했다. 저 녀석은 정말 자신이 애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 그거 카네이션? 그건 형우 자식이 너랑 찰싹 붙어 있어서 꼴 보기 싫어서 그런거고.”

“그러면 네가 형우 세워놓고 공으로 차서 맞추기 한 건 뭐야.”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형우 자식이 그런 것도 얘기했냐? 그건 같이 논 거지. 그게 무슨 괴롭히는 거야. 내가 왕따 형우 자식이랑 같이 놀아준 거라고! 맨날 혼자 다니는 녀석이랑 놀아준 게 어떻게 괴롭히는 게 되는 거야!”

“야, 그러면 급식받은 반찬 뺏어 먹은 것도 놀아주는 거냐?”

“그건 친구 사이에 나눠 먹는 거지! 그런 것도 얘기했어? 그 자식 진짜 입 싸네. 자꾸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덤벼 자식아!”

돌쇠는 허탈한 마음에 한숨이 나왔다.

“그런 걸 괴롭힘이라고 하는 거야. 제발, 그런 거 하지 마라. 알겠냐? 왜 자꾸 사자가 하이에나 흉내를 내려고 해.”

“사, 사자? 하이에나? 무슨 헛소리야!“

“정글의 왕 사자는 이미 죽은 동물은 입에도 안 대고, 배고플 때 말고는 약한 동물 건드리지 않고, 정글의 질서를 잡는 왕이란 말이야. 너는 왕으로 태어나서 왜 하이에나처럼 무리 지어서 다니면서 약한 애들만 괴롭히고, 어디 약점 없나 찾아다니냐고 멋없게.”     

돌쇠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안창형은 체격도 다부지고 운동도 잘하고 외모도 어디에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 타고난 인재였다. 그런데 왜 형우 같은 애들을 괴롭히고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한풀이 하듯 안창형에게 말하고 안창형을 지나 옥상 문으로 갔다.     

“야! 이 사자야! 제발 왕답게 행동해. 하이에나처럼 굴지 말고, 부탁이다. 넌 타고났어.”     

칭찬은 사람 마음을 녹이는 유용한 도구다. 긴장하며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가드 자세를 하고 있던 안창형은 훅 밀고 들어온 돌쇠의 칭찬, 넌 왕으로 태어났다는 말에 마음의 가드가 풀어졌다. 먼저 문을 열고 나간 돌쇠 뒤에 남아 한참을 서 있었다. 돌쇠가 한 말의 여운이 가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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