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읽다.
학교에서는 가끔 사람책 수업을 한다. 한 사람의 삶은 책과 같다는 뜻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며칠 전에는 수료한 지 3년이 지난 폐하가 사람책이 되었다. 교사 입장에서는 누구보다 중요한 강연자였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사람책 진행은 간단한다. 강연자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관련된 질문으로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강연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폐하는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한 삶의 질문 두 개를 뼈대로 삼고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
내가 인상 깊게 들었던 부분은 성격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폐하는 학창 시절에 세 번의 전학을 했다. 새로운 곳으로 갈 때마다 본래 성격을 감추고 좋아 보이는 사람의 성격을 따라 했다. 어차피 전학을 가면 처음 보는 사람들이니 새로운 성격으로 행동을 했고 그에 따른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당황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며 자신이 남의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폐하는 오랜 고민 끝에 모든 것은 자신 안에서 출발한다는 것으로 답을 정리했다. 열일곱 살에 만났던 아이는 스무 살 어른이 되어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폐하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가 원하는 나와 본래의 나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나는 질문을 보자마자 욕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나를 내가 만날 수 있을까. 본래의 나는 누군가.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려고 하나. 내가 만든 꼬리질문도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질문이 버거웠던 것 깉다. 나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대신 학생들의 의견을 들었다. 학생들의 답변 중 정체성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체성은 자존감과 관련 있는 것 아닌가. 굳이 자아를 구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 단순해서 좋았다.
수업이 끝나고 각자 강연자에게 적합한 키워드를 선물해 주기로 했다. 나는 '파랑새는 집에 있다'라고 말했다. 파랑새를 찾기 위해 여행을 했는데 결국 새는 집에 있었다는 동화를 그 폐하의 삶에 연결시켰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은 나에게 편해도 된다는 위로의 속삭임 같았다.
학생이 수업하고 교사가 듣는다. 학생이 질문하고 교사는 어려워 답을 잘 못한다. 흔히 교실에서 있는 장면은 아니다. 학생은 부담스럽고 교사가 곤란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았다. 우린 사람책을 같이 읽었고 거기에 대해 토론하고 질문하고 답을 했을 뿐이다. 강연을 끝내고 폐하는 준비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학생이 아니라 동료의 느낌이 났다. 든든했다.
우리 모두는 사람책이다. 교사와 학생이 해야 하는 일반적인 역할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지 않고 한번 비틀어 보는 사고가 이런 수업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식을 뒤집어 만들 수 있는 수업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 호기심으로 세상을 뒤집어 본다. 방법이 뭐가 됐든 그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