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서러움
둘째는 서럽다. 언니와 동생 사이에 끼여 약간은 관심 밖이다.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늘 열외에 속해 있는 듯한 기분은 가족들과 있을 때마다 둘째가 느껴야 하는 몫이다. 우리 가족은 화목하다. 크게 나무랄 곳 없이 가족을 떠올리면 따뜻함이 먼저 떠오른다. 누군가가 이런 나를 보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나도 반박할 수 없다. 그런데 왜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서러움이 내 심리 저변에 깔려 불쑥불쑥 올라오는 걸까.
언니가 예쁜 둘째는 더 서럽다. 어릴 적부터 어딜 가나 나는 비교 대상이었다. 내가 봐도 언니는 참 예쁘고 야무지다. 나를 많이 사랑해주는, 세상에 둘도 없는 내 언니다. 조금만 철이 덜 들었거나 나를 덜 사랑했더라면 미워할 구석이라도 있었을 텐데 열 번 생각해도 언니는 참 좋은 언니가 맞다. 지금도 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는 것은 내가 가진 양가적 감정에 대한 죄책감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언니를 두고도 서러워 울고 있다니.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언젠가부터 오갈 데 없이 떠돌다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습관처럼 언니와 나를 비교했다. 미흡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안절부절못했다. 나를 버릴 수도 버리지 않을 수도 없어 서러워 울었다. 그래도 밖으로 티는 나지 않았으므로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도 내가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끼는 서러움은 어려움 없이 자란 응석으로 받아들였다. 약간 철이 들 무렵부터 스스로 서러움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내가 제일 잘했던 것은 모른 척하는 것이었다. 서러워도 아닌 척, 무안해도 안 무안한 척, 외로워도 그렇지 않은 척했다. 그렇게 하면 내 안에 있는 응석받이가 철이 들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과는 달리 응석이 더 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 화목할수록 내 안의 답답함이 쌓였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가족들 안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내가 하는 것은 비교뿐이었다. 밖을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아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능력이 없었다. 그때는 내 안의 답답함이 가득 차 해소가 되지 않았다. 결국 대학교 4학년이 되고 나서 독립을 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도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하나씩 배워가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공간은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곳이었다. 하루는 지하철 안에서 멍하게 있다가 문득 내가 견과류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물을 때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 다 잘 먹는다는 두리둥실한 대답만 했었는데 나에 대한 질문에 처음으로 대답한 순간이었다. 너무 좋았다.
밖에 살면서 나는 둘째라는 생각도, 언니에 대한 비교도 잘 하지 않고 지냈다. 혼자 해결할 수 없을 때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밖에서 배운 것들을 가족들에게 알려주기도 하며 서서히 가족 안에서 내가 할 역할을 찾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째 특유의 서러움이 많이 사라졌다 생각했다. 나름 성숙해졌다 생각했으므로 여태 애쓰며 살아온 시간이 뿌듯했다.
한글날이 끼여 3일간의 여유가 생겼다. 가족들과 조카를 보러 동생 집에 갔다. 우리가 올라가면 동생 부부가 다문 이틀이라도 쉴 수가 있다. 조카는 요령 피우지 않고 놀아주는 고모들과 마냥 좋아해 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사랑을 실컷 받았다. 이튿날 저녁 잠자기 전에 조카는 나와 메모리 게임을 했다. 엄격하게 규칙을 지키며 하는 나에게 살짝 화가 난 조카는 내 앞에서 언니가 좋다며 애교를 부렸다. 원래도 언니를 더 좋아했으므로 그러려니 했는데 갑자기 어릴 적 감정이 올라왔다. 무의식적으로 나 대신 언니가 게임을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많이 고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싶어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잠시 방에 들어왔다. 6살 꼬맹이가 한 행동에 서러워 다 큰 고모는 울었다. 그리고 조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조카와 같이 잤기 때문에 곤히 잠든 조카의 얼굴은 볼 수 있었다. 천사 같은 동그란 얼굴을 보니 조카가 일부러 나를 힘들게 하려고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내 안에 둘째가 잠시 떠올랐던 것뿐이었다. 법륜 스님께서는 모든 감정은 옳다고 하셨다.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올라오는구나 하고 바라만 보면 된다 하셨다. 그래, 내 감정은 못난 것이 아니라 옳다. 그럴 수 있다. 마음을 토닥여주니 서러움이 녹았다. 참 다행이었다.
성인이 되고도 20년이 넘은 요즘도 언니는 나를 자식처럼 본다.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물고빤다. 나는 언니가 피곤하지 않는지를 묻는다. 조카가 언니에게 많이 매달려 있어 힘이 들까 애가 쓰인다. 언니는 피로한 얼굴로 나를 보며 웃는다. 나도 웃는다. 그리고 손을 잡고 집으로 오는 비행기 쪽으로 걸어간다. 공항에 도착하면 우동을 먹을 건지 돌솥 비빔밥을 먹을 건지 의논하면서, 비행기 속에서 잘 시간을 벌써 신나 하면서 그렇게 나란히 걸어간다. 나는 언니와 꼭 친구가 되고 싶다. 내가 그리 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