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맞이 2박 3일 육아
암막 커튼 사이로 약간의 달빛이 들어와 동그란 얼굴을 비췄다. 사람 얼굴은 동그라미로 다 그릴 수 있는 것이 맞나 보다. 어린 조카의 얼굴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얼굴 모양부터 눈, 코, 입에 양볼까지 동그랬다. 조카와 내 얼굴 사이 거리는 고작해야 10cm 정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잠이 올까. 천지를 모르고 자고 있는 조카의 작은 코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6살 조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이틀 동안 힘들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는 건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추석 2박 3일을 꼬박 조카 옆에 붙어 있었다. 추석맞이 단기 캠프라 이름 짓고 조카는 할아버지 집을 타깃으로 하여 고향으로 내려왔다. 요령 피울 줄 모르고 몸으로 계속 놀아주는 것이, 어설픈 보호자들의 특징이다. 첫째 고모와 둘째 고모는 그렇게 지난 6년을 보냈다. 언니와 나는 어설펐지만 번갈아 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살 궁리는 다 끝낸 상태였다. 조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편안한 집에서 빡빡한 스케줄을 무리 없이 지휘하며 단 한 번을 쉬지 않고 놀았다.
4명의 어른과 1명의 어린이가 있는 곳에서는 한 어른이 어린이의 마음을 독차지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서열이 그리 높지 않았고 체력은 바닥이었다. 여러 번 열심히 놀아줘야 겨우 한 차례 뽀뽀 세례를 받을 수 있었고 틈틈이 자야 다시 놀 수 있었다. 낮의 아쉬움을 만회할 기회는 밤에 우연히 찾아왔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는 터라 일찍 일어나는 조카 스케줄에 맞춰 함께 자게 된 것이다. 언젠가부터 시작된 조카와의 동침은 체력도 다른 사람도 신경 쓸 필요 없이 고요한 조카를 지켜볼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캠프 첫날밤, 조카는 서울에서 내려와 피곤할 법도 한데 잠시 자다 일어나서 밤 12시 30분부터 5시까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6살 꼬맹이가 약 4시간 30분 정도를 어두운 방에서 반쯤 눈 뜬 고모와 함께 잠을 자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뜻이었다. 다음 날 8시에 친척들이 와서 함께 차례를 지낼 텐데 밤샌 조카를 어떻게 해야 할지 해가 뜨기 전부터 걱정이 됐다. 한편으로는 어른들도 지루했을 그 긴 시간을 울지도 않고 버틴 조카가 신기했다. 낮에 잠을 자려하면 그냥 재우기로 하고 이튿날을 시작했다.
나의 새벽 걱정은 기우였다. 조카는 젊음을 내세워 첫날보다 더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함께 못 잔 나는 혼자 못 잔 듯 홀로 골골했고 그만큼 언니가 좀 더 힘을 써야 했다. 조카가 하루에 다 써야 할 에너지 총량은 정해져 있었기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투입되어 밖에 나가 산책을 하고 들어오셨다. 어른들은 하나씩 쓰러지는데 조카는 4명을 모두 상대하며 지치지도 않았다.
잠으로 체력 충전을 마치면 나는 바통을 이어받아 조카와 함께 윷놀이, 메모리 게임, 레고 맞추기를 했다. 조카는 젊음을 무기로 메모리 게임에서 강세를 보였다. 나도 열심히 해 보았지만 따라가진 못했다. 가끔씩 조카가 윷놀이에서 '개'를 '걸'로 만들기도 했으나 세 번에 한 번은 모른 척했다. '게임할 때는 진심이어야 한다'는 평소 나의 생각을 조카가 게임에 익숙해질 때까지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둘째 날 저녁, 조카는 드디어 행동의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멍 때리는 모습을 보자 오늘 밤은 무사하리라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누운 지 10분이 채 안 되어 눈을 감더니 11시간을 내리 잤다. 덩달아 나도 편히 잘 수 있어서 몸도 마음도 좋았다. 자다가 잠을 깨니 밤 1시였다. 다시 자려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옆에 있는 조카의 얼굴을 봤다. 동그랗고 동그란 얼굴이 너무 예뻤다. 낮에 혼을 냈던 것이 기억났다. 괜히 마음에 걸려 배를 쓰다듬어주었다. 조금만 더 참을 걸. 혼자서 이래저래 혼잣말을 했다.
마지막 날 아침, 동생 부부까지 와서 어른 6명이 됐다. 우린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조카의 마지막 재롱을 보았다. 푹 잔 조카의 얼굴은 더욱 동그래져 있었다. 신나게 놀았던 이 장소가 마음에 드는지 올 때마다 여기서 살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나머지 6명은 조카가 잘 놀다 간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놓았다.
체력 달리는 나는 조카와의 만남이 좋았고 그만큼 헤어짐도 좋았다고 고백한다. 앞뒤 안 맞는 고모인가 보다. 지금은 또 추석 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꼬맹이가 보고 싶네. 내 몸에 남긴 그의 체취를 벗삼아 보고 싶은 마음을 글로 달래 본다. 조카가 오늘도 잘 잤으면 좋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