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적이다.

사회생활 & 인정 욕구

by 마나

사회생활을 할 때 감정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무난한 사회생활을 목표로 두고 있는 나로서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길들였다.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착하고 순한 교사로 평가받는다. 평소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데 표현하지 않은 감정이 내 안에 어느 정도 쌓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세련되게 해소할 재주가 없는 것이 사회생활에서 제일 힘든 부분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감정적인 사람이다. 내 안의 감정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모르고 싶어도 알아지는 감정이 성가시다. 내 것도 남 것도 귀찮다. 일부러 모른 척도 해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 성향대로 행동하고 있는 나를 본다. 지 버릇 개 못 주는 것이 맞다.


"사회적 관계에서는 개인적 감정이 배제되는 경향이 생기는데, 그렇게 되면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싶은 개인의 욕구는 오히려 훨씬 더 강력해진다."


<<삶으로서의 일>>이란 책에서 인상적인 문구를 발견했다. 사회생활을 할 때 감정을 돌보지 않으면 보상 작용으로 그 집단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은 욕구가 커진다는 뜻이었다. 내 안에 인정 욕구를 돌아봤다. 학교 안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눈치를 보며 맞춰가려는 마음이 보였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배려하는 거라고 합리화시키며 살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게 정말 배려였다면 감정이 쌓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배려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무시된 감정이 인정 욕구로 변해 나에게 복수를 하고 있었다.


책 읽기를 멈추고 잠시 문장을 뒤집어보았다. 책의 말이 맞다면, 사회적 관계에서 개인적 감정이 충족되면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싶은 개인의 욕구는 감소한다. 그렇다면 인정 욕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알아봐 주는 것 아닐까. 별것 아니라고 내팽개친 것이 문제였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다시 꼬리 질문이 생겼다.


내 감정을 돌봐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지?


답은 간단했다. 내팽개치지 않는 것. 내가 느끼는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하찮게 여기는 습관을 고치는 것이다. 성가시니 일단 모른 척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느낄 때마다 그것을 인정해줘야 했다. 법륜 스님이 말씀하신 자신을 객관화하라는 뜻과 닮았다. 감정을 인정해준다는 것은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해라는 말이 아니다.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을 그대로 느끼고 봐줘라는 뜻이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감정 표현은 어렵다. 그것이 쉽지 않아 나는 표현하지 않는 것으로 꼼수를 부리며 살았다. 가끔씩 터지는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서러울 때면 월급 받지 않냐며 스스로를 꼬드겼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적절하게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까진 욕심부리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봐주는 시간을 가질까 한다. 잠시 혼자 눈감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더 이상 나를 모른 척하지 않는 것으로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고 싶다. 조금이라도 덜 피곤하고 싶은 감정적인 사람의 발버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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