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나 Oct 17. 2022

카카오 중독자의 반성문

SNS 중독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믿기지 않은 내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이번 주말이 딱 그랬다. 평화롭던 주말에 갑자기 평소 잘 나오지 않던 내 안의 중독자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인터넷을 오 분 걸러 한 번씩 들여다봤다. 몇 번 해 보고 안 되면 포기할 만도 한데 그는 나를 몇 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새로고침을 수도 없이 누르게 하고 있었다. 왜 안 되지. 나만 그런가. 휴대폰과 노트북을 번갈아 가며 보고 또 봤다. 이만한 정성으로 공부를 했으면 나는 서울대를 갔을 것이다. 몇 시간이 지나고 나니 네이버에 속보라는 단어를 붙인 기사 하나가 떴다. 


'SK 주식회사 C&C 판교 데이터 센터 화재'


카카오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가 화재로 일시 중단됐다는 말도 기사 말미에 덧붙여져 있었다. 시스템을 복구하는 데 두세 시간은 걸릴 거라 했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진 뒤에야 내 안의 중독자는 뒤돌아섰다. 새로고침을 너무 많이 눌러 피곤해진 나는 주말을 핑계 삼아 그대로 곯아 떨어지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중독자도 함께 잠이 들었다. 

<사라진 브런치 로고>

초저녁에 잠든 탓에 일어난 시간은 새벽 한 시였다. 중독자는 중독성 있는 SNS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포털 주소를 클릭하고 기다리는데 마우스를 따라 움직이는 화살표 옆 동그라미만 계속 돌아갈 뿐 화면이 바뀌질 않았다. 젠장. 아직 복구가 안 됐구나. 네이버에 들어가니 카카오 복구 중이라는 기사가 떠 있었다. 언제 다 복구될지는 모른다고 했다. 중독자는 마음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괜히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남들이 다 자는 새벽에 혼자 방을 서성거리니 보는 사람이 없어도 좀 민망하긴 했다. 혼자 있는 방이라 천만다행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이제는 복구가 되어 있겠지. 아직 안 되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새벽보다 좀 더 큰 기대감을 안고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클릭을 하는 순간 새벽에 돌던 그 동그라미가 여태 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직도? 다시 네이버 뉴스창을 열었다. '언제 복구가 완료될지 모름'이란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실망한 중독자는 허탈한 마음으로 창밖을 쳐다봤다. 밖은 화창했고 하늘은 가을의 농익은 모습 그대로였는데 내 눈에 보인 것은 창문에 비춰 흐릿하게 보이는 중독자의 모습뿐이었다. 가을 하늘과 대비된 내 모습은 더 초췌해 보였다. 고개를 돌렸다.


가만히 앉아 어제부터 있었던 내 모습을 다시 꺼내 보았다.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내가 보였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마음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듯 쩔쩔매었다. 다른 쪽에서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전한 마음이라고 혼자 합리화를 시키고 있었다.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잠시 눈을 감고 멍하게 있었다. 가을 하늘은 여전히 예뻤다. 나를 보고 나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그래, 나도 나가 볼까. 세수를 했다. 화장도 했다. 그리고 다시 앉아 창밖을 봤다. 창에 비친 내 모습이 조금은 달라 보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했다. 나는 어제 하루 종일 글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적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중독된 것은 글쓰기가 아니라 SNS가 맞았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분리수거도 하고 냉장고와 화장실 청소도 했다. 깨끗해진 집을 보니 마음이 좀 더 가벼워졌다. 그리고 점심 약속이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쓰레기 한 보따리를 안고 중독의 기운이 물씬 들어있는 집을 나왔다. 바깥 공기는 너무 상쾌했다. 생각보다 춥지 않고 따뜻했다. 중독의 기운이 몸에 남아 있어 기분이 가볍진 않았지만 친구를 만나 가벼운 농담을 하니 웃음이 났다. 마음이 편안했다.


SNS에 글을 쓴 지 두 달이 넘어간다. 지난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브런치에 들어가 글을 쓰거나 읽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는 말이 맞다.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이 내 글을 읽는 것이 두려워 글을 올리면서도 벌벌 떨었는데 지금은 중독자의 모습으로 포털이 열리지 않아 갈팡질팡이다. 내가 이렇게도 쉽게 뭔가에 중독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두렵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브런치 시스템이 복구되었는지가 궁금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디다 글을 쓰든 무슨 상관인가 싶다. 글을 적는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나. 내가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가 중요하긴 하나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내가 흔들리는 것은 문제다. SNS 중독자로서 깊이 반성해야 할 부분은 내가 기준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기준을 잡고 제대로 사용하며 살지 못한 대가로 금쪽 같은 가을의 하루를 중독자로 살아버렸다. 아까운 하루가 날아갔다. 부끄럽다. 중독자의 하루를 잊지 말자. 

작가의 이전글 학생 앞에서 교사가 해선 안 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