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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Oct 21. 2022

직장에서 청렴청렴해지는 법

사랑하는(?) 온라인 필수 연수

청렴 : 성품과 행실이 맑고 깨끗하며 재물 따위를 탐하는 마음이 없음.


며칠 째 나는 청렴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청렴한가. 모른다. 누군가가 내게 뇌물을 줄 하등 이유가 없으므로 그런 건 받아본 적이 없으니 청렴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모른다. 청렴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더 헷갈린다. 나의 성품과 행실이 맑고 깨끗한가. 맑고 깨끗한 것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하루에도 두세 번 마음이 찝찝한 경우가 생기므로 1급수에만 사는 물고기 같은 성품과 행실을 가지지 못한 것은 맞다. 그럼 나는 청렴하지 않은가. 모른다. 진짜 모른다.


온라인 연수를 듣고 있다. 청렴에 관한 연수인데 교사는 다 들으라는 공문이 왔다. 온라인 연수는 삼 분 정도 되는 영상이 몇십 개로 쪼개져서 평균 삼 분마다 한 번씩 클릭을 해줘야 한다. 그냥 틀어만 놓지 말고 연수를 들으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밥 먹을 시간도 겨우 빼는 학교 생활에 삼 분 정도의 영상 몇십 개를 정성스럽게 클릭하며 연수를 들을 교사가 몇 명이나 있을까. 설사 있다 하더라도 학교생활에 집중하는 교사가 더 청렴한지 연수에 집중하는 교사가 더 청렴한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온라인 연수는 계속 돌아가고 있지만 여유가 없는 나는 컴퓨터를 무음으로 해놓고 창을 덮은 후 다른 문서를 펼친다. 삼 분마다 해야 하는 클릭이 성가시긴 하지만 그나마 잊어버리지 않고 클릭을 하면 다행이다. 일에 집중하다 보면 연수를 잊고 하루가 훌쩍 지나가버리기도 한다. 하루에 겨우 삼 분의 연수를 들은 것밖에 되지 않는 청렴하지 못한 교사가 되는 것이다. 더욱 진도를 나갔어야 하는데 마감 시간은 다가오고 할 일은 태산이다. 속에서 짜증이 나면 나는 점점 더 청렴과 멀어짐을 느낀다. 이놈의 청렴.


청렴한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청렴에 대한 정의부터 와닿지 않은 나는 그런 사람을 제대로 본 적도 없고 찾을 수도 없다. 교사의 학교생활은 일 분이 중요하다. 쉬는 시간 십 분 사이에 밀린 서류 작업을 해야 하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며 전화도 받고 화장실도 가야 한다. 1급수 청정한 물에 사는 듯한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사람도 밥은 먹고 화장실은 갈 것 아닌가. 


온라인 연수가 청렴해지기 위해 교사가 받들어 뵈셔야 할 스승이라면 온라인 연수의 인성부터 파악해야 한다. 인성도 없는 것이 무슨 인성을 부르짖으며 청렴을 이야기하는가. 이것을 만든 사람은 정말로 교사들이 연수를 보면 청렴해질 것이라 생각하며 만들었을까. 만든 사람은 억지로라도 들으라고 영상을 조각조각 잘라 놓고, 듣는 사람은 그것도 듣기 싫어 무음으로 바꿔 놓는다. 만든 사람도 들어야 하는 사람도 연수의 내용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영상을 들었다는 표시를 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꼴이다. 


온라인으로 제대로 된 청렴교육을 하고 싶다면 만화 캐릭터로 사례를 보여주는 따위의 화면이 아니라 정말로 청렴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이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교사는 학생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므로 평생 교육을 받아야 하는 집단은 맞다. 다양한 연수를 만들어 교사가 배우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교육의 목표와 전혀 맞지 않게 만들어진 수십 개의 필수 연수들은 안 그래도 여유 없는 교사들을 괴롭히는 역할밖에 하지 않고 있다. 


필수일 필요가 전혀 없는 연수들을 클릭하며 기계적인 손가락 운동에 피로함과 지루함이 동시에 찾아온다. 청렴한 교사. 되고 싶다가도 연수를 클릭하며 정 떨어지는 말이 되어 버린다. 업무 강도가 너무 지나쳐 과로로 쓰러진 교사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심심찮게 나온다. 자유학교에도 교무실에 있는 4명의 교사 중 그나마 병원에 가지 않을 정도만 비실거리는 사람은 나뿐이다. 동료 교사들의 건강 상태가 많이 걱정되는 요즘, 어이없게도 청렴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청렴한 교사.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아마도 온라인 연수가 다 끝나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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