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나 Oct 23. 2022

촌놈, 서울 간다.

서울 여행 계획

서울 가면 뭐하지?


요즘 학생들이 자투리 시간에 제일 많이 내뱉는 이야기 주제다. 11월 중순에 서울로 가는 마지막 여행을 생각하며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중얼거린다. 출발과 도착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을 학생들이 계획한다. 4박 5일 여행 계획을 짜느라 다들 바쁜 모습이다. 가을이 한창인 요즘, 여행의 기운이 제대로 스며들어 학생들과 교사들의 마음을 물들이고 있다. 학생들의 표정에 여행이 주는 설렘이 느껴진다. 나도 내 의견 없이 따라만 가는 여행에서 뜻밖의 순간을 기대한다.


1일 차 : 함께
2일 차 : 학생과 교사가 섞인 모둠
3일 차 : 학생 모둠, 교사 모둠
4일 차 : 혼자
5일 차 : 함께


이번 여행은 '알쓸신잡'이라는 예전 TV 예능 콘셉트를 따왔다. 낮에 돌아다니며 배운 것을 저녁에 돌아와 함께 공유하는 여행이다. 한마디로 '혼자 또 같이'. 촌놈 11명이 크나큰 서울에서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우리는 첫날과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는 삼삼오오 혹은 혼자서 흩어져야 한다. 혼자 걸어본 자만이 함께 걸을 수 있는 길. 1일 차 '함께'가 5일 차 '함께'와 다른 의미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시간. 그 속에 학생의 자립이라는 교육의 목적이 숨어 있다. 


지난 철학 시간에는 여행의 가치를 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전 세 번의 여행과는 달리 이번 여행은 흩어졌다가 모이는 과정이 반복될 거라 모두가 같은 가치를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수렴하는 시간 없이 각자 선택한 가치에 대한 발표만 했다. 나는 여행의 가치로 '배움'이란 키워드를 뽑았다. 이번 여행이 수업이나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운 지식을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개인적으로는 비워낼 수 있는 방법도 배우고 싶었다. 학교 밖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일상에서 무거워진 내 마음이 가벼워지면 좋겠다.


학생과 함께 하는 여행 시간에는 되도록이면 내 눈이 아니라 학생들의 시선을 따라 서울을 밟아보고 싶다. 그래서 2일 차에는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말없이 듣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바라볼 세상은 얼마나 다를까. 여행도 틀이 있듯이 내 시선도 틀이 있지 않은가. 그 틀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다. 여행은 낯섦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촌놈 눈에 보이는 낯선 서울만큼 학생들이 보는 세상도 낯설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보는 학생들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따라다니며 마음 비우는 작업을 하면 될 듯하다.


4일 차 혼자 하는 시간에는 김영한이라는 사람이 절터와 건물을 기부하셔서 법정 스님이 지으신 길상사에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갈 수 있는 시간이 나서 참 좋다. 책을 읽고 그 속에 나오는 장소나 사람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간간히 법정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을 하는 중이다. 마지막 입적하신 곳이 성북동에 있다 하니 가서 108배하고 절밥 한 그릇 얻어먹고 와야겠다. 스님의 '무소유'를 떠올리며 절에 올라가는 길에서 마음이 비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번 여행을 '쓰레기통'이라고 이름 지었다. 마음의 찌꺼기들을 하나씩 닦아내어 버리는 시간. 청소를 하며 깨끗한 공기가 방에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처럼 조금씩 비워내며 가벼워진 나를 기대한다. 쓰레기통에 버려질 찌꺼기들을 잘 분리하여 다시 재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든 여행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학생들의 마음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길 바란다. 이번 여행은 혼자 또 같이 한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고 같이지만 또 같이가 아닌 여행길이 기대된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에서 청렴청렴해지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