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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Oct 25. 2022

한국과 일본은 잘 지낼 수 있을까

일본

일본인 엄마를 둔 친구와 한국사 수업을 같이 받았다면,
수업 후 너는 어떻게 행동할 거니?

일본을 대표해서 오신 선생님이 강의를 끝낸 후 우리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이었다. 수업을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현재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중학교로 진학하며 곧 겪어야 할 일에 대한 일본인 엄마의 염려였다. 질문 하나에 두 나라의 지난 역사와 오늘날의 관계가 모두 들어 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며 하는 고민치고는 너무 무거웠다.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이 내 교실에 있을 수도 있는 일이므로 교사도 놓치지 말고 알아둬야 할 질문이기도 했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어떤 일 앞에서 조금이나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질문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몇 주간 계획했던 '다문화' 사람책 수업을 오늘부터 시작했다. 나라 간의 문화 차이를 자료를 통해서가 아니라 일반인의 삶을 통해 배우자는 취지였다. 한 사람의 삶 속에 그 나라의 문화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사람책 수업을 통해 좀 더 깊이 있게 다른 나라 문화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알고 싶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결혼이민자들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화적 차이는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떻게 극복하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다 함께 잘 살기 위해 한국인이 알아둬야 할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번 주에 오신 선생님은 결혼 후 한국에 살게 된 일본인이셨다.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과 차분함이 느껴져 나도 따라 차분해졌다. 선생님이 말씀해주시는 것을 들으니 일본과 한국의 문화가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밥그릇을 들고 식사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는 반면 일본 사람들은 밥그릇을 들고 먹지 않으면 개가 먹는 것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일본에서는 젓가락을 사용할 때 다른 사람 젓가락과 서로 부딪히면 안 된다고 했다. 화장을 한 후 뼈를 담을 때 여러 사람이 젓가락을 이용해 단지에 담기 때문에 식사 시간에 젓가락이 부딪히는 것은 장례 문화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우리는 '깻잎 논쟁'이 유행했던 한국 문화를 이야기하며 앞사람이 깻잎을 잘 떼지 못할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숟가락을 대신 사용해서 잡아준다고 했다. 두 문화 간 차이를 찾아가는 재미가 제법 솔솔 했다.


선생님의 강의 주제는 한 고장에 가면 그곳의 풍속을 따르라는 뜻의 '입향순속'이었다. 한국에 잘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을 다양한 시각에서 말씀해주셨는데 이때부터는 마냥 재미만 있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문화적 차이에서 겪었던 경험을 말씀해주셨다. 일본 사람들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조용히 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전화통화도 하지 않고 대화도 조용히만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공공장소에서 통화가 자유로운 한국을 보며 많이 당황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도로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침을 뱉는 사람들을 종종 봤었는데 그때마다 화도 많이 났었다고 했다.


"한국을 이해할 수 없어 밖에 나가는 것이 싫었어요. 그런데 문득 내가 사는 이곳이 일본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지는 거예요. 내가 너무 좁은 시각에서 한국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일본인의 시각을 벗어나 한국인을 그냥 살펴보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안 보이던 것이 보였어요. 한국인은 좀 더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더라고요. 그것이 일본인보다 자유롭게 사는 것으로 보이는 것 같았고요." 인상적인 말이었다. 입향순속이란 의미를 선생님께서 어떻게 받아들여 삶에 적용하셨는지가 잘 보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되는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 쓰레기와 침 이야기는 부끄러웠는데 그 속에서도 한국 사람들의 장점을 찾아주신 것이 고마웠다. 


한국인으로부터 받은 차별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일본인은 다른 나라 이민자들에 비해 차별을 덜 받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도 14년을 한국에 살면서 차별을 받아 힘들었던 경험은 거의 없었던 듯했다. 하지만 이민자들 모두가 그렇진 않다. 태어난 나라가 어디인지에 따라, 외모에 따라 혹은 그 외에 다른 이유로 그들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는 다르다. 우리의 성품이 나빠서가 아니라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교육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다음 주에 오실 다른 나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곱씹어 생각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좀 더 심각한 이야기도 나왔다. 두 나라 간 정치적 관계 때문에 3.1절이나 8.15. 광복일은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유치원에서 아이가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배우고 와서 흥얼거리는 것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하다고 하셨다. 아이가 '일본인은 나빠?'라는 질문을 했을 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고민을 했었던 경험도 말씀해주셨다. 민간인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두 나라 간 역사적 관계가 여전히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불편한 세상에 연약한 아이를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 엄마로서 얼마나 마음이 쓰일까.


"일본인 엄마를 둔 친구와 한국사 수업을 같이 받았다면, 수업 후 너는 어떻게 행동할 거니?"


수업 마지막에 주신 질문은 일반 한국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싶어 하는 일본인 엄마의 마음이었다. 학생들은 "괜찮니?"라는 질문을 할 거라고도 했고, 감추지 않고 서로가 생각하는 한일 관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고도 했다. 나도 학생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야 한다는 말을 학생에게서 들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선생님도 학생들의 대답에 웃으시며 고마워하셨다. 그런 날이 진짜 올까. 선생님의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역사 수업 시간이 소외감을 느끼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여 일본인의 시각을 말할 수 있는 토론이 장이 될 수 있을까.


<한중일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

역사를 담당하는 동료 교사는 학생들의 마음을 담아 민간에서 만든 한중일 합작 근현대사 교과서를 선생님께 드렸다.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세 나라가 함께 해석하여 만든 책으로 선생님의 아이가 혹시 혼란스러워할 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14년을 한국에 사셨다. 두 나라를 모두 이해하려 노력하신 선생님의 삶을 보며 양국의 갈등이 어쩌면 해결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여전히 축구 한일전에서는 남편과 신경전을 벌인다는 말씀에 학생과 교사 모두 웃었다. 이런 웃음이 여러 곳에서 들렸으면 좋겠다. 언제가 될지 아직 아득한 것은 사실이나 오늘 경험했으므로 아득한 어느 날이 내일이 될 수도 있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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