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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Oct 27. 2022

대봉감이 익어 가고,

곶감도 말라간다.

대봉감을 좀 얻었다. 익지 않은 감을 받아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맛은 실제로 감을 먹을 때보다 더 좋다. 익어가는 감을 보며 가을을 실감한다. 올해는 너무 짧지 않게 머물다 갔으면 좋겠다. 몇 해 전에는 덜 익은 대봉감을 동료 교사들에게 하나씩 드렸다. 그 속에 들어있는 가을을 같이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교무실 자리마다 하나씩 놓인 대봉감을 보고 오늘은 좀 더 익었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같이 하고 싶었다. 작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이런 것 아닐까. 짧은 가을을 그냥 지나치지 마라고 가을 친구가 올해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왔다.


매일 두세 번은 감의 볼을 조몰락거린다. 좀 더 익었으려나. 눈으로만 구경하려고 애쓰다 이내 다시 손을 댄다. 몇 분 전과 비교해서 좀 더 익은 것 같기도 하다. 아닌가? 내가 가진 촉감을 총동원하여 이리저리 느껴보다 혼자 웃는다. 나는 기다리는 것이 맞을까. 그냥 먹고 싶은 마음 아닐까. 남들이 다 자는 새벽에 괜히 혼자 일어난 것이 싫어 자고 있는 대봉감을 깨운 건지도 모르겠다.


<대봉감 속 사과 한 알>

인터넷을 찾아보니 감 다섯 개 정도에 사과 하나를 옆에 두면 에틸렌 가스가 나와 좀 더 잘 익는다고 한다. 마침 냉장고에 사과가 있어 냉큼 꺼내 감 사이에 두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느껴진다. "과일 속 숨어 있는 가을을 찾으세요." 뭐라 말할 수 없고 꼭 집어 어딘지 알 수도 없지만 분명 가을이 보인다. 익어가며 스며드는 과일의 단맛은 설탕과 달리 깊이가 있다. 그 속에 가을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닐까.


<곶감으로 변신 중>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나도 곶감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검색해보니 찬바람이 잘 부는 곳에 감을 깎아 매달아 놓으면 된다고 했다. 할 수 있겠다 싶어 재료들을 찾았다. 매달아 놓을 세탁소용 옷걸이도 있고 매달릴 수 있는 대봉감꼭지도 잘 붙어 있었는데 그것들을 연결시킬 실이 없었다. 순간 실망감과 게으름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만하고 그냥 홍시로 둬야겠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려는데 해가 천천히 뜨는 것이 보였다. 그만두지 말고 한 번 해 보라고 웃어주는 듯했다. 그래, 감을 말리는데 꼭 매달아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분의 화분이 눈에 띄었다. 그것을 뒤집어 놓고 감을 깎아 창문 앞에 두었다. 떫은 감을 깎아두었을 뿐인데 곶감이 벌써 내 입속에 있는 듯 침이 고였다. 또 다른 기다림의 맛이었다.

<콩과 대봉감>

대봉감 옆에 콩도 열심히 익어가고 있다. 이제 제법 콩꼬투리가 갈색으로 변했다. 아직 솜털이 보송한 꼬투리도 있어 수확의 시기를 늦추고 있을 뿐이다. 콩도 감도 열심히 가을을 마신다. 감 혼자보다는 사과와 함께인 것이 낫고 과일만 있는 것보다는 옆에 콩 화분이 있는 것이 더 낫다. 여럿이 모여 조금씩 뻗어 나오는 햇살을 받는다. 제법 차가워진 새벽바람이 성가시지 않고 반가운 것은 내 옆에 곶감으로 변신할 대봉감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올해 가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는 감의 달콤함과 콩의 담백함을 느낀다. 길고 오래 머물 계절이 아니라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더 잘 느끼게 해주는 건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계절을 잡을 수는 없겠지만 있을 때 마음을 다해 느끼고 싶다. 붉은색, 노란색, 갈색이 잘 어우러져 올해도 가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나답게 익어가고 싶다. 오늘은 대봉감 볼을 한 번만 조몰락거려야겠다. 너무 질척거리는 것이 내 모습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눈으로만 감을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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