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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Nov 04. 2022

에니어그램 2번 유형

돕는 사람이 싫다. 분홍색이 싫다.

"Who Am I?"

살면서 심심찮게 받는 질문이다. 초중고 12년 동안 매 학년 초마다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개팅부터 회사 취업을 할 때에도 처음으로 받게 되는 기본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이다. 시험 문제를 낼 때도 적어도 첫 번째 문항은 쉬운 것을 내지 않던가. 학생들이 시험을 잘 쳤으면 하는 교사들의 응원을 담아 대부분 쉬운 문제를 넣는다. 그럼 우리의 바람대로 "Who Am I?"는 쉬운 질문이 맞는가. 본인이 누구인지 정답을 아는 사람?


첫 번째 문항에 답하지 못한 죄로 교사 4명과 학생 7명은 지난 8개월 동안 일주일에 5일씩 학교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리고 있다. 오늘은 에니어그램 검사를 받았다. "인간은 행동중심형, 감정중심형, 사고중심형 3가지로 나눠진다. 이는 다시 9가지 본질로 분류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중 하나를 갖고 태어난다"는 원리를 담고 있는 검사였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은 하루 종일 에니어그램 수업을 받으면서 1번부터 9번까지 중 내가 그나마 어디에 속해 있는지 추측해내는 것이었다. 과연 오늘은 '나는 누구인가'의 정답을 찾을 수 있을까.


<분홍색이 싫다.>

수업은 180개의 성격이 적혀 있는 카드 중에 나와 닮은 카드를 모두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9가지 색깔의 카드가 네모 모양과 동그라미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15개의 카드를 골랐는데 카드를 내 종이에 붙이고 보니 다른 동료 교사들이 뽑은 것에 비해 개수가 훨씬 적었다. 강사님은 수업이 끝날 때 개수의 의미도 알 수 있을 거라 말씀하셨다.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넘어갔다. 그다음은 색깔별로 분류된 9가지의 본질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본질의 설명이 나와 관련된 성격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카드를 틀 밖으로 빼내라고 하셨다. 각 본질이 잘 통합되었을 때의 모습과 유혹에 빠져 잘못되었을 때 모습에 대해 거의 2시간이 넘게 설명을 들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여 카드를 골라내기가 힘들었는데 반복적으로 천천히 설명해주시니 서서히 마음속에 각 본질에 대한 상이 정리가 되었다. 들으면서 아니라고 생각되는 색깔의 카드를 신중하게 골라냈다. 오전이 끝나갈 무렵 내 종이에는 분홍색(2번)이 남아 있었다. '돕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괜히 싫어 다른 색깔을 한 번 더 기웃거렸다.

<돕고자 하는 사람>

타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 본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것이라 했다. 나만이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서까지 도움을 주려하는 마음을 교만이라 정의하며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 설명을 들으니 내가 가진 오지랖이 생각났다. 나는 진짜 2번인가. 그냥 싫었다. 다른 색깔의 특성을 더 꼼꼼히 살펴봤다.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점점 강해지자 분홍색이 더 꼴 보기 싫었다. 


2번 본성이 잘 성장하면 자유롭게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나 스스로를 바로 알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제대로 결정하는 능력, 이것이 자신을 제일 먼저 돕는 힘이라고 하셨다. 자기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배려만이 감동이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남을 도와주고 되려 괜한 소리 듣고 살았던 내 모습에 무엇이 빠져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세상 사람들이 버거워 점점 더 안으로 들어가는 나에게 원인이 타인이 아니라 나를 챙기지 않는 나에게 있음을 알려주었다. 분홍색을 싫어했던 마음이 떠올라 괜히 미안했다.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에 천천히 분홍색 단어들을 읽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고 나서야 나는 2번을 받아들였다. 

<2번 유형은 1번과 3번을 양 날개로 가진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내 종이를 강사님께서 해석해주셨다. 2번 본질은 스스로를 돌보면서 남을 도와줘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지금의 나처럼 지쳐 숨을 수 있다고 하셨다. 카드의 개수가 남들보다 훨씬 적은 이유는 내 안에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를 돌보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라는 말을 반복해하시는 강사님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참으려 노력했는데 피로감과 동시에 눈물이 나왔다. 피곤해서 나는 눈물이었다. 2번은 앞으로 4번 본질을 향해서 나아가면 좋다고 하셨다. 4번은 나를 제일 중요시 여기는 낭만주의자였다. 타인을 향한 마음을 나를 위하는 마음 뒤에 놓고 제대로 도움을 줄 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하시는 말씀이 참 좋았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그쯤 되니 분홍색이 더 이상 싫지 않았다. 이런 속도라면 언젠가는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MBTI는 성격을 말해준다면 에니어그램은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본성을 찾아주는 검사인 듯했다. 수업 시간에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마지막에 동료 교사들이 적어준 나에 대한 단어들을 다시 봤다. 평소라면 약하게 들려 싫어했을 단어들인데 수업이 끝나고 나니 싫지 않고 인정하게 된다. 수업을 들은 교사 4명 중에 운 사람은 나뿐이니 약한 것도 인정해야겠다. 나는 이제 나를 아는 것인가. 아직은 아닌 듯한데 수업을 통해 나를 인정하기 시작한 시발점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울고 나니 쪽은 팔렸으나 속은 시원했다.


12월에 오늘 나온 검사 결과를 가지고 삶의 철학을 세워보는 시간을 한 번 더 갖기로 했다. 그때는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나는 평생 이렇게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며 살 것이다. 오늘 깨달은 것을 잊고 또 오지랖을 부리며 상처받고 혼자 울 날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럼 하지 않는 것이 낫나.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어차피 여행 좋아하는 2번이니 여행 간다 셈 치고 삶을 배워나가면 힘은 들겠지만 재미는 있지 않을까. 오지랖과 배려의 차이. 내가 있고 없고의 차이. 기억하며 지내자. 오늘은 머리 아프게 잠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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