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걷는다는 건 뭘까. 나는 왜 걸을까.
올해 처음으로 걷기 수업을 담당하면서 1년간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그 전에는 그냥 걸었다. 왜 걷는지 이유를 생각해야겠다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냥 좋아서. 그냥. 그냥. 누군가가 나에게 왜 걷느냐고 물었다면 시답잖은 사람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비웃었을 정도의 '그냥' 마음으로 이유 없이 걸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어렸을 때부터 계속 걸었다는 사실이 어떤 면에서는 대단해 보인다. 이런 내가 우연찮게 걷기 수업을 담당하게 된 건 이제는 생각이란 것을 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꿀밤의 의미 같기도 하다.
나는 왜 걸었을까. 처음에는 걸어야만 했다. 산 위로 이사를 하고 난 뒤,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걸어야 했다. 국민학생이었을 때 비 오는 날은 산을 헤매며 걸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옷이 진흙 범벅이 되어 있곤 했다. 중학교는 더 멀었다. 등하굣길을 걷고 또 걸었다. 사춘기 시절 집을 나가고 싶었을 때 집에서 수십 키로 떨어진 절에 가서 살겠다고 계획을 세웠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름 심각했다. 그때 내가 생각한 이동 수단도 당연히 걷기였다. 대학생 때는 걸으면 돈도 아끼고 살도 빠지고 일석이조였다. 버스와 지하철 환승 제도가 없었던 시절이어서 당연히 버스는 건너뛰고 지하철 역까지 걸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 걷기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 부족하거나 힘든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당연해서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냥'이란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굳이 걷지 않아도 될 정도로는 먹고 산다. 그런데 나는 왜 걸으려 할까. 등산을 하고 산책을 하고 여행을 하며 굳이 걷는 시간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그냥,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걸으며 몸이 힘들어질수록 마음은 가벼워진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좋으니 하면 그뿐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냥 좋으면 하면 되지, 샌님처럼 답답하게 꼼꼼히 다 따져봐야 하나. 지난 1년간 걷는 이유를 찾지 못하면 혼자서 속으로 이렇게 툴툴거리곤 했다. 그리고 '그냥!'이란 단어 하나로 생각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답 찾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 것은 학생들 때문이었다. 나는 걷는 이유는 모르지만 걷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걷기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걷기 수업이 있기 때문에 걸어야 한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답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걷는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학생들도 왜 학교에 걷기 수업이 있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것이라 생각했다. 교사의 책임감을 핑계 삼아 왜 내가 계속 걸으며 살았는지 알아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학교 뒷산을 걸으면서 학생들의 몸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낀다. 산행 속도도 빨라지고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서 학생들의 표정도 크게 힘든 구석이 없다. 공동체 회의를 통해 산 정상에 한번 가는 게 어떻냐는 의견을 냈을 때 선뜻 동의를 하는 학생들을 보며 마음의 변화도 조금은 느꼈다. 그래서 정상에 가는 날짜를 잡고 난 후 학생들과 함께 읽을 <<밤의 피크닉>> 책을 샀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졸업 전 참여하는 야간 보행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루 동안 80km를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생기는 시간들 속에 걷기에 대한 작가만의 정의가 숨어 있을 것 같았다. 책을 미리 읽고 걷기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기로 마음을 정했다.
지난 2주간 매일 아침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 학생들은 같은 고등학생 이야기이고 자신도 매주 산행을 하고 있으므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이 책에 몰두했다. 시작 전까지 속으로 책이 적절한지를 걱정했었는데 학생들의 반응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혼자 책을 읽을 때보다 더 깊이 있게 <<밤의 피크닉>>을 즐겼다. 우리들만의 피크닉을 위해 몸과 마음을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걷는다는 것은 결국 한 발자국씩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 학교 뒷산을 향해 학생들과 함께 일 년 동안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걷기에 대한 기억이 쌓여감을 느낀다. 차곡차곡 쌓이는 맛이 달콤하다.
책 읽기 마지막 날에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은 '나에게 걷기란?'이었다. 책을 읽고 산행을 하며 마음으로 걷고 몸으로 걸은 학생들이었다. 최선을 다해 경험한 후에도 산행이 싫다는 말이 나온다면 그것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먹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보다 몸에 대한 이야기보다 생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우리는 몸을 통해 마음을 느끼고 마음을 통해 몸을 느낀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걷는 것은 아닐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제대로 그 순간을 보낼 수 있는 거라고 배운 듯하다.
<나에게 걷기란?>
벨라 - 걷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
소리 - 평소에 할 수 없었던 혼자와의 시간.
오비완 - 스트레스 청소기
크롱 - 생각을 덜 하게 되는 시간
로쏘 - 심장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
마나 - 몸으로 생각하는 시간
포비 - 올라가기 전에는 죽어도 하기 싫지만 내려오면 할 만했네 하는 시간
우자 - 내가 해야만 알 수 있는 것. 내 몸과 대화하는 시간
토리 - 나와 친구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시간
2주 후에 산 정상으로 출발한다. 책에 나온 야간 보행제와 비교하면 소꿉놀이 수준이지만 그래도 우리 나름의 단단함을 착용하고 산으로 갈 것이다. 함께 길을 걷는다는 건 또 뭘까. 걷기에 대한 나의 생각이 정리가 되니 함께 걷는 길에 대한 질문도 생긴다. 조금씩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걷기는 한 발자국부터. 그것이 모여 정상까지 간다. 가는 길에 숨겨진 여러 가지 보물들을 잘 발견할 수 있기를. 올해의 산행이 내년의 산행으로 잘 이어지길 조금씩 욕심을 더 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