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람을 읽다.
다문화 가족과 글로벌 가족의 구별법은?
베트남 선생님께서 ‘다문화’ 사람책 수업을 끝낸 후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뒤통수가 아릿했다. 질문에 무슨 의도가 들어있는지 알 것 같았다. '다문화 가족'과 '글로벌 가족'은 모두 익숙한 표현이었지만 어리석게도 두 표현을 한 번도 함께 생각해보진 않았다.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나은이네를 방송에서 소개할 때는 다문화 가족이 아니라 글로벌 가족으로 표현한다. 반면 선생님의 가정은 다문화 가족이다. 두 가정 모두 외국인과 한국인이 결혼하여 만든 가정인데 왜 다르게 부를까. 두 가족의 차이점은 아르헨티나 출신 엄마이냐 베트남 출신 엄마이냐의 차이밖에 없다. 출신국의 차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차이. '다문화 가족'이란 표현에는 그 차이의 의미까지 들어있었다. 깊은 성찰 없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언어는 이렇게 더럽혀지는 것일까. 나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다문화'란 말의 본래 의미는 다양한 문화라는 뜻이다. 베트남에는 54개의 민족이 함께 모여 살지만 한국에는 대부분 한국인이 산다(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가 늘고 있긴 하지만). 따지고 들면 베트남은 다문화 국가이고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이다. 하지만 베트남에는 '다문화'란 표현이 없고 한국에는 있다. '다문화'란 여러 문화를 포용하는 단어일까, 구분 짓는 단어일까. 언어도 다른 54개의 민족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도 서로를 구분 짓지 않는 곳이 베트남이다. '다문화'라는 단어가 필요 없는 이유는 서로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같은 사람인데 무엇을 굳이 구분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남녀노소를 구분하고 정치적 성향과 사는 지역을 구분하는 우리나라가 '다문화' 국가일까, 베트남이 '다문화' 국가일까. 강의를 듣는 내내 한국 내에서 사용되는 '다문화'란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에 처음 와서 당황스러웠던 사례를 말씀해주셨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사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 베트남 문화와는 달리 한국 사람들은 처음 보면 먼저 나이를 묻고 시작한다. 왜 나이를 묻고 사는 곳을 묻는지 반말과 높임말이 있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서서히 알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이유를 몰라 힘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한국어로 다 표현할 수 없어 묻는 것에 답하려고 애쓰면서도 문화 간 차이를 실감해야 했다. 강의를 들으며 잘해 주고 싶어 말을 건 한국인의 마음도 선생님의 당황스러운 마음도 이해가 갔다. 사람을 반기는 마음은 같았으나 방법이 달라 서로의 의도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괜히 직업병이 올라와 교육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어릴 적 외국인과 처음 대화를 했을 때가 기억이 났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야심 차게 "How old are you?"라고 물었고 그때 그 외국인은 정색을 하며 그건 너무 사적인 질문이라고 말해 당황했었다. 한국에서는 인사와 같은 대화 내용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무례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의도치 않은 반응에 당황했던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가 우리와 같지 않음을 알게 해 주었다. 나는 베트남 선생님께 내 경험을 말씀드리며 버스에서 느낀 당황스러움을 한국 사람들에게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다. 그건 무례한 것이 아니라 베트남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할 거라는 의미였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나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를 경우 그것은 죄가 될 수도 있게 된다. 나쁜 의도로 나이를 물은 것은 아니나 문화를 몰라 무례한 행동을 계속하게 된다면 나와 이야기하는 외국인은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한국인이므로 다양한 민족이 함께 오랫동안 살았던 베트남과 비교했을 때 낯선 문화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어색할 수밖에 없다. 나쁜 마음이 아니라 어색하고 낯선 마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운 선생님처럼 우리도 한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과 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문화의 다양성을 배워야 한다. 신기하다고 쳐다보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한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만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 없는 배움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
"엄마, 나는 한국인이야? 베트남인이야?"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한국 사람이지. 그래도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니 너는 베트남 사람 특성도 가지고 있단다."
선생님의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하교를 하고 온 아이가 질문을 했고 혼란스러워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나누지 않고 베트남 문화의 특성과 우리나라 문화의 특성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면 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에게 한 질문이 같았을까. 두 문화를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것은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 있어 참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환경은 다문화 가정에는 없고 글로벌 가정에만 있는 듯하다. 누가 두 가정을 구분 지었을까. 우리의 무지함은 우리 세대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의 질문을 통해 알게 됐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몰라서 생기는 다양한 오해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 억울하지 않은가. 내가 가진 선한 마음이 다르게 왜곡되어 오해로 돌아온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다. '다문화 가족'도 '글로벌 가족'도 사실 처음에는 다 좋은 의미였을 것이다. 처음의 의도가 변질되는 이유 중 하나는 무지함이다. 생각 없이 사용하고 생각 없이 말을 하면 그 사이에는 분명 오해가 생긴다. 나는 이번 수업을 통해 베트남 선생님과 함께 오해를 줄이기 위한 작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기분 좋게 돌아가시는 선생님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로쏘의 질문을 글의 끝에 남긴다. '다문화'란 단어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다문화'란 말 대신 어떤 말을 사용해야 할까. 한국은 아직 문화 다양성에 대해 많이 배워야 한다. 이 상황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은 뭐가 있을까. 로쏘의 질문은 베트남 선생님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계속 생각할 힘을 주었다. 수업이 질문으로 끝이 난 것이 너무 좋았다. 구분 짓지 않고 너와 내가 같은 사람으로 잘 어울릴 수 있는 사회는 그냥 만들어지진 않는다. 다행히 베트남 문화 속에는 이런 모습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보고 배울 수 있는 부분은 배워가면 어떨까. 선생님께서 좀 더 용기를 내셔서 많은 곳에서 베트남 이야기를 해주시길 염치없지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