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간 갈등, 학생의 불안감
자유학교의 교사는 달랑 4명. 학년 초 교육과정 계획부터 마지막 수료식까지 모두 우리가 책임진다. 허허벌판에 씨 뿌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자유로운 이 작업이 좋아 교사 4명은 올해도 같이 머리를 싸매고 학교에 있다. 학교를 운영하는 데 있어 부장 교사, 담임교사와 같은 역할 분담이 거의 무의미하다. 학교 안에서 교사와 학생의 영향력이 비슷한 것처럼 교사 사이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일과를 함께 한다. 당연히 같이 수업을 듣고 밥도 같이 먹는다. 수업 시간에는 토론을 하는 경우가 많아 서로의 생각을 더 많이 알게 된다. 이렇든 저렇든 학교에 있으면 저절로 서로를 알 수밖에 없다. 보통 인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는 동화 속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의 현실이다. 하루 종일 함께 하는 생활 속에는 좋은 것도 많지만 그 반대도 많다. 서로가 달라 갈등을 겪기도 한다. 학생들끼리도 그렇지만 교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너무 가까이 있어 여유가 없어질 때도 있다. 학생들에 비해 몸도 마음도 가볍지 않은 교사들은 간간이 생기는 갈등을 웬만하면 그냥 넘긴다. 순간을 넘기면 별것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학생처럼 쿨하게 화해하고 툭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학생 따라 하다가 가랑이 찢어질 뻔한 적이 몇 번 있고 난 뒤에는 약간의 답답함이 있는 삶이 교사에게는 더 맞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다고 모두 도를 닦는 스님들도 아니잖는가. 우리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 끝에 일주일에 한 번 교사 회의를 열어 토론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매주 각자가 느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앞으로 해야 할 크고 작은 일들의 틀을 정하는 시간이다. 회의를 규칙적으로 하는 것은 작은 집단을 운영하는데 효과적이다. 회의를 하면서 교사 간에 의사소통이 제법 잘 된다고 생각한다. 공식적으로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므로 말을 하다 보면 속에 있는 생각도 나오게 된다.
네 명 모두 서로 다른 교육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견을 조율하기 쉽지 않다. 가끔 감정적인 말이 오고 가기도 한다. 가고자 선택한 길이지만 쉽지 않은 길은 분명하다. 그래서 토론은 더더욱 필수다. 토론이 길어질 수는 있으나 다들 결론이 나면 누구의 의견인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토론 과정에서 학생에게 적절한 교육이 이뤄지고자 노력하는 서로의 마음을 읽기 때문이다. 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마음은 똑같다는 것을 매번 되새기려고 한다.
오늘 철학 시간이었다. 우리는 조별로 모여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해야 할 행동, 학생이 교사에게 해야 할 행동에 대한 토론을 했다. 교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순서였다. 학생이 생각하는 교사의 모습이 궁금해 나는 말하지 않고 듣기만 하기로 했다. 조별 활동은 수가 적어 학생들이 좀 더 솔직하게 답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의 솔직한 의견이 귀하게 느껴져 열심히 노트에 받아 적고 있었다.
샘들 두 분이 언성이 높아지셔서 다투시는 것 같았어요. 관계가 나빠지는 것이 우리 탓인 것 같아 마음이 쓰였어요.
쓰고 있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포비를 쳐다봤다. 교사들 간에 몇 차례 감정적인 대화가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포비가 어떤 불안함을 느꼈을지 바로 이해가 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순간 당황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설명하려다 그만두었다. 다투는 것 아니고 토론하는 거라고 말하려다 그것도 그만두었다. 이유 불문하고 그냥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지금 하는 말을 잊지 않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포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포비도 나도 서로를 보며 한번 씨익 웃었다. 머릿속 정리할 시간을 위해 다시 필기를 시작했다.
퇴근 후 포비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오은영 박사님이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다투는 영상을 보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예전에 봤던 영상을 찾았다. 자녀가 어떤 심리를 가지게 되는지를 알려주셨다. 여러 가지 감정 중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불안함이라고 했다. 영상 속 자녀도 '나 때문에 싸우는 것 아닐까', '나를 버리면 어쩌지', '나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하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모의 다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 불안해하던 아이의 표정이 오늘 학생의 것과 닮아 있었다. 학교는 가정이 아니고 교사는 부모가 아니지만 학생을 대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래서 마음이 아렸다.
학생 앞에서 교사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교사 회의 때 좀 더 이야기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교사 간에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학생들 앞에서 부딪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육에 대한 큰 틀도 거의 비슷하다. 회의를 통해 미리 마음을 맞추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판단해야 하는 순간에는 교사마다 취하는 선택이 다를 수밖에 없어 작은 오해들이 생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런 차이들을 없애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이런 순간이 되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교사 4명은 천생연분처럼 합이 딱 맞지 않다. 다 달라 한 발짝씩 함께 내딛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서로의 마음은 알 거라 믿는다. 그 믿음으로 5년을 함께 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동료 교사에게 가진 믿음을 학생들에게도 주고 싶다. 학생이 교사들의 부족함으로 불안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사실 동료 교사와의 관계는 교사들 간의 일이므로 학생들과 연결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학생과 의논할 일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학생이 좀 더 생각해보라고 화두를 던져 준 하루였다. 학교 안에는 정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구나. 학생의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해 본다. 작은 공간에서 학생뿐 아니라 동료 교사와 좀 더 잘 지내기 위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도 생각해 본다.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쉽지 않은 길이 맞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내가 가고 싶은 길도 맞다. 오늘도 학생에게 하나를 배운다. 교사는 학생에게 배우는 사람이 맞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