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빠는 나빠?

멘탈 관리

by 마나

금사빠 ;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


바로 나다. '금사빠'라고 적고 몇 번을 되짚어본다.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은 마음이 보호막처럼 계속 올라온다. 망설이다 정정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정한다. '금사빠'는 정말로 드러내기에 부끄러운 모습일까. 내 모습에서 지울 수 없는 이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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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내가 사랑했던 것들, 다시 사랑할 것들.


나는 호기심이 많았다. 뭐든 일단 시작하고 봤다.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했다. 어떤 결과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금세 사랑에 빠지는 매 순간이 행복했다. 그런데 왜 부끄러울까. 분명 행복했었는데 이유가 뭘까. 어릴 땐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내 선택이 가볍게 느껴졌던 것 같다. 시작만큼 매듭이 지어지진 않아 내가 허풍쟁이 같았다. 노력했지만 살아온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시작과 끝의 온도 차이가 부끄러웠다.


그때쯤 해리포터를 만났다. 첫 시작은 영어 공부를 위해서였다. 두말하지 않고 원서를 사서 의욕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신이 났다. 잘하고 싶어 모르는 단어를 하나도 빠짐없이 찾고 해석했다. 그러기를 한 달쯤 지났을까. 책 십 분의 일 정도를 읽을 때부터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하루 이틀 미루고 나니 어느 순간 책을 들지도 않았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슬쩍 책을 책꽂이에 꽂았다.


몇 년 후 우연히 책을 발견했다. 나름 열심히 적어 놓은 내 글씨가 귀여웠다. 잠시 몇 쪽을 서서 읽었다.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영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책 읽기가 한결 편안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해리포터와 친해지는 느낌이었다.


해리포터 책은 꽤 굵은 책 7권으로 되어 있지만 한 작가가 쓴 책이다. 비슷한 단어가 중복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의 문체에 익숙해졌다. 덕분에 읽는데 속도가 붙었다. 게다가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흥미진진했다. 해리포터 대부가 돌아가시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믿을 수 없어 해리포터와 같이 울었다. 도서관 귀퉁이에서, 다들 공부하고 있는 그곳에서, 다 큰 어른이 해리포터가 불쌍해 울었다. 공부가 아니라 독서였다.


나는 7권을 모두 읽었다. 해리포터를 읽은 후 '금사빠'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이런 내 모습은 진짜 부끄러운 부분인가. 시작을 잘하는 것은 끝을 잘 맺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는가. 어떤 일을 매듭짓지 못하면 찝찝하다. 여러 가지 이유를 찾고 반성을 한다.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마무리 못한 그 일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찝찝함은 원동력이 된다. 다시 시작하는 힘에 밑줄을 그어 본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강한 힘이 느껴진다. 좋아하는 일의 본질을 생각한 후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파악하면 어떤 일이든 시작도 끝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끝맺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시작했다가 그만두더라도 곧잘 다시 시작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끝을 맺는 것에 대한 환상도 버리기로 했다. 처음부터 끝을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 과정을 사랑해야 진정한 끝을 볼 수 있다. 시작과 끝, 이것은 어떤 경험 위에 있는 점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각 순간의 의미만 제대로 안다면 시작과 끝은 크게 집착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위에 적은 목록을 다시 살펴본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각각의 단어 속에 나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실패한 목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다시 시작할 순간을 기대한다. 하나씩 되짚어보고 정리를 해보자. 금사빠의 숨은 의미를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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