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다. 교사가 학생보다 더 기다린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품은 시간. 유난히 근무하기 힘들었던 지난 학기가 끝나고 정말로 여름방학이 왔다. 학교에서는 방학 전에 교사와 학생 12명이 모여 방학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브런치 작가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함께 여러 가지 쓰기 수업을 받으며 글에 재미를 붙인 지 4년이 지났다. 이번 방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혼자만의 글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쓰기로 했다. 글쓰기는 엉덩이 싸움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매일 꾸준히 쓰면 늘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특별한 재능이나 준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실히 쓰는 것이 비법이라 했다. 요령 없이 열심히 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 요즘 세상과 맞지 않는 융통성 없는 내 성실함이 글쓰기를 통해 인정받을 수 있길 바랐다.
"매일 글을 쓰고 싶어요." 나는 속에 든 많은 말을 뒤로하고 짧게 계획을 이야기했다.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내 글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더 몰랐다. 그건 사실 아직도 잘 모른다. 안개 같은 상황 속에서 내 마음을 다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짧게나마 내 계획을 말하는 것으로 포기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답답하면서도 마음이 설레었다.
며칠 후 새초롬한 로고가 핸드폰에 떴다. 나는 브런치의 얇은 필기체 로고를 좋아한다. 얇디얇은 초승달같이 새첩다. 감은 왔지만 내용을 보기 전이라 손이 떨렸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순간 멍해졌다. 기쁠 때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재주다. 나는 그런 재주는 없다. 어찌할 줄 몰라 좋다 소리만 반복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진짜 좋았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매일 글을 올렸다. 학기 중에는 어렵겠지만 방학 동안에는 매일 써보자는 나만의 약속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 아직 처음이라 온종일 브런치 생각으로 가득하다. 어떤 글을 어떻게 쓸지 고민한다. 쓰고 지우기를 무한 반복한다. 다른 사람의 글도 읽어본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글 속에 진심이 느껴진다. 굳이 꾸미지 않아도 글만으로 마음이 전달되는 이곳에 내 글이 들어있다는 것이 참 좋다. SNS를 무서워하는 촌놈 눈에는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브런치가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나는 왜 브런치를 하고 싶어 하는 걸까. 글을 쓰고 다듬으면서 계속 생각해본다. 혼자 글 쓰는 것과 이곳에 글을 올리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 신나서 달려가고 있지만 일주일이 지났으니 잠시 멈추고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을 앞뒤 쟤지 않고 계속하고 싶은 열정은 어루고 달래며 가야한다는 것을 오랜 금사빠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으니 꼬리질문이 생긴다.
제대로 대화하며 살고 싶어 글을 쓰는 것 같다. 스스로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고 살아온 대가로 나는 나를 많이 미워했었다. 그 시간이 너무 힘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와의 대화였다. 나는 천천히 조금씩 변해간다. 여전히 무너지는 순간이 있지만 나를 돌볼 힘이 커지는 것이 느껴진다.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이제 나는 내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것이 기쁘다.
남들과도 제대로 대화하며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브런치를 한다. 글은 내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하고 싶은 말 사이에 잘 끼는 군더더기를 제거할 여유가 있다. 순간적으로 답하고 반응을 볼 수 있는 말보다 느리지만 오히려 느려서 분명해진다. 순발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글쓰기의 느린 속도가 내게는 딱이다. 느리게 사람들에게 대화신청을 하는 중이다. 나답게 사람들과 대화하며 살 수 있을까. 브런치를 하며 계속 생각해봐야겠다.
재미가 있어 달려가고 있지만 24시간 몰두는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소리도 들린다. 맞는 소리다. 브런치 글을 쓴다고 내 일기를 쓰지 않은지 일주일이 지났다. 화장실도 더럽고 먹거리도 부실하다. 일상이 뒤죽박죽이다. 좋다고 무조건 달려갈 나이는 지나서 그런가 무너진 일상이 신경이 쓰인다. 브런치 속에 내 일상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에 브런치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당연히 매일 하는 일 중 하나로 쓰기가 들어오길 바란다.
요즘 너무 행복하다.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좋은 내게 하고 싶은 말 실컷 하라고 브런치가 백지를 내어 준다. 글을 쓰면서 나는 또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냥 그대로 적을 것이다. 속에 있는 것 꺼내며 가볍고 단순하게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그래, 그렇게 살자. 일단 씻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