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의 민낯

by 마나

며칠 전 친구가 일하는 것이 힘들어 내게 전화를 했다. 주변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 뒷감당을 혼자서 하고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화 목소리를 듣지 마자 감정이 전달되었다. 나는 상황을 다 알기도 전에 이미 이야기 속 사람을 욕했다. 아직 이틀은 더 고생해야 한다는 말에 나까지 답답해졌고 이야기가 거의 끝날 때쯤에는 친구가 받는 부당한 대우에 나도 화를 내고 있었다. 대화가 점점 거꾸로 흘러갔다. 친구는 나를 달래며 상황을 다시 설명했고 나는 그것을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한 시간 넘게 한 통화가 겨우 끝났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있었다. '나와 대화를 하면서 친구는 마음이 좀 가벼워졌을까' 기분 좋게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되려 나를 달래는 친구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다시 맴돌았다. 분명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둘 다 무거워진 꼴이었다. 열심히 경청했고 공감을 했는데 왜 이렇게 찝찝한 걸까.


며칠 뒤 친구가 말했다. "나는 그냥 넋두리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조심스럽게 꺼낸 한 마디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내 오지랖이 나왔구나.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랍시고 단단하게 포장된 어설픈 오지랖이 또 나왔구나. 그러지 않으려고 오랜 시간 참 애를 많이 썼었는데 아직 제자리였다. 나는 진짜 도돌이표 속에 있는 걸까. 방법은 서툴지만 아끼는 마음만은 알아주면 안 되나. 미안함과 허탈함 그리고 억울함이 뒤섞여 내 속에서 휘몰아쳤다.


실제로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도 없었다. 친구가 원했던 것도 이런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내 마음이 혼자서 공허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멈추고 다시 생각했다.


내 오지랖은 어떤 사람과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 보통 발동한다. 가까운 관계일 때 내 일과 네 일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모호함을 상대를 아낀다는 마음으로 포장했다. 현명하지 못함을 사랑이고 우정이라 여겼다. 그것이 내 오지랖의 민낯이었다. 억울할 것도 힘 빠질 일도 아니었다.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경청과 공감이 맞았다. 나는 그렇게는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뒤에 감정이입을 해서 친구의 일을 내 일로 여기는 마음은 모두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군더더기였다. 이론으로는 알고 있는 '거리두기'를 현실에서는 써먹지 못하는 모습이 지금 딱 내 수준이었다. 인정하고 나니 허무하지만 길은 보였다.


넋두리를 잘 듣기 위해서는 상대를 믿어주는 마음을 가지면 되겠다 싶다. 친구의 마음도 나와 똑같은 힘이 있을 것이다. 편안하게 말할 수 있도록, 힘든 사람이 되려 나를 다시 이해시키려 하지 않도록 조금은 거리를 둬보자. 친구와 나 사이의 거리만큼 친구의 오지랖은 친구를 감싸줄 것이라 믿는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아마도 나는 도돌이표 안에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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