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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Dec 24. 2022

사람들과 있으면 피곤해요

집단 상담

연말이다. 12달 동안 몸과 마음에 쌓인 짐들이 온몸에 가득 차 실제로 몸무게도 느는 묵직한 겨울이다. 요즘 아침열기 시간에는 서로의 몸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고민상담 시간을 가지고 있다. 각자 주어진 쪽지에 현재 하고 있는 고민을 적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하나씩 골라서 전체가 그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어떻게 할까요', '선택한 것에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아요' 등의 고민이 있었다. 학생들의 질문이 좋아 아침열기가 길어졌다. 일과 시간을 조금 미루더라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내 고민이 뽑혔다. 나도 진지하게 내 고민을 말했다.


"저는 사람의 감정에 예민해요. 상대가 굳이 기분을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럼 저는 상황에 맞춰 행동을 하지요. 학교에는 사람이 많아 사람 수만큼 자극이 들어와요. 그게 좀 벅찬 것 같아요. 나이를 먹으니 체력이 달려요. 그래서 점점 더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요. 어떻게 하면 제가 피로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요."


속에 있는 고민을 공식적으로 말한다는 건 긴장되는 일이었다. 그 고민에 내가 진심이라 더 그랬다. 그래도 용기 낼 수 있었던 건 함께 보낸 1년의 세월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 질문을 쓸데없는 고민으로 여기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건 내 질문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에 대한 믿음이었다. 최근에 내가 했던 예민한 행동들과 미운 부분까지도 보듬어주는 사람들에게 나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사람들이 고민에 대한 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같은 에니어그램 2번 유형으로 마나의 고민에 공감을 해요. 남을 도와주려고 에너지를 많이 쓰지요. 그러다 보면 속에 쌓이는 것이 많아 화로 표현되기도 해요. 그 뒤의 상황은 불편하고요. 고민인 것이 이해는 되지만 사실 그때 마나의 행동이 저는 이해가 됐어요. 제가 마나를 이해하듯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요. 이런 모습도 내 모습이라고요. 저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긴 해요."


"과제 분리를 할 필요가 있을 듯해요. 마나가 좋아하는 <<미움받을 용기>>에 적혀 있듯이 도움을 주는 것까지는 내 과제, 그 도움을 어떻게 받을지는 상대의 과제죠. 도움의 결과까지 책임지려 한다는 건 상대의 과제에 마나가 개입하는 거예요. 결과는 상황이나, 시간, 그리고 상대의 성향에 따라 달라져요. 도움을 준 후 찝찝한 상황이 생겼다면 바로 화를 내거나 사과를 하지 말고 그 찝찝한 시간을 좀 견뎌보세요. 그 시간 동안 상대도 생각을 할 수 있게요. 견디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요."


"마나가 화를 내는 것은 진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교육적으로 필요해서 그런 거잖아요. 찝찝한 상황을 좀 더 견딜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사과하는 것은 마나가 낸 화를 스스로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어요."


"마나가 내 일에 더 마음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오히려 말을 안 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힘들어할까 봐요. 좀 더 편안하게 지내시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도 편안해지죠, 학생들의 문제도 스스로 찾아올 때까지 좀 더 기다려보세요. 마나가 해결해주는 때가 종종 있어요. 학생들의 몫이에요. 그냥 남겨두셔도 될 듯해요."


"마나는 생각하며 배우는 스타일이 아니라 행동하며 배우는 스타일이에요. 생각부터 하면 조심스러워지고 마나다움이 나오지 않아요. 가끔 퇴근 시간에 제일 빨리 나가시죠? 그때마다 오늘 힘들어서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어 하는 느낌이 들어요. 하루 종일 힘이 들었다면 티를 내세요. 괜찮아요."


"예전의 마나와 요즘 마나가 조금 달라요. 위축되고 조심하는 느낌이에요. 그냥 막 행동하셔도 될 듯해요. 그것이 더 편해요. 조심한다는 것이 느껴지면 저도 더 조심스럽고 불편해요."


"저는 마나가 뭐가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똑같아요. 프로젝트 점검할 때 정색하신 것은 무서웠는데 그래도 그게 맞았던 것 같아요. 프로젝트가 약간 느슨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니까요. 근데 무섭기는 했어요."


거의 40분 정도 시간이 지났다. 내 고민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오고 갔다. 집단 상담을 받은 느낌이었다. 상담자 9명에 내담자 1명. 9명의 솔직한 말이 모여 내가 나를 직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들은 내용을 정리해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속 교만이 보였다. 마치 나만이 세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듯이 사방팔방을 돌아다니고 있는 꼴이었다. 그래, 모든 사람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은 시원섭섭한 말이지만 곧 섭섭함은 사라지고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 하며 피로감이 되레 풀렸다. 부끄럽지만 내 피로의 원인은 사람들이 아니라 나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마웠다. 고마움이 커져 미안함이 되고 미안함 커져 결국 다시 고마움으로 남았다. 오늘을 기록하며 기억해야 할 말을 다시 되뇌어 본다. 언젠가 혼자 있어도 또 함께 있어도 편안한 나를 꿈꾼다.

작가의 이전글 조지 오웰 <<동물농장>>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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