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영웅이고, 누가 죄인인가.
소설 <<하얼빈>>을 읽고 영화 <<영웅>>을 보았다. 누가 영웅이고, 누가 죄인이었을까. 이토 히로부미가 죽고 열린 장례식은 대한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거하게 진행되었다. 이토가 누운 관에 붙어 있는 스무 개가 넘는 훈장들은 화려한 장례식에 걸맞았다. 그의 죽음이 안타까워 길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 시대의 영웅이 사망한 것이 맞았다. 이토가 죽은 날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 사형이 집행된 날은 1910년 3월 26일이었다. 안중근이 죽은 후 일본은 시신을 가족들에게 보내주지 않고 뤼순 감옥 안에 그대로 묻었다. 아직까지도 찾을 수 없는 안중근의 유해를 보면 그는 제대로 된 법정 절차를 받을 필요도 없이 5개월 만에 바로 사형이 집행된 시대의 죄인이 틀림없었다.
분명 한 명은 영웅이고 한 명은 죄인이었지만 그들이 주장했던 것은 똑같이 동양의 평화였다. 이토는 서양에 비해 발전이 느린 동아시아 국가를 일본이 책임지고 발전시키겠다는 명목 하에 조선부터 시작해서 중국, 러시아까지 침략을 시도했다. 모든 국가를 일본 식민지로 만들어 얻으려는 평화였다. 안중근은 거사 후 일본인 검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이 말하는 평화를 누가 원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안중근은 각 나라의 자주독립만이 동양의 평화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일본은 상대국의 의향도 묻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평화를 위해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대한제국 의병장 중장 안중근이 초대 한국통감을 역임한 이토를 죽인 이유였다.
김훈의 소설 <<하얼빈>>에서는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수를 최소화하고 안중근과 이토의 이동 경로를 따라 이야기를 전개했다. 그나마 초반에는 두 명을 둘러싼 주변인들이 있었으나 그들이 하얼빈에 다가올수록 세상에 두 명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소설은 그들의 마음에만 집중했다. 상황과 심리를 세심하게 보여주는 책을 읽으며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도 느꼈다. 하지만 영화 <<영웅>>에서는 안중근이 거사를 진행하기까지 그 뒤에 숨어 있는 여러 명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제목이 <<영웅>>인 이유도 잊힐 수도 있는 영웅들을 기억하자는 뜻은 아닐까. 아들이 죽을 수도 있음을 알지만 떠나는 자식을 말없이 배웅하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부터 안중근과 함께 거사를 도모한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까지 역사 속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안중근의 거사가 혼자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반면, 김훈의 소설 제목이 <<하얼빈>>인 이유는 복잡한 안중근의 삶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단순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나는 해석했다. 단순한 책 제목은 안중근이 동양의 평화를 위해 앞뒤 재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책을 읽으며 안중근의 일편단심을 느꼈다. 어떻게 마음이 하나일 수가 있을까. 진짜 단순했을까. 정말로 평범하지 않고 남다른 사람이었을까. 속에서 느껴지는 경외감은 울림을 주었지만 내가 갈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듯했다. 말 그대로 책이고 소설이라 느껴졌다. 사실을 기반으로 했으나 사실이 아닌 소설. 현실과 소설 사이에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알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영화에는 떠나기 위해 짐을 챙기는 안중근이 야속해, 아내 김아려가 "나라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었길래 목숨까지 바치려는 거냐!"며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 앞에서는 한없이 미안한 죄인이었다. 자신의 신념대로 살기는 했지만 활동을 하다가 힘들 땐 안중근도 가끔 아내가 한 말을 똑같이 중얼거렸다. 힘이 들지 않아 단순한 마음으로 한 길을 걸은 것이 아니었다. 두려웠고 힘들었지만 했던 일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자 안중근의 한결같음이 더 커 보였다. 영웅이란 두려움을 모르는 자가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행동하는 자였다. 책과 영화를 함께 본 것이 참 좋았다. 책은 상상력으로, 영화는 현실적으로 안중근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웅>>을 보는데 배우들의 얼굴 근육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그들 사이에도 사랑이 있고 우정이 있었다. 두려움과 살고 싶은 마음도 표정에 드러났다. 안중근을 존경한 일본인 간수가 동양의 평화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안중근은 "나는 두 손을 모아 총을 쏘아야 했지만, 나의 아이들은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며 사는 삶을 살길 원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동양의 평화다."라고 답했다.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지키려 노력했던 안중근과 아들의 신념을 지켜주고 싶어 수의를 지어 보낸 조마리아 여사의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안중근은 어머니의 뜻에 힘입어 끝까지 스스로에게 떳떳한 삶을 살았다. 실제로 뤼순 감옥에 있는 일본인 간수들이 안중근을 존경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본 안중근은 죄인이 아니라 영웅이었다.
책과 영화를 봤는데도 안중근에 대한 갈증이 해결이 안 된다.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1907년 집을 나서서 2년 동안 살았던 이야기, 어릴 적 안응칠 이야기, 천주교와의 인연, 사망 후 가족들의 이야기 등이 궁금하다. 안중근이 마지막으로 쓴 <<안응칠 역사>>라는 책도 읽어봐야겠다. 책과 영화는 끝났지만 안중근은 신념이란 가치를 담아 내 삶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건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과정이다. 안중근을 통해 내 안에 담을 신념이 있을지 찾아봐야겠다. 안중근은 나에게도 영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