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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an 05. 2023

밥 잘 챙겨 먹고 삽시다

밥심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쌀을 씻었다. 검은콩을 쌀보다 더 많이 넣었더니 보기만 봐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검은 빛깔이 만족스러웠다. 압력밥솥에 씻은 쌀과 콩을 넣고 전원을 눌렀다. 쌀 반 콩 반이 익어가며 뿜어내는 고소한 냄새 덕분에 저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냉장고에 반찬이 뭐가 있는지 생각해 봤다. 남들은 자다가 일어나면 입맛이 없다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아침부터 입맛이 도는 것을 보니 잠도 푹 자고 기분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오늘은 야근을 해야 해서 아침을 많이 먹기로 했다. 야근과 아침은 크게 상관없어 보이지만 아침부터 꿈틀거리는 식욕이 민망해 야근에 이유를 갖다 붙였다. 


아침 7시가 넘었는데 밖은 아직 어두웠다. 혼자 무심히 밖을 보고 있는데 압력밥솥에서 증기 빠져나가는 소리가 났다. 집안 전체에 밥 냄새가 가득 찼다. 다시 침을 삼켰다. 그제야 나도 일어나서 어슬렁거리며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며 오늘 하루 있을 일도 미리 생각해 봤다. 바쁜 시기에는 체력이 곧 능력이다. 검은콩은 검은 머리가 나게 도와준다고 했으니 웬만한 스트레스에도 머리카락이 끄떡없을 정도로 먹어야겠다 싶었다. 많이 먹어야 할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


전기밥솥을 열어 밥이 잘 되었는지 보았다. 처음에는 분명 검은색이었는데 익고 난 후 콩은 자주빛이 났다. 하나를 집어 먹어보았다. 갓 익힌 콩의 고소함은 설명이 필요 없는 맛이었다. 밥을 퍼서 식탁에 놓았다. 여러 가지 반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콩밥 하나만으로도 아침 식사가 충분할 듯했다. 거기에 몇 가지 반찬이 더해지니 내 눈에는 진수성찬이었다. 아침부터 눈, 코, 입이 제각각 움직이며 콩밥을 즐기기 시작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밥이 입에 들어가니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생각이 없어지고 밥만 보였다. 일부러 밥 한 톨, 콩 한 개씩을 톡톡 터뜨려가며 밥에 집중했다. 입안에는 콩밥이 가득했고 아침은 밥과 나로 충분했다. 먹는 속도를 좀 더 늦췄다. 식욕에만 의지해서 생각 없이 먹는 시간이 좋았다. 생각을 한다는 건 이미 내가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친구는 말했었다. 온전히 현재에 머무는 시간.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오늘 나에겐 아침 식사 시간이 그랬다.


밥을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하다. 기분 좋게 볼록해진 배를 두드리며 압력밥솥을 정리했다. 남은 밥에서 아직도 김이 폴폴 났다. 1인분씩 나눠 용기에 담고 냉동실에 넣었다. 갓 지은 밥맛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햇반처럼 필요할 때 하나씩 꺼내 먹을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이다. 밥솥은 할 일이 끝났는데도 아직 온몸이 뜨거웠다. 손을 떼지 않고 그 온기를 좀 더 느꼈다. 새삼 고마움이 밀려왔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한 번이라도 이렇게 뜨거워졌던 적이 있었던가. 나의 든든한 하루가 그냥 오는 것이 아님을 조금은 알겠다. 밥심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좀 더 든든해진 나를 기대해본다.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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