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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an 13. 2023

만성피로에 맞서는 무능력

교사의 방학

달리다가 갑자기 멈췄다. 몸에 남아 있는 속도 때문에 앞으로 더 튕겨나갔다. 몸이 기우뚱거리고 숨은 차올랐다. 좀 더 달렸어야 했나. 더 달릴 힘도 없으면서 제대로 멈추지도 못하는 몸이 민망해 괜한 허풍을 떨었다. 달리는 것도 멈추는 것도 힘들긴 매한가지인가 보다. 숨을 고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방학이다. 갑자기 찾아온 텅 빈 시간이다. 몸에 남은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 더 달려가는 나를 본다. 그렇게도 기다렸던 빈 공간인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어찌하지 못해 안절부절이다. 두리번거리는 고갯짓에 피로감만 더 쌓인다. 뭘 해야 할 것만 같은 불안함과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몸이 부딪혀 괜히 예민하다. 


내가 생각해도 답답한 인간이다. 일할 때 일하면 되고 쉴 때 쉬면 되는 것을, 나는 거꾸로 되짚어 일할 땐 쉴 생각하고 쉴 땐 일할 생각을 하니 말이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움직임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대가이기도 하다. 피곤하지만 않으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피곤해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 짜증도 난다. 이럴 때 불쑥 나이 탓을 하게 되지만 그게 딱 떨어지는 답도 아닌 것 같다.


귤을 먹으며 내 몸을 둘러싼 피곤함을 껍질 벗기듯 깔 수도 있을 듯한 상상을 한다. 동굴 속에 들어가 마늘만 먹고 100일 동안 살면 다시 힘센 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떻게 쉬는 것이 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마음이 붕 떠있다. 쉬고 싶은데 쉬어지지가 않아 바늘 들고 붕 뜬 마음을 터뜨리고 싶다. 몸도 마음도 피곤한 게 틀림없다. 


부모님 집에 와서 며칠 지내고 있다. 내가 살던 집인데도 방학 때마다 집에 다시 적응하기까지는 며칠이 걸린다. 피곤해하는 나를 보고 가족들은 걱정을 하고 나는 그런 가족들의 마음을 걱정한다. 내 피로가 가족에게 전염되는 듯해 신경이 쓰인다. 좋은 딸 되기는 일찌감치 텄다. 이런저런 것에 마음 쓰지 않으면 좋겠다 싶어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오늘은 기어이 엄마와 조금 투닥거렸다. 별일 아닌데 금세 사그라드는 마음인데 그냥 모른 척할걸. 이럴 땐 또 내 피곤함을 이용한다. 한없이 이기적인 딸이다. 부모는 자식을 이길 수 없다. 부모도 자식도 그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피곤한 것을 부모에게 보여주기 싫다. 걱정하는 모습을 보기도 싫다. 그런 부모의 모습 속에 내 이기심과 모자람이 그대로 보이는 까닭이다.


만성피로는 제대로 삶을 살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것은 뿌리가 튼튼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평생 일할 수도 없고 평생 일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일할 때는 열심히 하고 쉴 때가 되면 편히 쉬고 싶다. 그러니 일단 내 몸을 어찌해보자. 내일은 엄마에게 좀 더 생기발랄한 딸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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