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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an 21. 2023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읽고

내려놓기

비욘 나타코 린데블라드의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읽었다. 스님이었던 저자가 탁발을 하기 위해 길거리에 서 있을 때 지나가던 백인이 "할 짓이 없어 빌어먹냐!"며 소리를 쳤다. 저자는 그 순간 해방감을 느꼈다.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썼던 지난날의 자신과 달리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을 보며 자신이 가고 있는 수행의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책과 책 사이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같이 시절인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걸까. 저자의 모습에서 <미움받을 용기>를 떠올렸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즉 인정욕구를 버리고 자신에게 집중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마치 짜고 이야기하듯 두 책이 나란히 내게 말하고 있었다.


저자는 스님으로 17년을 살았다. 처음 명상을 시작했을 때였다. 고요한 내면을 찾기 위해 애를 썼지만 끝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명상을 방해했다. 주먹을 꼭 쥐고 떠오르는 잡생각을 튕겨 보았지만 힘을 주면 줄수록 더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인해전술 같았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절을 몇 차례나 뛰쳐나갔다. 잡생각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 명상은 이래야 한다는 저자만의 잣대는 생각의 틀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 명상은 지루했고 점점 더 힘들어졌다. 허공에 대고 팔만 힘껏 허우적거리는 꼴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남은 힘이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쥐고 있던 주먹이 자동으로 펴졌다. 군더더기 생각은 작전에 성공한 듯 머릿속을 순식간에 정복했다. 더 이상 방어할 힘도 없어 집착했던 생각을 그대로 바라보았다. 영원히 머릿속을 거주할 듯하던 적들은 또다시 순식간에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생각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모든 생각에 맞설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 희한한 생각이 또 떠올랐군,  괜찮아. 어차피 난 그 생각을 놓아버릴 거니까' 조금씩 깊어지는 명상을 통해 자신이 곧 생각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생각을 책임질 필요 없이 핵심 생각만 남기고 나머지는 내려놓으면 되었다. 주변의 소리가 사라지자 그제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내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불륜을 저지른 적이 있습니까?"
"내 몸으로는 저지르지 않았지만 상상 속에서는 수차례 저질렀죠."

1970년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지미 카터 후보가 한 인터뷰이다. 이 대답으로 후보의 지지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가 불륜 생각을 수차례 했다는 고백 아닌 고백은 그를 믿지 못할 사람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박빙 선거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선거에서 후보자가 한 말이었다. 지지도의 변화로만 본다면 결정적 실언이 틀림없었다.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 그의 말은 정말 실수였을까. 


지지를 철회했던 수많은 지지자들과는 달리 저자는 카터의 내면을 읽었다. 그의 대답은 더 이상 솔직할 수 없는 답이라고 했다. 불륜의 충동을 느꼈던 카터와 실제로 행동하지 않은 카터를 분리하였다. 인간의 충동은 본능이라 충동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끊임없이 떠오르는 감정이나 생각을 얼마나 잘 통제하고 내려놓을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카터는 충동을 느꼈으나 그것이 자신을 매몰시키지 않고 그저 흘러가 버리도록 애를 썼다. 인터뷰에서는 머릿속 흐름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했다. 대답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었다. 믿지 못할 사람이 아니라 미움받을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다른 동작이 불가능해지더라도 다시는 너에게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너에게 귀를 기울일게.  
네가 줄 수 있고 또 주고 싶어 하는 것보다 더 많이 달라고 요구하지 않을 거야.
지금까진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도 집중했다. 루게릭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도 예상치 못한 불운에 한탄하는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애를 썼다. 오래된 친구처럼 아픈 몸을 보듬었다. 몸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달라고 요구하지 않겠다는 저자의 말에 잠시 읽기를 멈췄다. 그가 수행을 통해 배운 내려놓기를 잘 적용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의 삶이 어느 때보다 강해 보였다. 아픈 그에게 내가 괜찮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가 나에게 피로하면 쉬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는 듯했다. 


숨을 거둘 날이 오면, 그날이 언제든 저더러 싸우라 하지 말아 주세요.
오히려 제가 다 내려놓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주길 바랍니다.
제 곁을 지키며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세요.
당신의 열린 손바닥을 보여주세요.


루게릭 병은 절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삶이었다. 그는 삶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고 그것을 기록했으며 책으로 만들어져 다시 나에게로 왔다. 제대로 된 삶은 그 자체로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뭐든 괜찮다고 말해주고 믿어주는 오래된 친구 같은 책이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저자는 자신의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나는 책을 읽으며 슬픔보다는 따뜻한 용기를 느꼈다. 이제 더 이상 가여운 몸이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에 죽음을 통해 느꼈을 안도감을 상상했다. 그의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자유로웠다고 생각한다. 잠시 주먹에 쥔 힘을 풀고 손바닥을 내밀어 보았다. 작은 에너지가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가벼워지는 손의 무게가 고맙고 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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