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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Feb 01. 2023

청소하기 좋은 날

한겨울 봄

조용한 공간에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오전 내내 청소를 했다. 그다지 큰 집도 아닌데 무슨 짐이 그렇게나 많은지 버릴 것이 두 손 가득이다. 두 번 움직이기 싫어 내 몸에 걸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활용하여 쓰레기를 이고 졌다. 한 번만에 쓰레기를 버렸다는 뿌듯함과 깨끗하게 청소된 집 덕분에 마음이 가볍다. 가만히 앉아 집을 둘러본다. 옆에 있는 오르골을 돌려 기분도 내본다. 오랜만에 겨울 내내 무거웠던 마음에서 벗어난 듯하다. 실제로 그렇진 않겠지만 내 눈에는 집이 번쩍번쩍 빛이 난다. 이렇게 깨끗한 곳을 겨울이랍시고 동굴처럼 해놓고 살고 있었구나 싶어 새삼 미안하다.



청소를 하려고 계획을 잡았던 건 아니었다. 아침에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유난히 몸도 마음도 무거운 겨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계절에 상관없이 부지런히 뜨고 지는 해를 보니 햇살 앞에 알몸을 보인 듯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청소를 시작했다. 서랍 속 묵은 짐들을 다 꺼냈다. 버릴 것, 다른 사람 줄 것, 보관할 것으로 분류를 했다. 가구 배치도 새로 해 보고 구석에 묵은 먼지도 털어냈다. 작은 집 구석구석에 숨어있었던 짐들이 먼지 가득 품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바쁘다는 핑계로 살피지 않는 것들이 이것들 외에도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이 있을까. 


청소는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작업이다. 집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3시간을 움직여야 했다. 나는 얼마나 더 버릴 수 있을까. 버려야 하는데 움켜쥐고 버리지 않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매일 하나씩 버릴 것. 법정 스님이 하신 말씀이다. 이번 겨울이 무거운 이유는 버려야 할 것은 쌓고 쌓아야 할 것은 버려서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몸과 마음이 이렇게도 무거웠던 것일까. 욕심을 마음에 품고 무겁게 살아가는 내 모습이 가벼워진 집과 대비가 됐다. 잘 청소된 집에 내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쓰레기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아직 겨울이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툼했다. 내 옷도 만만찮게 무겁고 두꺼웠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겨울의 오늘인데 청소를 하고 나서인지 약간의 봄내음이 나는 듯도 했다. 사실은 차가운 바람 냄새겠지만 어차피 우리 모두는 제각각의 착각 속에 살고 있잖는가. 내가 느끼는 약간의 봄기운을 의심하지 말자 싶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올라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몸도 마음도 다 털어내고 가벼운 내 집에 맞는 집주인이 되고 싶었다.


세탁기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계란말이를 했다. 계란에 양파와 부추, 버섯을 넣고 김까지 같이 말아서 제법 영양도 맛도 갖춘 반찬이 되었다. 깨끗한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밥을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이곳이 내 공간이구나. 내 공간이 곧 나와 같구나. 청소만 했을 뿐인데 집도 나도 벌써 봄이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고 봄은 산뜻해야 제 맛이다. 2월로 들어선 오늘, 겨울과 봄은 밀고 당기며 줄다리기를 하고 나는 어느 계절이라도 상관없다며 여유를 부려본다. 군더더기를 버린 공간은 여유만만이다. 


<오르골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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