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었다. 크게 기대하고 읽은 것도 아니었고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생각도 아니었는데 읽다 보니 속도가 붙었고 다 읽어 버렸다.
공허한 인생이었다. 살인자는 70년을 살면서 인생에 아무런 의미도 담지 않았다. 담을 수 없는 건지 담지 않은 건지 나는 모른다. 그저 미세먼지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읽는 내 눈에도 어떤 감정도 담지 않았다. 공허했다.
남의 슬픔을 잘 읽지 못하는 자였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 이 사람은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잡히지 않고 칠십 세까지 자유로웠다. 이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죗값을 받지 않고 살았단 이야기인가. 책 읽는 중간중간 기분이 더러웠다. 치매에 걸린 것도 이젠 자신이 저지른 범죄마저 잊어가며 생을 마감할 것이란 생각에 참 복도 많은 사람이다 싶었다. 가래침 힘껏 모아 탁 뱉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라 생각했던 문장이었는데 책 표지에 적혀 있어서 다시 보았다. 연쇄 살인자는 무서움의 대상이지 무서움을 느끼는 대상은 아니지 않나. 그런 그가 시간을 무서워한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고 무심한 듯한 문체는 살인자의 두려움도 무심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살인자가 무서운 건지 문체가 서늘한 건지 알 수 없어 나는 읽는 내내 쫓기듯이 책에 몰입했다.
마지막에 지금껏 이야기가 치매로 인한 살인자의 착각이었음이 드러났을 때 '다행스럽게도' 이 사람의 공포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 허우적거려 보지만 앞뒤가 만져지지 않는 공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도 도와줄 사람도 없는 순간을 그는 두려워했다. 역으로 다시 출발해 이야기 중간에 숨어 있던 그의 두려움을 찾았다. 요양 보호사를 자신의 딸 은희로 여겼던 것은 혹시 그도 알아채지 못한 그의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 안의 악을 보는 듯해 부인하고 싶지만 그의 약한 모습을 보고 느낀 감정은 분명 다행스러움이었다. 담담한 내 마음이 요동을 쳤다. 그의 불안함이 반가웠다. 나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남의 불행을 반가워하며 글을 읽다니. 애써 외면하고 싶어 다시 무덤덤하게 책을 읽고 싶었으나 나는 이미 그가 또 다른 불안을 느끼기를 바라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찾았던 것은 살인자이기 전에 인간임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매 순간마다 그의 생각이 아니라 그가 느끼는 감정을 알고 싶었다. 잘 찾아지지 않아 공허한 마음이 드는 순간 그의 두려움이 느껴지는 장면을 읽었다. 반가웠다. 그가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중에도 내 반가움은 여전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치매는 기억하지 못하는 두려움을 준다. 기억이 지워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에 따라 각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아니면 살인자의 치매처럼 모두 똑같이 공허할까. 한 사람의 인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공허함. 그도 그것을 알고 시간을 두려워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무서운 이유를 알 것 같다. 시간 앞에서 우리 모두는 무능하다. 잡고 싶지만 잡히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움직이고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것이 살인자도 떨게 만든 시간의 힘이다.
내 기억이 지워진다면 어떨까. 어렴풋한 두려움만 느껴진다. 주어진 시간을 잘 써야겠다고 다짐해보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으니 다짐이 아니라 받아들임인지도 모른다. 무능하다. 잠시 공허한 상태로 둔다. 차가운 냉수 한잔 들이켜야겠다.나의 무능함을 받아들이는데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