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한산:용의 출현>>을 보고
학익진- 학의 우아함
바다 위에서 학이 날개를 펼쳤다. 파도를 따라 넘실거리며 배가 움직였다. 전주성에서는 아무런 지원이 오지 않았지만 이순신은 전주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외로운 학의 모습이었다.
장군은 임금을 허투루 대하지 않은 만큼 백성을 가여워했다. 영화 내내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장면마다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지위를 따지지 않았고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진심을 보려 했다. 포로였던 자를 부하로 받고 믿음을 주는 마음은 무뚝뚝한 얼굴을 더 인상적으로 느끼게 했다.
실제로는 왜구뿐만 아니라 명의 군대와 조정 대신, 선조까지 사방이 이순신의 적이었다 영화에는 왜구와 원균을 제외하고 다른 적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다소 관계가 단순했다. 대신 복잡한 이순신의 모습이 더 그려졌다. 표정 없는 얼굴로 표정을 만들어내는 박해일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이길 수 없을 듯한 싸움을 이긴 이순신과 닮은 듯했다.
학익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었다.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양으로 배를 배열 했다. 수세와 공세가 모두 가능하게 만드는 진이었다. 조선이 훨씬 불리한 상황이었으나 이순신은 방어만 하진 않았다. 원균의 두려움은 전염되지 않는 듯했다. 장군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했다. 전쟁 앞에서 이순신은 차분했고 학의 움직임은 우아했다.학이 자신보다 더 큰 적을 에워쌓다. 이순신은 전쟁이 절정으로 치닫을수록 더 차가워졌고 학은 더 우아해졌다.
견내량은 좁고 물살이 센 곳이다. 몸체가 큰 거북선과 아군의 배가 들어가서 싸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적을 넓은 한산 앞바다까지 유인해야 했다. 이순신을 믿고 적이 진치고 있는 견내량까지 들어갈 것을 자청한 노장군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라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이순신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실제로는 이순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또다른 이순신이 자청을 해서 견내량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이순신의 리더십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 마음을 먼저 움직였다. 그 힘을 믿고 따르는 자와 그 힘이 두려워 밀쳐내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물결 속에서 그는 살았다.
바다 위에 성을 쌓는다는 발상은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이순신은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의와 의가 싸우는 것이라 했다. 연약한 백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싸움터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견내량의 생김, 가지고 있는 배의 특징 그리고 함께 움직일 사람들의 마음까지 살폈다. 원균은 바다 위에 성을 쌓는다는 생각을 무시했지만 이순신은 그를 내치지 않았다. 대신 실제로 바다 위에서 보여 주었다.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이순신은 모두가 한마음일 수는 없다는 현실을 직시한 것은 아니었을까. 있는 그대로를 직시할 수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를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서 보았다. 바다 위에 학 모양의 성을 쌓고 적의 공격을 받아낸 한산 대첩은 이렇게 이순신의 생각에서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었다.
싸우다 다친 몸과 적에 대한 생각으로 밤마다 악몽을 꾸고 식은땀을 흘렸다. 영화 대부분은 장군으로서의 이순신을 보여주었지만 장면과 장면은 인간 이순신의 한숨으로 연결되었다.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역사적 영웅의 마음을 의자에 편히 앉아 있는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건 내가 살고 있는 편안한 삶이 그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축적되어 토대를 이루고 그 위를 내가 걷고 있다. 오늘 밤에는 차분하게 앉아 내 삶을 관찰해봐야겠다. 여태 보지 못했던 여러 사람이 보일 듯하다.
마나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