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김훈 <<칼의 노래>>를 읽고
나의 자연사 방법은?
"이순신 장군 알아요?"
"네! 백 원이에요!"
대형 마트는 거대한 감옥 같았다. 과자들이 갇혀 나올 수 없는 곳. 나는 큰 마트 앞에서 오고 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머뭇거렸다. 과자를 구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큰 것들 앞에서 힘을 주었다.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호주머니 속 이순신 장군을 움켜쥐었다. 든든했다. 눈에 힘을 주고 감옥 속을 들어갔다. 어릴 적 나의 과자 구출 작전은 늘 이순신과 함께였다.
이순신 장군을 욕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주머니 속 동전처럼 알면 알수록 장군을 더 자랑스러워하며 컸다. 실제로 함께 살았던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거대한 적의 움직임이 무서웠겠지만 이순신 장군을 믿고 나라를 구하려고 함께 애쓰지 않았을까.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제일 와닿았던 문장이다. 이순신 장군의 삶을 농축시켜 놓은 이 한 문장을 그냥 넘길 수 없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상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하지 않았다. 칼로 벨 수 없는 적들이 더 많았다. 우리를 돕기 위해 들어온 명나라 수군과 조선 조정 대신들 그리고 겁 많은 선조까지 모두가 이순신의 반대편에 서있었다. 되려 왜놈들은 눈에 보이는 가장 쉬운 적이었다. 칼로 베고 없앨 수 있는 적. 단순했으므로 고맙기까지 했다.
'나는 적에 의해 규정되는 나의 위치를 무의미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힘든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이다.'
이순신은 사지를 찾아다녔다. 죽음을 맞이할 장소를 찾아 살피고 또 살폈다. 그가 있어야 할 곳. 제대로 된 장소를 살폈다. 적의 위치에 의해 결정되는 그의 위치였다. 그 노력은 수많은 적들 속에서도 무의미하지 않으려는 자존심이었다. 창검에 베어지는 이순신만의 자연사는 백성들의 울음소리를 허투루 듣지 않는 마음과 맞닿아 있었다.
명량 대전이 시작됐다. 격군들의 땀이 모여 배를 움직였다. 싸움이 절정으로 갈수록 노를 젓는 팔과 등의 움직임은 더 커졌고 이순신의 마음은 더 차가워졌다. 표정 없는 그의 얼굴이 그려졌다. 차가운 마음으로 뜨겁게 달궈진 배를 움직이고 있었다. 울돌목의 물살이 이순신에게 힘을 주었다. 있어야 할 시와 때를 제대로 찾은 이순신에게 바다는 제일 든든한 아군이었다.
이순신이 내게 알려준 자연사 할 수 있는 비법은 있어야 할 곳을 제대로 찾고 들어야 할 것을 제대로 듣는 것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이순신 장군도 저리 헤매고 사셨으니 내가 바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답답한 채로 그대로 둔다. 급할 것 없다는 나의 거만함이 임시방편으로 위안을 준다.
<<칼의 노래>>는 김훈 작가가 명량 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순신의 머릿속에 들어가 다시 재해석한 작품이다. 관점이 매우 신선하고 깊다. 작품 속 상황이 내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이순신이란 안경을 쓰고 그 세계를 보고 듣고 느낀다.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많은 밤을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을 꿨다. 왜군과 싸울 때 생긴 상처와 선조가 한 고문의 상처가 한 몸에 붙어 이순신을 괴롭혔다. 책을 읽으며 이순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내 마음이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 책이 나와 연이 닿아 너무 감사하다. 가을에 남해로 여행을 간다. 남해대교를 지날 예정인데 밑에 흐르는 바다가 감추고 있는 이순신의 이야기를 몸으로 느껴 보고 싶다. 이순신 장군이 그리도 찾았던 그만의 사지를 지나가며 자연사의 의미를 곱씹어 볼 것이다.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란 질문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내가 자연사할 곳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