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하늘에 보라색 보여?"
엄마가 말씀하셨다. 눈빛이 신나게 반짝거렸다. 나도 따라 하늘을 봤다. 그리고 열심히 보라색을 찾았다. 새파란 하늘에 벌거벗은 임금님 옷 찾듯 보라색을 찾았다. 헤매는 나를 보며 엄마는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있잖아." 싱글거리는 엄마 모습이 귀여웠다. 나는 괜히 투덜거렸다. "뻥 아니야?"
엄마는 그림을 그리신다. 3남매 키우시느라 늦게 미술을 시작하셨다. 예체능에 재능이 있으신 엄마가 평생 얼마나 하고 싶으셨을까. 어릴 적 나는 미술학원을 다녔다. 당신이 못 배운 그림을 딸은 배웠다. 지금은 그리지도 않는 그림을 나는 꽤 오래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술학원을 신나게 다니는 엄마를 볼 때마다 어릴 적 시간을 떠올린다. 엄마에게 자식은 무엇일까.
내 마음과는 달리 엄마는 마냥 신나게 그림을 그리신다. 늦게 시작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생각하는 것에 1분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보인다. 그림의 대부분은 우리 칠가족이다. 일곱 명의 사진을 보고 또 보며 색을 덧칠하기를 수십 번. 엄마의 재치와 눈썰미가 그림에 그대로 담긴다. 사랑이 듬뿍 담긴다.
몇 년간 엄마는 사람을 보고 풍경을 관찰하며 색을 배웠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내가 보지 못하는 보라색을 보신다. 다시 싱글거리는 엄마를 본다. 웃음이 멋지다. "나도 보라색을 볼 수 있을까?" 굳이 입으로 말할 필요 없다는 듯 엄마는 인생으로 딸에게 보여준다.
"당연히 볼 수 있지."
가족여행에서 찍은 내 사진이 엄마의 승은을 입고 캔버스에 그대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스케치부터 그림자의 농도가 완성될 때까지 엄마는 몇 달 동안 내 사진을 보고 또 봤다. 완성된 그림이 내 방에 걸릴 때도 좋았지만 그동안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에서 그림 설명을 하며 신나 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더 좋았다. 차곡차곡 쌓이는 색이 섞여 내 사진 속에 엄마가 들어왔다. 사진보다 그림이 훨씬 좋았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늘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다. 그런 나를 엄마는 내버려 둔다.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라는 뜻으로 던져 놓는다. 그리고 엄마의 인생을 사신다. 신나게 또 신나게 시간을 흥으로 채운다. 엄마의 마음이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다.
다 큰 딸은 바쁘다며 예전보다 집에 덜 내려온다. 미안함 대신 1분이라도 인생을 더 신나게 사는 것으로 마음을 채운다. 나는 엄마를 닮은 것이 아니라 엄마를 따라 살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내 그림에 엄마가 보이듯 내 삶에 엄마가 계신다. 계속 보고 또 느낄 것이다.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 속에 엄마가 좀 더 잘 보이길 바란다.
마나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