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이 나를 흔들었다. 읽는 중에도, 읽고 나서도 쉴 틈 없이 흔들렸다. '혼란스러울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지?' 읽는 내내 들었던 질문에 어지러워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혼란을 무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자신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믿었다. 조던의 자기기만은 나는 흥분시켰다. 혼란스러울 때 적절히 스스로를 기만해도 괜찮다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 나는 당황하면 가끔씩 못난 모습을 보인다. 그 후의 창피함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어느 정도는 못나도 괜찮다는 말 같아 자기기만을 품고 살아도 괜찮다는 말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조던은 세상 사람들을 우생학을 이용해 분류했다.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것은 세상을 통제하려는 마음이었다. 우등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당연한 듯 죽였다. 히틀러가 우생학을 좋아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때까지 조던의 자신만만함과 자기기만이 좋았던 나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분명 위로를 받았었는데 이야기가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 짜증이 났다. 책이 읽기 싫어지고 지루했다.
겨우 책을 계속 읽어 갔다. 주인공이 조던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라는 것을 책 후반부에 가서야 알게 됐다. 혼돈의 연속이었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나온다는 착각에 직면했다. 책 한 권을 읽는데 얼마나 많은 내 생각이 들어갈까.
우생학으로 수용소에 갇혔다가 겨우 빠져 나와 함께 의지하며 사는 메리와 애리가 있었다. 작가는 혼돈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모습을 두 사람 속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힘을 느꼈다. 혼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뭘까. 나는 또 혼란스러웠다.
작가는 후반부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던지고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다양한 대답을 애써 분류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대로 보여주었다. 혼돈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었다.
책을 끝내며 내가 느꼈던 위안, 당황, 혼란의 감정들을 다시 보았다. 그것들이 위안, 당황, 혼란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딱 고정된 것들인가. 쉴 새 없이 변화고 움직이는 것들 아닐까. 작가는 감정의 이름을 조금 밀쳐 놓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겠지? 여전히 어렵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처럼 평생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몇 개나 될까. 불안하다. 그래도 불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내게 이 책은 위안도 준다. 혼란과 위안을 동시에 받았다. 혹시 작가는 밀당의 고수가 아닐까.
혼란스러울 때 나는 어떻게 할까? '혼란을 그대로 직면하라. 그리고 그대로 받아들이라' 작가의 결론은 맞는 걸까.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질문으로 글을 매듭지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