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이 늘었다. 속에서 쉴 새 없이 나오는 생각들에 대항하는 소리다. 순하게 받아주고 인정해 줬더니 어느 순간 생각들이 나를 뒤엎어버렸다. 생각의 호구가 된 나는 별일 없던 하루였는데도 되돌아서면 있었던 일을 곱씹어 생각하고, 알 수도 없는 남의 생각을 궁금해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자기 검열 감옥에 이대로 갇혀 평생을 살 순 없겠다 싶었다. 혼자 만든 감옥이니 나오는 길도 혼자 찾아야 했다. 나는 지금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치는 중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머릿속 생각은 나름의 움직이는 패턴이 있었다. 생각은 혼자 있을 때 주로 나오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시간을 곱씹는 것으로 시작한다. 왜 그랬을까. 이미 지나간 일이라 바꿀 수도 없지만 '왜'라는 질문으로 다시 떠오른다. 왜 그랬을까. 답을 찾을 수도 없지만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 반복되는 질문이 나를 괴롭힌다. 바꿀 수도 없고 답도 없는 질문이라 힘들다. 왜 자꾸 그런 질문을 하는지 되묻는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완벽하게 살고 싶은 헛된 꿈을 품으면 할 수밖에 없는 자기 검열의 늪은 아닐까.
그러다 문득 질문의 가치를 생각했다. 이런 질문들이 반복해서 생각할 만큼 가치가 있는가. 한 달 전에 떠올렸던 생각과 질문이 기억나지 않는 지금, 오늘의 질문은 한 달 후에 남아있을 거라는 장담을 할 수 없었다. 금방 잊힐 생각과 질문들이 미친 듯이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반복해서 생각할 만큼 가치가 있는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반복하며 사는가. 몇 분이 지났지만 질문에 대항해서 할 말이 없었다. 얼굴만 화끈거렸다.
얼마 전 읽었던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는 떠오르는 생각들에 일일이 답하지 말고 그냥 두면 금세 사그라든다고 했다. 생각이 모두 나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 잡생각 많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그래, 내가 하는 모든 생각들이 나는 아니다. 그러니 모두 다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대신 그냥 흘러가게 놔두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래서 시작된 것이 혼잣말이었다.
혼잣말은 꽤 효과가 있다. 생각과 생각이 이어질 틈을 주지 않는다. 생각이 떠오르면 가만히 살펴본다. 반복해서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는 놈인지 파악한다.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지체 없이 바로 혼잣말이 투입된다. 또 시작할래? 아따 말 많네. 혼자서 시큰둥하게 중얼거린다. 주춤거릴 필요가 없다. 생각이 필요가 없다. 그것을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소리였다.
혼잣말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스스로와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연결고리가 끊어진 생각들은 연대의 힘을 가지지 못하고 옅어진다. 마음이 평온해지면 나는 나와 마주 본다. 잘했다는 의미로 한번 웃는다. 명상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편안한 얼굴로 명상을 하는 스님들의 마음도 내 웃음과 전혀 무관하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열심히 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런 순간을 마주한다. 매일을 웃기 위해 스님들이 평생 수양을 하시는 거겠지. 나도 생각에 사로잡히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맛본 사람은 없다는 맛집에 갔다 온 기분이다. 편안한 웃음의 맛을 잊지 못해 나는 또 그 시간을 찾아다니고 있다.
나의 혼잣말은 아직은 다소 거칠다. 몸에 힘이 덜 빠진 탓이다. 마음에 상처만 주며 여태 살아왔다. 삐친 마음을 되돌려 친해지려면 갈 길이 멀다. 수양을 하면 지금보다는 좀 더 부드러워질 것이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혼잣말이 속으로 들어가 생각의 움직임에 섞여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중얼거림이 멈추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겉으로 다소 이상해 보이더라도 내가 스스로와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다면 그깟 이미지 실추쯤이야 뭐가 대수겠는가. 몇십 년을 돌고 돌아 겨우 만난 나에게 천천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 본다. 친하게 지내자. 나와 친구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