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언니 김연경

힘 빼기

by 마나

나는 잼잼이다. 식빵을 좋아해 달달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식빵이 게임을 하면 당연히 잼이 응원하러 가야지. 순간 에너지를 올리는 데는 달달한 잼만 한 것이 없을 테니 식빵언니도 좋아할 것이다. 식빵은 인기가 많다. 전국의 잼잼이들이 다 모인 탓에 체육관은 달달한 디저트 집이 되겠지만 털털한 식빵은 이 상황을 부담스러워 하기는커녕 자신의 인기를 연신 즐기며 어깨를 으쓱거릴 것이다. 처음 식빵언니를 보러 대전으로 가는 나도 달달함을 가득 머금고 흥에 겨웠다.


김연경 선수는 유튜브에서 식빵언니로 통한다. 그의 팬은 잼잼이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겉으로 보면 빵과 잼의 귀여운 캐릭터가 떠오르지만 실제 식빵언니의 식빵은 폭신폭신한 빵을 의미하진 않는다. 몇 년 전 김연경 선수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XX!!"라고 말한 것이 티브이 중계를 타고 고스란히 전파가 됐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팬들은 김연경 선수에게 장난스러운 별칭을 붙였다. 다른 사람 같으면 심각했을 수도 있는 일이 털털한 이미지의 김연경 선수라서 욕도 장난으로 받아주는 듯했다. 김연경 선수도 겸연쩍어하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말했던 기억이 난다. 유튜브 채널 이름 '식빵언니'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하는 동료 외국인 선수들에게 정성스럽게 한국의 욕을 가르쳐줬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김연경 선수 몸풀기>

경기장에 들어가니 선수들이 이미 나와 몸을 풀고 있었다. 김연경 선수를 보러 오긴 했지만 열심히 연습하는 선수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경기장 끝에 키 큰 식빵언니도 어슬렁거리며 공을 툭툭 던져댔다. 큰 움직임도 없이 뛰지도 않고 쉽게 쉽게 공을 쳤다. 주변 선수들도 모두 키가 클 텐데 남녀 통틀어 김연경보다 큰 사람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저 반가웠다. 경기 시작 시간이 되어가자 경기장이 거의 꽉 찼다. 인삼공사가 대전에 홈구장을 두고 있지만 꽉 찬 관중석을 보며 김연경 선수를 보러 온 잼잼이들이 많이 숨어 있을 거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양 팀 실력이 비슷해서 경기가 점점 더 재미있어졌다. 식빵언니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공을 따라 시선이 옮겨졌다. 딱히 특정 팀을 응원하는 건 아니어서 좋은 플레이가 나왔을 때마다 흥이 났다. 내가 앉은 좌석이 인삼공사 응원석이라는 것을 안 것은 2세트 중간쯤이었다. 1세트에는 주변이 조용해서 다들 마음으로 응원하시나 보다 했는데 인삼공사가 앞서가는 2세트로 들어가니 주변이 들썩거리는 것이 아닌가. 흥에 겨워 김연경 선수가 점수를 딸 때마다 소리를 내며 응원하던 나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째려봤을까 싶어 순간 움찔했다. 그래도 한 번 오른 흥을 깰 순 없었다. 다행히 인삼공사가 잘했을 때도 신나 했으므로 약간은 상쇄가 되지 않을까를 기대하며 이미 밉상으로 찍혔을 테니 쭉 나가자 싶었다.


<인삼공사 한송이 선수>

흥국생명에 김연경이 있다면 인삼공사에는 한송이 선수가 있었다. 둘 다 배구 선수로는 나이가 지긋한 편이라 움직임이 빠르진 않고 어슬렁거리는 느낌이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있어야 할 곳에서 해야 할 플레이를 하는 듯했다. 힘을 아껴서 공을 밀고 당기기도 하고 코트 안에 있는 선수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운동하는 사람들 특유의 리더십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약간의 차이도 느껴졌는데 한송이 선수가 분위기를 차분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준다면 김연경 선수는 좀 더 힘 있고 재미있게 팀을 이끌었다. 둘 다 믿음직한 선배였다. 그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기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흥미진진했다.


2세트에서는 인삼공사가 흥국생명을 한 점씩 앞지르고 있었다. 큰 점수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었으나 흥국생명이 앞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2점을 남겨두고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경기에 집중했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순간을 책임진 것은 김연경 선수였다. 수백 명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는 떨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김연경 선수가 점수를 내기 위해 몸에 힘을 꽉 주고 스파이크로 공을 내리꽂을 거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되려 공중에서 몸에 힘을 빼고 공을 살짝 빈 곳에 찔러 넣었다. 인삼공사 수비가 나쁘지 않았으나 2점을 남긴 긴장감 때문에 빈 곳에 들어가는 공을 받아치기에는 몸이 굳어 있었다.


참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여러 가지 작전 중 하나겠지만 긴장된 순간에 힘을 빼고 허점을 노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플레이는 아닐 것이다. 잘 모르긴 해도 이처럼 김연경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라고 인정받는 이유는 상황을 잘 대처하는 유연성 때문은 아닐까. 배구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 맞춰 선수들이 움직이고 작전을 펼쳤다. 모두에게 골고루 긴장감이 주어졌다. 공의 움직임은 통제할 수 없으나 다행히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선수들 각자가 선택할 수 있었다. 오늘 김연경 선수가 선택한 작전은 몸에 힘 빼기였다. 나는 그의 선택이 참 마음에 들었다. 식빵언니를 따라, 소리치며 응원하던 내 목소리에도 힘을 뺐다. 내려놓으니 주변 눈치도 덜 보이고 더 편해졌다. 배구 경기를 보는데 불교 경전 냄새가 났다. '내려놓아라. 그러면 편안해질 것이다.' 배구 경기를 보다 웬 엉뚱한 생각이냐 싶어 혼자 피식 웃었다.


오늘은 흥국생명이 인삼공사를 3대 0으로 이겼다. 결과적으로는 완패였지만 경기를 본 나로서는 인삼공사 선수들도 아쉬울 수는 있으나 마음이 상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배구를 신나게 했다고 인정할 듯해서다. 선수들의 경기를 보며 나도 신나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신나게 살면 그 흥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가 된다. 김연경 선수의 어슬렁거리던 발걸음이 떠올라 나도 돌아오는 길목에서 괜히 발을 끌어봤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사람을 식빵언니라 부르며 응원했던 시간이 하나도 주책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재미있고 신이 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를 따라 한다는 건 뭘까. 행동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사람을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아닐까. 세상에는 배울 것이 참 많다. 나는 오늘 식빵언니를 배웠다. 덕분에 시원시원하고 흥이 나는 하루였다.

<김연경 선수 서브 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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